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들 - 스토리
06/09/10 14:59(년/월/일 시:분)
소설가 작도는 인기있는 소설에 어떤 공통된 규칙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은 관객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캐릭터고, 라이벌은 공감보다는 동경의 대상이며, 나쁜 놈은 마지막에 가면 어찌됐건 죽는다. 주인공의 연인은 언제나 곤경에 빠지며, 스토리에서 소외되어 대사라고는 주인공의 이름 또는 "안돼!"를 외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성공적인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요소를 클리셰(Cliche)라고 하는데, 이것만 잘 모아서 배치해도 소설을 쓸 수 있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기계도 할 수 있겠다! 아니 그렇다면, 차라리 기계가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자동 소설 생성기는 처음엔 그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작도는 소설가 이전에 컴퓨터 공학도였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먼저 작품을 분석하여 공통적인 클리셰를 뽑아낸 다음,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DB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클리셰 DB에서 각 요소를 랜덤으로 추출하여, 갈등 및 긴장 구조에 맞게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다.
이 모든 과정이 "생성"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이 소설을 창작할 필요가 없다. 유사 이래로 인류가 수천년간 창작해 온 수많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컴퓨터 안에 모여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제 누구나 원하는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약 3개월간의 개발 끝에 작도는 들뜬 마음으로 자동 소설 생성기(Auto Novel Creator - 줄여서 ANC)의 베타 버전을 공개했다. 향후 사용자의 자율적인 참여로 다양한 결과를 내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ANC 베타 버전이 반응은 좋지 않았다.
재미 없어
진부해. 클리셰만 모아놓은 소설은 정말 뻔하디 뻔한 진부함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생성" 버튼을 눌러도 어디서 많이 보던 지겨운 소설만 잔뜩 만들어졌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소설은 만들어질지 몰라도,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작도는 자신이 재미를 간과한 것을 깨달았다.
작도는 재미를 연구했다. 재미는 새로운 느낌이다. 그래서 한 번 재미있었던 소설도 계속 반복되면 재미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진부한 표현에 의존하는 현재의 형태에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애초에 컴퓨터 프로그램은 반복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작도는 모니터를 흔들며 괴로워했다. "역시 안 되는 걸까.."
한 가지 희망은, 재미는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즉 새로운 느낌만 줄 수 있다면 굳이 새로울 필요까지는 없다. 현 시점에서 드문 것,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면 30년 전 것이라도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독자의 공감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의 의외성이어야 한다.
즉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첫째는 현 시점의 클리셰 분포를 파악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 자주 사용되는 클리셰와 드물게 사용되는 클리셰의 분포를 파악하여, 이 둘의 적절한 혼합을 한다.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혼합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인데, 이것을 위해 두번째 필요한 것이 바로 "광기 엔진"이었다.
가장 사람다운 것은 광기다.
단순한 랜덤, 기계적으로 차갑게 뒤섞는 것은 인간다움이 없었다. 의외성은 랜덤만으로는 구현할 수가 없었다. 이를 위해 단순한 랜덤이 아니라 인간적인 랜덤, 가장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랜덤을 발생하기 위해 "광기 엔진"을 만들어야 했다.
광기 엔진은 클리셰의 사용 분포와 연동하여, 과거 역사적으로 의미 있게 분포가 튀는 점을 파악하여 이를 인위적으로 발생시킨다. 이때 분포가 튀는 완만하고 거친 정도에 따라서 얌전한 소설, 난폭한 소설이 생성된다.
이래서 두번째 버전에는 광기 조절 바(Avant-garde slider)가 추가됐다. 사용자는 취향에 따라 전위적인 소설, 정통 장르 소설을 즐길 수 있다. 또한 클리셰 사용 분포를 추적하기 위해 대규모의 OLAP DB가 필요했다.
자꾸만 비용이 증가하고 프로젝트가 거대해짐에 따라, 작도는 더 이상 혼자의 힘으로 개발을 감당할 수 없어 "재미 소프트"를 설립했다. 재미있는 소설을 만들겠다는 이름이다. 처음에는 직원 4명으로 시작했으나, 광고 수익이 늘어나고 문학지에서 의뢰가 늘어나면서 3년만에 직원 30명 규모로 성장했다.
사업 부분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로 개발팀에서는 엔진 개발과 자료 수집을 하며, 둘째로 웹 사업팀에서는 사용자가 웹에서 간단히 소설을 생성하고 즐길 수 있게 하며, 이에 따른 광고 수익을 얻는다. 셋째로 문학팀에서는 ANC로 생성된 소설 중에 뛰어한 문학성과 재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을 엄선하여 문학지, 포털 등에 기고한다.
이후 재미 소프트는 클리셰 DB, 광기 엔진 외에도 장르 추적기(장르의 생성, 발달, 소멸을 추적하고 에뮬레이션), 표현 층(내용을 표현하는 레이어), 리얼타임 피드백(사용자의 반응에 따라 인터랙티브한 생성), 사이버 작가(일관된 패턴을 가진 생성) 등의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여, 자동 소설 생성이 충분히 가능하고 의미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또한 PMP나 휴대용 E-book 리더에 내장하여, 원하는 길이의 소설을 그때그때 즐길수도 있었다.
자동 소설 생성에 대해 찬반 논란도 많았다. "사이버 오토매티즘"이라고 극찬하는 문학 평론가도 있었고, "인간미를 말살하는 독약"이라고 혹평하는 칼럼리스트도 있었다. 자동 소설 생성에 영향을 받은 소설가도 나타났고, 자동 생성된 소설이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자동 소설 생성이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지금은 문학의 범위를 자동 생성까지 포괄하여, 작도를 소설가로 불러도 위화감이 없지만, 그때만 해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제 소설 생성은 문학을 넘어서 컴퓨터 공학의 일부로 다루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노력의 성과로 여러분이 이 과목 "자동 소설 생성기"를 듣는 것이다. 사실 이것을 학문으로 다루기 시작한지도 10년이 채 안 된다.
즉 이것은 공학도 넓은 의미의 예술이며, 학문도 넓은 의미의 창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2년 전부터 MIT에서 자동 음악 생성기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를 증명한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예술이다.
서론은 이것으로 마치고, 다음 시간부터는 자동 소설 생성기의 원리와 구조에 대해 배워보기로 하자.
http://www.mediamob.co.kr/bunsinshaba/Blog.aspx?ID=98024
구글의 Book Scan이 가져올 미래
제일 눈길이 갔던 것은 산출근거가 뭔진 불명확하지만, 수메르인들의 점토판 이래 인류가 내놓은 [출판물]의 수치적 총량이다. 대략 최소치로 잡으면 3천2백만권의 책, 7억5천만건의 기사와 에세이. 막연히 천문학적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정도면 불가능은 아니지 않는가. 의외로 인간의 역사와 지적능력은 미약하다. (그래도 좀 적다. 서양권을 중심으로 한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리고 노래가 2천5백만Song, 이미지(회화나 야사, 만화를 다 포함한건가?)가 5억점, 영화가 50만편, 비디오/테레비/단편영화 300만편, 그리고 웹페이지가 100억개(100 billion이 맞나).
놀라운건 책,에세이,이미지,영화,웹페이지 전부를 디지털화했을때(알집으로 압축도 하고...) 필요한 저장공간이 떨렁 "50 페타바이트"란다. 그니깐 500억원어치 하드디스크에 다 들어간다. 500억이 물론 내 돈 주고 사기엔 좀 비싸지만, 인류의 지적 산출물 전부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