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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온라인 페미니즘의 정서적 급진주의에 대하여

16/06/04 11:04(년/월/일 시:분)

1.

네이버에서 최장집 교수님 강연을 듣다가 한 마디를 들었다. 정서적 급진주의. 우리나라 운동권의 문제라고 하셨다.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일시적인 정서의 폭발은 그럴 수 있지만, 그것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정서적 급진주의"라는 말을 처음 들어서, 어디 출처가 있는 건가 해서 찾아봤는데 없었다. 영어로 하면 Emotional radicalism 정도가 될텐데, 구글 검색으로도 안 나오는 걸 보니 아마도 최장집 교수님께서 직접 만드신 말 같았다. 나는 이 말이 학문적 용어인 듯 하면서, 지금의 운동권 정치인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투가 있다고 느꼈다.

이제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데모 운동 등으로 너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실제로 사회를 바꾸는데 쓰자는 얘기다. 법규를 개선한다거나 시민사회를 조직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현실과 타협하며, 드라마틱하게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뚜벅뚜벅 한 걸음씩 내딛자는 얘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정체도 인용했고.


http://tvcast.naver.com/v/896856
[하이라이트] 국가의 현실, 개인의 현실 -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강연 : 최장집 교수)

http://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109984&rid=2904
국가의 현실, 개인의 현실 _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출처 : 강연-최장집(고려대학교 명예교수) | 네이버 열린연단)


2.

나는 교수님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일단 최장집 교수님 입장에서는 한때 안철수 의원의 정책 연구소장을 하다가 그만두신 전력도 있고, 그래서 너무 정치판에 민중들의 분노를 이용하기보다는 좀 법규, 정책에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신 말씀일 것이다. 그리고 너무 정치세력에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기보다는, 시민사회 등으로 권력이 분산되어야 쏠림을 방지하고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생각하실 것이고.

하지만 내가 화가 난 이유는 이 "정서적 급진주의"라는 말이 정확히 지금 강남역 10번출구 추모 운동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교수님께서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에 많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어쩌면 이것이 동일한 논리로 온라인 페미니즘을 비판할 수 있는 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3.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 운동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나는 이 운동이 과잉반응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강남역 근처 살인사건으로 추모할만 한가? 예.
이 사건은 여성혐오 사건인가? 그런면도 있지만 애매함.
여성등의 반응이 너무 감정적으로 과잉인가? 예.
이 감정적 과잉반응을 일부 여성단체가 전략적으로 이용하는가? 예.
여성혐오를 넘어서 남성혐오 반응도 발생하는가? 사실은, 약간 예.
그럼 이 감정을 자제하고 차분하게 만들어야 하나? 아직은, 아니오.

나는 설령 감정적 과잉반응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잠시나마 주목하게 하려면 이런 사회적 에너지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말 그대로 데모, demonstrate다.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 운동이 얼마나 지속되었나? 5월 17일부터 22일까지, 고작 6일이었다. 일주일도 채 안되는 기간이었다. 이 짧은 기간동안 정말 엄청난 정서적 폭발이 일어났다. 특히 살인위험을 느낀 여성들이 극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때론 이성을 잃고 극단적인 표현을 하기도 했다. 입에 담기도 어려울 심한 표현까지도 오르내렸다.

그래서 이것을 급진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무슨 화를 많이 낸다고 급진주의냐. 사람을 죽이거나 뭘 부수고 점령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말하자면 정서적 급진주의가 아닐까 싶다.


4.

정서적 급진주의는 나쁜가? 우리는 항상 예의를 갖추고 차분하게 얘기해야 하는가? 조너선 화이트 - 바른 마음(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에 따르면 그렇다. 화난 목소리로 얘기하면 전혀 설득이 안된다. 화난 목소리로 말하면 진영이 정확히 갈리고, 각 진영이 각각 결집된다. 사회에 단층선이 정확히 생기고, 갈등이 심화된다. 해결은 요원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얘기해야 할까? 정확히 말하면 나는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화를 내며 큰 소리도 내야 하고, 조용한 소리로 설득하기도 해야 한다. 그 두 가지 흐름이 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당신 말도 맞소, 말씀하는 황희 정승 같지만, 아니 정말 실제로 그렇다.

굳이 나누자면 두 세력이 있어야 한다. 첫번째 세력은 문제 제기를 한다. 정서적 급진주의를 이용하여 세상에 큰 충격을 주고, 문제에 집중하게 한다. 그리고 두번째 세력은 이 관심을 이용하여, 회색 지대의 사람들에게 논리를 전파하고 연대하여, 자금을 모으고 영향력 있는 사람을 모아서 실제 법규와 정책을 바꾼다. 이 두 세력이 다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첫번째 세력이 10가지를 이야기하면, 두번째 세력은 고군분투에서 1~2가지를 실행할 것이다. 첫번째 세력이 100가지를 얘기하면, 어쩌면 두번째 세력은 겨우겨우 10개를 달성할까 말까 할 것이다. 어쩌면 첫번째 세력은 말만 앞서는 사람이고, 맨 앞에서 지랄하며 사람들을 호객하는 장사꾼일지도 모른다. 실제 일은 사실은 두번째 세력이 다 하고, 뒤에서 묵묵히 일하며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첫번째 세력과 두번째 세력이 설령 성격이 달라서 찢어져 간다 하더라도,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톱니바퀴처럼 각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5.

