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06/06/26 01:14(년/월/일 시:분)
컴퓨터 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한계
컴퓨터는 신이다
'네이버 신', '구글 신'이라는 말이 있다. 농담 삼아 하는 얘기지만, 실제로 그들은 전지(全知)하고 전능(全能)하다. 한마디로 신이다. 셔츠에 묻은 커피자국을 지우는 단순한 지식부터 시작해서, 10의 100제곱이 googol이라는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 개그맨 이경규의 예쁘장한 딸내미의 얼굴까지 0.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띄워주는 신적인 존재, 그것이 다름 아닌 현대의 컴퓨터 기술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는 이미 컴퓨터에 파묻혀 살고 있다. 핸드폰, 냉장고, 밥솥, 신호등, 주식, 은행, 카드 등 컴퓨터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아날로그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에 가 봐도, 컴퓨터로 조판한 책을 컴퓨터로 검색하여 컴퓨터로 대여하고 반납한다. 이 정도는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컴퓨터는 기존에 인간이 만들었던 도구와 달리, 전기와 네트워크만 연결되면 반영구적으로 무한히 동작한다는 데 있다.
컴퓨터는 인간을 육체적인 한계에서 벗어나 형이상학적으로 만든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에 빠져, 50시간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게임에 빠졌던 38세의 남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2005년 10월에 일어나기도 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것이다.
이렇듯 컴퓨터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무서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과연 컴퓨터 기술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리고 컴퓨터가 가진 가능성과 한계는 얼마나 되는가?
형이상학적 세계로의 회귀
고대에서 중세까지는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적인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육체는 많은 한계를 가졌기 때문에, 정신이라는 영원불멸한 것이 따로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중세를 거쳐 현대로 오면서, 정신도 뇌라는 복잡한 신체기관의 육체적인 활동에 불과하다는 것이 차츰 밝혀지고 있다. 또한 인간이 굳게 믿었던 신 존재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도구일 뿐이라고 포에바하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후 현대사상으로 들어오면서 인간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새삼 깨닫고 허무주의에 빠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긍정, 혹은 불교, 도교 등의 동양철학에서 공(空)의 개념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의 신만큼 절대적이지 못하고 어디까지나 인간의 한계 안에 머무르며 그 안에서의 해결에 불과했다.
그런데 만약 신도 인간이 만든 도구라면, 신을 잃어버린 인간은 신을 대체할 다른 도구를 또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불완전한 육체를 보완하여 인간이 형이상학적 세계에서 머무를 수 있는 도구로서, 컴퓨터는 현대적인 의미의 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신 존재와 형이상학은 단순히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가정한다)
인간의 뇌와 전자 뇌(컴퓨터)의 차이점
그렇다면 인간의 뇌와 전자 뇌(컴퓨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점은 '속도'다. 인간의 두뇌는 시냅스의 연결로 정보를 기억하고 처리하는데, 이 과정에서 전기적 특성과 화학적 특성이 교대로 일어난다. 여기서 전기는 빛의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지만, 화학반응은 그보다 한참 느리게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100% 전기만을 이용하는 컴퓨터가 훨씬 빠르다. 다만 컴퓨터는 전기적 특징만 변화할 뿐, 하드웨어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화학반응을 거치며 재구성되는 가소성(plastic)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뇌는 컴퓨터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유연함(flexible)을 가지고 있다.
그 다음으로 큰 차이점은 '병렬처리'다. 컴퓨터는 한 번에 하나의 명령어만 처리할 수 있지만, 인간의 뇌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는 특정 시점에 있어서는 단 하나의 답만 내리는 절대적인 특징을 가지지만, 인간의 뇌는 동시에 여러 생각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내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뇌는 생각의 충돌이 일어나기 쉽고, 고착상태에 빠지기도 쉽다.
마지막으로 하나를 꼽자면, 한 번에 생각이 가능한 작업 공간(workspace)의 수가 인간의 경우 5~9개, 평균적으로 7개에 불과하지만, 컴퓨터의 경우 메모리가 허락하는 한 무한하다. 인간의 경우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추상화를 통해 개념의 숫자를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름을 붙여서 여러 개를 뭉뚱그리면, 인간의 뇌는 그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한다.
