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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영상

브로크백 마운틴 (2005) - 담백한 보이즈 러브

06/03/24 12:18(년/월/일 시:분)

왼쪽이 히스, 오른쪽이 제이크. (실제 배우이름)

카우보이의 사랑이야기라.. 카우보이즈 러브. 그런 영화군! 덕분에 나는 처음부터 맘편하게 BL물의 시각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재미는 역시 "누가 과연 공수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 맞춰보자. 누가 품에 안겨서 여자처럼 앙앙거리는 역할일까. 또 그런 귀여운 상대를 두꺼운 팔로 안아줄 듬직한 쪽은 누구일까.

언뜻 보면 눈썹 진하고 좀 느끼해보이는 플레이보이 타입의 제이크가 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히스는 좀 다소곳한게 평생 한 사람만을 섬길 현모양처 타입이랄까? 뭐 실제로 먼저 찝적거린 쪽도 제이크였고. "어이 거기 참하게 생긴 아가씨, 여기 아무도 없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병풍삼아 오늘밤 단 둘이, 오빠랑 놀아볼테야?"

하지만 첫날밤(...)이 되자 역시, 제이크는 안기는 쪽이었다. 역시, 무뚝뚝하고 날카로운 눈매가 공, 눈 크고 잘생기고 귀여운 쪽이 수잖아. 정석대로 가는군 싶었다. 첫날밤이 지나자 무뚝뚝한 히스에게 귀여운 제이크가 이래저래 말을 붙이며 달라붙는 꼴이었고, 그러면 히스는 못 견디는 척 하며 슬쩍 애정표현. 그러면 제이크는 금방 무너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두번째 잠자리에서 공수교대가 일어난다. 아니 잠자리는 내키는대로 하는건가? 하긴 남자끼리는 주고 받고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잠자리는 그렇다 쳐도, 연애의 주도권에서는 공수가 나뉘는 건 확실하지! 나는 이제 심리적 공수를 따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놈의 영화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이고를 떠나서, 공수교대를 쉼없이 주고받는 것이었다.

히스가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한번 삐지면 여자애처럼 앙탈을 부리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원. 그러면 아무리 제이크라도 스르르 무너지고 말지. 그렇게 헤어졌다가 먼저 연락을 한 건 제이크 쪽, 그러나 만나서 뜨거운 키스를 퍼부운 쪽은 히스. 그걸 또 와이프에게 들키는 히스. 아 복잡하다 복잡해

..이렇게 불순한 의도로 영화를 즐기는 사이, 제이크가 죽어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히스가 죽으면 제이크가 울고불고 난리 피면서 신파조로 끝나버릴 테니까. 히스는 슬퍼해봤자 무뚝뚝하게 슬퍼할 거 아냐. 영화는 실상 이렇게 내 머리속에 몇 권의 동인지를 생산해낼 만큼 풍부한 동성애 코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연애물이나 신파조에 빠지지 않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잘도.

그래서 이런 면이 미국의 시니컬한 정서와 맞아 떨어져서 흥행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상 연애물에서 나올 수 있는 재미있는 장치는 거의 다 써먹으면서도, 청년부터 시작해서 노년기까지 남녀관계.. 아니 게이관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편에 몽땅 담아냈다는 점에서 통찰력도 뛰어나다.

물론 BL물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는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혼자 씩 웃으며 재미있게 볼만한, (게이들의) 이루어질수 없는 슬픈 사랑이야기다. 둘이 못 이룬 사랑, 저 하늘에 닿으면 워우워어 언젠가는 이루어질꺼야 흑흑.

그래서 왕의 남자랑 비슷하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이것 말고도 이들 배우가 영화를 위해서 특수 기술을 배워야 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준기랑 감우성이 줄타기 배우느라 고생했던 것처럼, 이들 배우도 아마 평생 안해봤을 카우보이, 특히 제이크는 로데오를 능숙하게 타는 연기까지 비록 잠깐밖에 안 나오지만 오랬동안 배워야 했을 것이다.

물론 히스나 제이크나, 이준기만큼 썩 팔릴만한 외모를 가진 건 아니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겠다. 저 둘이서 시컴죽죽한 얼굴로 빨간 음료수를 손에 들고 느끼한 포즈로 누워서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같은 노래를 부른다면, 아무리 BL물을 좋아하라는 나라도 흠씬 패주고 싶을지도... 아니, 이준기도 솔직히 그 광고는 못봐주겠더라.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166

  • 제목: 브로크백 마운틴 - 두번째 리뷰
    Tracked from 작도닷넷 06/04/02 07:33 삭제
    KBS 개그콘서트 - 문화살롱 2006년 3월 26일자 방송분을 보면, 우리나라 드라마의 전형성을 공격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드라마 "그 밥에 그 나물" - 드라마의 ..
  • 태공 06/03/24 14:52  덧글 수정/삭제
    아...브록뷁 보고싶은데...
    요즘은 영화볼 여유가 당췌생기질 못하내.
    • xacdo 06/03/24 23:35  수정/삭제
      보고는 싶은데 크게 보고 싶지는 않다면 그냥 안봐도 무방하겠지 뭐. 나도 같은 이유로 킹콩을 여태껏 안 보고 있다.

      영화는 정말로 보고 싶을때 봐야 재밌어.
  • 우누 06/03/31 07:43  덧글 수정/삭제
    제이크가 얼마나 귀여운지 남자이신 작도님께선 잘 모르시는군요..
    • xacdo 06/04/01 06:11  수정/삭제
      네 잘 모르겠습니다. 히스가 훨씬 더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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