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06/04/09 14:12(년/월/일 시:분)
나는 작품을 볼때 굉장히 냉정한 편이다. 공포영화를 봐도 무섭기는 커녕 깜짝 놀라지도 않고, 아무리 구구절절한 신파조 영화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본다. 영화보면서 우는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일부러 따라해 보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눈물이 억지로 나오는 건 아니었다.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TV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것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이산가족 얘기를 영어 더빙으로 해주는 걸 봤을 때였다. 중국을 거쳐서 많은 돈을 들여 목숨을 걸어가며 기어코 만나려는 이산가족의 얘기를, KBS 일요스페셜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사서 영어 더빙한 것을 다시 우리나라 케이블 TV에서 한글 자막을 입힌 것을 보는데, 왜 그리 슬프던지.
제3자인 미국 사람의 입장에서 봐도 남북문제는 정말 슬픈 일이었다. 더욱 슬픈건 그리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이산가족은 생이별을 한 채로 죽고 말 것이다. 그리고 세대가 지나고 점점 그 감정이 흐릿해져 간 후에 언젠가 혹시라도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 심지어 목숨을 걸어가며, 기어코 중국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그저 얼굴이라도 보고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다시 서로의 국가로 돌아가는 것이다.
두만강은 한강만큼도 안 되는 좁은 강이다. 저 건너에서 서로의 얼굴을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할 정도다. 그렇게 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가지 못하다니. 그보다 더 먼 나라도 다니는데 그 가까운 곳을 못 가다니. 얼마나 슬플까.
두번째는 TV광고에서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이라는 곡을 들었을 때였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1~2년에 한번씩은 꼭 TV에서 듣게 되는데, 불과 그 짧은 15초짜리 광고가 끝나기도 전에 울컥 눈물이 나올 지경이니, 이거야 원.
걱정을 모두 벗어버리고서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어린이답게 활짝 웃어요 세상 밝으니
걱정하면 무엇해 즐겁게 노래하자
걱정을 모두 벗어버리고서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작사 미상 / 작곡 브라운(도대체 무슨 브라운인지는 알 수가 없다)
요즘 LIG 생명보험 광고를 통해 또 반사적으로 눈물이 난다. 전에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 광고에서 이 노래가 나오는 바람에 또 눈물이 났다니까. 아 정말 피곤해 진짜.
이 노래는 1970년대 이상구박사의 뉴스타트 운동으로 유명해진 노래다. 지금도 윈도우즈 XP를 부팅할때마다 나오는 "새로운 시작", 영어로 New Start. 맞다. 그거다. 나는 처음에 그게 이상구박사꺼 표절한 줄 알았다
뭐 즐겁게 살면 엔돌핀이 나와서 백혈구가 강해져서 건강해진다는 이론으로, 정신만 잘 다스리면 육체의 질병도 낫는다는 저기 플라톤 시대에나 통할 법할 구시대의 이론이다. 하지만 당시 "하면 된다"는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해서 "그래,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헛된 생각을 가지게 했던,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과로사 시키고 직업병을 가져왔던 결점투성이 이론이었다.
그래서 기껏해야 고통을 덜어주고 일시적으로 면역기능을 향상시켜주는 정도에 불과했던 엔돌핀을, 졸지에 무슨 만병통치약에 불치병도 고치는 약으로 포장해서 한 평생 잘 먹고 잘 살았던 사기꾼이 이상구 박사의 정체였던 것이다.
사실 나도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한창 이상구 박사의 건강 세미나 테이프에 심취해서, 일일이 받아적으면서 들었을 정도로 열성 팬이었다. 그 세미나에서 즐겨 사용하던 노래가 "걱정을 모두 벗어버리고서"와 "뉴스타트 해보세요" 였다. 이 노래를 부르면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고 전해진다.
http://www.leesangku.org/
이상구박사 뉴스타트 센타
지금도 이상구 박사의 세미나는 계속 열리고 있으니,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엔돌핀의 힘으로 불치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허망함을 깨닫고 여전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http://www.leesangku.org/view3.php?pagename=loveduet.php
이상구박사 뉴스타트 센타 - 사랑의 듀엣과 함께 - 뉴스타트 동요방 - 01. 걱정을 모두 벗어버리고서, 07. 뉴스타트 해보세요
http://pullip.ktdom.com/dyo/d518.htm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이라는 곡으로 잘 알려진 이 노래는 1950년대 미국의 캠프운동 때 나온 노래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캠프송으로 사랑을 받았던 곡입니다.
여기의 노랫말은 어린이들에게 맞도록 젊은이답게를 어린이답게로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 부분은 웃어요로 고친 것입니다.
인간은 환상의 힘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슬퍼. 세상은 밝지도 않고 어린이답게 웃어봤자 나아지는 것은 조금도 없다. 그저, 기분이 좋아질 뿐이다. 우리에게 내려질 수 있는 구원은 오로지 그것 뿐이다.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