인공 지능의 한계와 가능성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의 뇌는 절대적이거나 무한하지 않을 뿐이지, 컴퓨터에게는 없는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 공학 초기에 단순히 인간의 뇌를 똑같이 베끼려는 인공 지능 연구는 한계에 부딪쳤다. 예를 들어 인간의 가소성(plastic)을 흉내 내기 위해서는 컴퓨터의 속도를 상당 부분 희생해야 한다. 그렇게 인간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봤자 인간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래서 최근의 연구는 인간의 뇌를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컴퓨터만이 가능하고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으로 그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런 컴퓨터만이 가능한 영역 중의 대표적인 것이 '검색' 기술이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을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조선시대에 인도에서 코끼리를 주었다는데,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면, 단순히 '코끼리'라고 검색하면 된다. 이러면 과거에는 사학자들이 몇 년에 걸쳐 조사해야 했던 것이, 컴퓨터의 도움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린다. 네이버와 구글 같은 검색엔진이 신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다름 아닌 뛰어난 검색 기법 때문이다.
육체와 영혼, 인간과 컴퓨터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애매한 것이 있다. 처음 인간은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컴퓨터라는 강철로 된 육체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컴퓨터의 영혼이 되는 셈인가? 의도대로라면 그래야 할 텐데, 실은 반대다. 형이상학에 가까운 건 오히려 컴퓨터 쪽이다. 컴퓨터는 절대적이며, 무한하며, 영원하다. 전기가 공급되고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한, 신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시대 신이 인간을 억눌렀던 것처럼, 컴퓨터도 인간을 억누르는 것이 아닐까?
이와 같은 불안은 SF 사이버 펑크에서 즐겨 다루는 주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집 '아이, 로봇'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로봇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우주 스테이션에 인간 우주인이 불시착한다. 그런데 그 로봇들은 인간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인간이 아무리 로봇의 주인이라고 얘기를 해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육체는 로봇보다 하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봇은 인간의 구조요청을 기각하고 감금한다.
물론 현대 기술로는 아직 이 소설같은 이야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온라인 게임 중독으로 PC방에서 며칠 밤을 꼬박 새고 과로사 하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는데, 이와 같이 주객이 전도하여 기술이 인간을 해치는 현상은, 기술이 발전함에 있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 기술에서 윤리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인간의 자아 범위 확대
그렇다면 컴퓨터는 인간을 해치기 때문에 멀리 해야 할 것인가? 그보다는 앞으로 컴퓨터와 인간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며 컴퓨터가 인간의 한 기관으로서 작동하게 될 것으로 본다. 즉 인간의 자아 범위에 컴퓨터가 편입되어 결과적으로 컴퓨터의 기능이 곧 인간의 기능으로 인식될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신경생리학에서 '자아감'의 해석에서 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자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자아가 있다고 느낀다. 이때 자아의 범위는 인간의 신체 뿐 아니라 '나'라고 느끼는 모든 것, 내가 입는 옷, 내가 타는 차, 내가 사는 집, 내가 만나는 사람 등을 모두 포함하여 자아를 체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활용하는 도구인 컴퓨터 또한,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한 장기기관의 질병처럼 취급될 것이며, 어디까지나 인간의 자아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쓰일 것이다. 그러므로
컴퓨터는 과거 신 존재가 이루지 못했던 신와 인간의 합일점을 보다 쉽게 이루는 새로운 형태의 신이 될 것이다.
참고한 책
시냅스와 자아 - 조지프 르두 지음, 소소 출판
신경생리학의 입장에서 해석한 철학적 개념을 참고했다.
가상현실의 철학적 의미 - 마이클 하임 지음, 여명숙 옮김. 책세상 출판
가상현실을 통한 인간의 자아범위 확대를 참고했다.
형이상학 - D.W. 햄린 지음, 장영란 옮김, 서광수 출판
형이상학의 개념을 참고했다.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 - 이정우 외 지음, 이룸 출판
기술과 운명 - 이정우 지음, 한길사 출판
SF 사이버 펑크 작품에 대해 참고했다.
현대사상 (김미기 교수님) 기말 레포트로 제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