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들 - 스토리
06/10/08 10:31(년/월/일 시:분)
"왜 그렇게 쌀쌀맞게 굴어?"
"내가 언제?"
수진은 자기가 언제 쌀쌀맞게 굴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수는 분명히 수진이 금요일 밤에 자기에게 굉장히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수진은 한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커녕, 금요일 밤에 한수를 만난 것 조차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면 나는 도대체 금요일 밤에 뭘 했던 거지?
기억이 토막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할 수가 없다.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금요일 점심때부터 토요일 아침까지의 기억이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다.
그날 밤 수진은 목이 말라 잠이 깼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분명히 여자 혼자 사는 집인데! 수진은 무서워서 고개를 돌렸다.
"꺄아!"
침대가 땀으로 젖어 있다. 아침이다. 수진은 비명을 지른 후로 날이 밝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손발이 떨리고 오금이 저려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서워서 한수에게 전화를 해 봤지만 받지 않았다.
도둑이 들었던 걸까. 그런데 왜 멀쩡한 거지?
아무리 그래도 출근은 해야지. 잠깐, 내가 출근한 기억이 있나? 수진은 또 기억이 끊겼다.
***
한수는 수진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못 받았다는 핑계를 대면 된다. 사귀기 시작한지는 세달째지만, 한수는 수진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는 둘째치고 감당할 수가 없었다.
가끔 보면 넌 딴 사람 같아.
평소엔 괜찮은데 가끔씩, 사람이 바뀌는 것 같아. 뭐랄까 일부러 남자 목소리 같은 걸 내고, 괜히 강한 척 하려고 하고. 그럴땐 나를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단 말이야.
"수진아."
대답이 없다.
"강수진!"
"누구야 그건."
"너잖아! 수진. 니 이름이잖아."
"내 이름은 수진이 아니야."
나야, 진수.
수진은 무서워서 고개를 돌렸다.
꺄아!
땀이 흥건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수진은 집 바닥에 누워 있었다. 저녁 8시. 내가 회사에 갔다온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배가 몹시 고팠다.
순간 어깨에 어떤 남자가 손을 올렸다. 수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야, 진수라니까.
진수는 수진의 몸을 더듬었다. 손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면서 진수는 수진의 온 몸을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촉감으로 쓰다듬었다. 수진은 반항해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왜냐하면
그 집에는 수진 혼자밖에 없었으니까.
***
띠로로로롱.
한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수진이었다. 한수는 이젠 지겹기도 하고 해서 전화를 받지 않으려다가, 그래도 헤어지자는 말은 하고 끊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사람살려!"
딸각.
수진은 장난을 치는 성격이 아니다. 그리고 수진은 혼자 살았다. 한수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젠장, 이놈의 여자는 끝까지 왜 이래!
***
딩동. 딩동딩동.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침묵.
쾅쾅쾅. 쾅쾅쾅쾅쾅.
"문 열어! 씨발 빨리 문 열어!"
문이 열렸다.
"수진이 없다."
수진은 왼쪽 손목에 칼자국이 잔뜩 나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수진아!"
"수진이 없다니까!"
수진은 오른손으로 칼을 휘둘렀다.
"내가 수진이를 죽였어."
"야 임마, 이 목소리는..."
한 부장 목소리잖아!
한수와 수진은 사내 커플이었다. 그러다가 한 부장이 수진을 성폭행하고, 수진은 그 트라우마로 회사를 그만뒀다.
"한부장? 그게 누구야? 난 진수라고."
수진은 웃으며 말했다.
"몰라? 내가 전에 너한테 전화했잖아. 다신 만나지 말라고. 수진이랑."
수진은 손목을 또 칼로 그었다. 손목에는 칼자국이 수십 개가 나 있었다. 수진은 나른한 표정이었다. 조금은 우는 것도 같았다.
"야 임마!"
한수는 수진을 말리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수진은 한수에게 칼을 들이대며 방어했다.
수진은 한 부장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했다.
"수진이한테 손 하나라도 건드렸단 봐. 이 여잔 내 여자니까."
한수는 웃음이 나왔다.
"내 여자? 수진이 무슨 내 여자야, 하하. 한 부장이 너를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 수진아, 정신차려."
수진은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 틈을 타서 한수는 수진을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키스했다.
"수진아, 사랑해."
수진은 생각했다. 한 부장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사랑하기는 무슨.
여기서 한 부장이 그랬던 것처럼 엉덩이 만지면 그냥 확 죽여버릴꺼야.
한수는 수진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남자는 다 똑같애."
수진은 한수의 등에 칼을 꽂았다.
***
수진은 또 필름이 끊겼다. 일어나자마자 온 몸에 흥건히 젖은 피가 보였다.
이럴땐 모르는 척하고 좀 놀라줘야 돼.
"꺄아!"
그리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는 것처럼 바닥에 흥건한 피를 봐야지.
"이 피는 다 뭐야!"
그리고는.. 어디보자. 사랑하는 남자친구한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않을까?
"한수야.. 흑흑 한수야 어딨어..."
띠로로로로롱.
거실에서 한수의 휴대폰 소리가 들렸다.
수진아, 넌 한수가 온 걸 모르잖아.
"한수가 왔었나?"
그래, 잘 했어.
그리고 다음에는.. 한수가 죽은 것에 놀라하고, 등에 칼자국을 확인하고, 그리고는...
수진은 자신의 손에 들린 칼을 봤다.
아차, 깜빡하게 칼을 안 내려놨었네. 이러면 수진이 눈치챌지도 모르는데.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내 손목에 상처는 또 뭐지?"
수진아, 진정해. 난 니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아. 상처받는 건 나 하나로 족해.
날 찾지마. 잊어버려. 진실을 외면해. 토닥 토닥.
진수는 수진을 위로해 주었다.
SBS 백만불 미스터리 86회 - 내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타인들, 다중인격의 실체! (2005-02-21) 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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