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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초조하다

14/03/09 21:39(년/월/일 시:분)

초조하다. 시간이 없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 요즘에 계속 드는 생각이다. 물론 지금 나는 전체적으로 봤을때 대체로 행복하고 나의 삶에도 만족을 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이 만족스럽지 않다. 남들이 보기에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내 마음은 그렇다.

이 초조한 마음은 어쩌면 유전일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도 항상 초조해했다. 잘 나가던 못 나가던, 초조한 마음으로 매사에 매달렸다. 어쩌면 그런 집착이 성공의 비결이었을지 모르겠다. 덕분에 우리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항상 급했고, 당장 해야 했고, 밤 늦게까지 무언가에 매달려 지내야 했다.

나의 그런 기본 정서가 지금 회사의 정서와 잘 맞는다. 어쩌면 이런게 가장 한국적인 정서인지 모르겠다. 좋다고 할 순 없지만 꼭 나쁘다고 하기도 그렇다. 그런데 왜 나는 직업에 불만족하는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은 아버지와의 투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많던 적던 부모와 싸웠을 것이고, 대부분은 타협하며 적당적당히 살아오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고 크게 달랐던 건 아니라, 적어도 직업은 엄청나게 타협을 했다. 아마 부모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쯤 홍대의 인기없는 인디 뮤지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취업 당시 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내가 엄청나게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고, 여러가지로 운이 따라주기도 해서 나는 직장을 골라서 갈 수 있었다. 어차피 길은 IT쪽이었고, 컨슈머 시장이냐 엔터프라이즈 시장이냐 였는데, 나는 그 중에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브랜드를 선택했다.

그때의 선택을 이제와서 후회하기에는 늦다. 다만 늦게라도 그 선택을 다시 하고 싶다. 다시한번 취업 당시로 돌아가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자꾸 줄어들기에 나는 초조하다. 더 늦기 전에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다고 내 인생을 완전히 리셋하기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게 아깝다. 그래서 나는 보험삼아 기술사를 따려 한다. 무척이나 고생스럽지만, 일단 이것을 따면 나와 내 가족이 경제적으로 불행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다음은 원하는 전공으로 석사를 따고, 상황을 봐 가면서 재취업을 한다. 가능하면 해외로. 이것이 나의 단기 계획이다.

아마도 그 시기는 박근혜 정권 말기에, 전세계적으로 미국발/중국발 경제 한파가 다시한번 몰아치는 시기가 될 것이다. 무척이나 험난하겠지만, 위험과 기회가 동시에 오기에 정신만 바짝 차리면 잘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친 후에 나는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고 건강해질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시간이 없다.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나의 마음을 가만히 보면, 아버지에게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와,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둘 다 있다. 이 둘은 반대인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정말 출세하는 것만큼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 또 있을까? 나의 애증을 땔깜으로 삼아 나를 더욱 불태우련다. 그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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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d 14/03/12 12:39  덧글 수정/삭제
    제가 어머니께 가진 것과 굉장히 비슷한 마음이네요. 많은 갈등 끝에 얼마전 가상악기 만드는 스타트업에 취직을 했지만 회사가 어렵다 보니 또 많은 생각이 듭니다.
    • xacdo 14/03/17 05:16  수정/삭제
      일단 부모님이 충분히 인정할만한 성공인데 내가 원하는 바에도 크게 지장이 안 가는 것들 중에서, 가장 달성하기 쉽고 작은 것 하나만 달성해보세요. 성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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