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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다만 글들

07/12/20 14:59(년/월/일 시:분)

한 7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 글을 쓸때는 정말 솔직한 내 심정 위주로 썼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솔직한 거랑 진실된 거랑 다를 수도 있으니까. 예를 들자면

얼마전에 기숙사 체크아웃을 하는데, 열쇠 4개를 달라고 하는거야.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열쇠를 2개 받은 기억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막 따졌지. 아니 애초에 열쇠를 2개 줘놓고 4개를 달라니, 이게 말이 되냐.

그런데 그쪽은 자기가 15년간 기숙사 관리인을 해왔지만, 단 한번도 열쇠를 덜 준 적이 없대. 내가 처음이래. 그래서 내가 잊어먹은게 아니냐고 하는 거야. 근데 나는 정말 억울한게, 처음에 열쇠 2개 받은 걸 증명할 방법이 없는거야. 아 정말

억울한 마음으로 방으로 돌아가서 서랍을 열어봤더니, 거기에는 내가 분명히 받은 기억이 없는 나머지 열쇠 2개가 덩그러니 있었다. 와 정말, 나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왜 이게 내 서랍 안에 있는거야! 내가 나한테 속았네. 관리인에게 정말 미안하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솔직히, 정말로, 그땐 내가 열쇠를 2개만 받았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하지만 진실은, 내가 열쇠 4개를 받고 까먹었던 거지. 이렇게 솔직하다고 해서 항상 진실하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게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느끼거나 생각한 게 있어도 그걸 다 표현하지는 않는다. 블로그에 글을 막 쓰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비공개로 하고 만다. 정말로 충분한 출처가 있고,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것만 공개한다.

물론 내 딴에는 그렇게 해도 여전히 나는 언제든 틀릴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댓글이나 트랙백을 주시하면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치고, 글 자체가 잘못되었으면 재빨리 비공개로 돌린다.

그때 열쇠를 발견했을 때도,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 5분 정도 좌절한 후, 바로 관리인을 찾아가 사과를 했다. 그나마 이런 경우에는 사과라도 할 수 있었지만, 보통은 아예 돌이킬 수가 없잖아.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지.


아니, 관리자 페이지를 보니까 비공개 글이 반이라서 한마디 해봤다. 요즘 포스팅이 뜸해지긴 했지만, 실제로 내가 쓰는 글의 양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단지 공개를 하지 않을 뿐이다.

쓰다 만 글들이 자꾸 늘어난다. 생각이 정리가 잘 안 된다. 아이디어가 아깝긴 한데. 내가 갑자기 내일 당장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기라도 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어질텐데, 그렇다고 미완의 글을 공개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러니까 나는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서라도 나의 솔직함과 실제로 진실함을 비슷하게 맞추고 싶은 거야. 그러다보니 말이 줄어들고, 못한 말이 많아지는거지.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895

  • 가루 07/12/20 15:53  덧글 수정/삭제
    비공개글. 보고싶네요ㅎ
    확실하다고 판단하는 것만 올리시다니 정말 사실관계를 중시하시 는 것 같습니다. 저같은경우에는 화가 풀릴만한 글, 속풀이 글 이런 식인데... 그래서 작도님에게 배울 점이 많습니다.
  • cancel 07/12/20 20:14  덧글 수정/삭제
    작도님의 글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냥 확실하지 않은 글은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공개하시면 안되나요
  • jhffj 07/12/26 07:54  덧글 수정/삭제
    진실이란것은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자신감 입니다. 진실이란 개념 자체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이라고 생각하면 무엇이 진시이고 무엇이 거짓 입니까? 너무 이기적인 말일지 몰라도 진실은 항상 자신속에 있는것 아닐까요.
    • xacdo 07/12/27 10:45  수정/삭제
      자신감이 있어도 틀린 건 틀린거죠. 제가 열쇠를 2개 받았다고 정말 확실하고 자신감있게 믿었지만, 진실은 4개 받고 까먹었던 거잖아요.
    • 황진사 07/12/31 06:45  수정/삭제
      이거 상당히 무섭기도하고 어떻게보면 위험한 생각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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