나는 기존의 페미니즘 운동이 대체로 너무 순했다고 생각한다. 너무 실행에만 집착하다보니 운동을 할 동력을 잘 얻지 못한 것 같다. 예의를 차릴 것 다 차리고, 기존에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의 얘기를 너무 잘 들어주고 하다보니 정작 본인들의 얘기를 잘 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그러므로 지금 메갈리안, 워마드 등에서 정말 심한 막말을 하더라도, 설령 이들의 말에 전부 동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더라도(나도 남잔데 어떻게 남자 욕을 함께 하겠는가), 나는 이들이 세상에 주는 충격이 아직까지는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민주주의 운동권처럼 수십년씩 지속되면 피로감이 느껴질지 몰라도, 아직은 이들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본인들의 에너지를 조절할 줄도 아는 것 같다. 강남역 10번출구 추모 운동도 비가 온다는 핑계로 서둘러 접은 것도, 이런 에너지를 아끼는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어진 것이 모금운동이었다. 페이스북 소송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티셔츠를 판매하는데, 원래 목표였던 925만원을 넘어 현재 8천만원이 넘었다. 마감까지 아마도 1억원을 넘을 것 같다.

http://tumblbug.com/mersgall4
한 장의 페미니즘으로 세상과 맞서다
Mersgall4의 패션 프로젝트


어떻게 보면 지금 메갈리안, 워마드가 추구하는 형태는 기존의 한국 운동권보다는 유태인 압력단체인 것 같다. 유태인에 부정적인 활동에는 소송 등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유태인에 긍정적인 작품에는 펀딩을 하는 등 경제력을 기반으로 사회에 압력을 가하는 형태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이는 표현은 상당히 과격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이런 과격한 표현조차도 충분히 전략적으로 보인다. 본인들의 힘과 한계를 잘 아는 것 같고, 급진주의적인 측면도 어디까지나 정서적인 수준에 머무르도록 조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6.

나는 이런 급진적 단체와 현실적 단체를 보면,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가 생각난다. 둘 다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을 했던 분들이지만, 성격이 대단히 달랐다. 너무 생각이 달라서 함께 하지 못했고, 나중에서야 약간의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보면 인권운동은 대체로 이런 두가지 성격의 단체가 둘 다 필요하다.

한국의 독립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현실적인 단체도 있었던 한편, 반달리즘을 주력으로 삼는 폭력적인 단체도 있었다. 이 둘이 생각이 너무 달라 함께 하지는 못했어도, 한국의 독립에는 사실 둘 다 필요했던 운동이었다.

물론 말콤엑스는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상당히 급진적인 운동을 해서 나도 완전히 다 긍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흑인 인권에 나름 기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고작 정서적으로만 급진적인 한국의 여성단체를 보면 얼마나 순하게 느껴지는지.

이런 사람들이 한번 수풀을 헤치고 뚫어놓아야, 그 길을 따라서 더 위대한 사람도 따라가고 그러지 않을까. 맨 앞에서 모두의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으며 최전선으로 돌진하는 전위부대처럼, 누군가는 맨 처음에 그 역할을 해 줘야 나머지 부대도 따라 갈 것이다.

꼭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 성격에 맞게 다른 역할을 하며 다양한 결을 켜켜히 쌓아가면, 결과적으로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사회적 통합보다 더 높은, 사회적 다양성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7.

요즘 산업의 변화가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을, 근면한 체력보다 창의적 사고를 강조하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적어도 수십 년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분명히 다르지만, 평균이 그렇다는 거지 개개인의 차가 성별의 차보다 훨씬 크고, 특히 정서적 노동 측면으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못한 점이 전혀 없다. 게다가 최근의 젊은 층은 남성선호사상으로 남성의 숫자가 훨씬 많아서,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적 무기로 사용할 경우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남성선호사상이 역설적으로 남성의 지위를 낮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 운동도 이제 시작일 뿐이며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일 것이다. 지금은 대단히 무리한 주장도 하고, 때론 말도 안되는 실수를 하기로 하겠지만, 앞으로 계속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 있는 단체 말고도 더 많은 단체들이 더 생기고 뛰어들면 이런 여권 신장은 더욱 굳건한 흐름이 될 것이다.


8. (6/14 추가)

덧붙여 말하자면 온라인 페미니즘의 정서적 급진주의는 어디까지나 일시적, 도구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최장집 교수님의 지적대로, 한국 민주화 운동권처럼 페미니즘 운동에서도 이런 정서적 긴장이 지나치게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피해자 문화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사의 사소한 차별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면, 그런 감정의 결이 켜켜히 쌓여서 정서적 손상을 받을 수 있다. 나는 항상 피해자고(피해자인 건 사실이지만), 내가 잘못되는 건 다 내가 차별을 받아서이고, 그러다가 결국 그런 어두운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으면, 피로 물든 복수극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맨날 괴롭힘당하다가 전부 몰살시키는 영화 "캐리"처럼.

http://en.wikipedia.org/wiki/Microaggression_theory#Culture_of_victimhood
Culture of victimhood - Microaggression theory

http://heterodoxacademy.org/2016/03/26/victimhood-culture-at-emory/
Victimhood culture explains what is happening at Emory
by Jonathan Haidt


이런 피해자 문화에 빠져들지 않는 방법으로는 희화화가 있다.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을 즐겁다는 뜻인 "게이"로 정체화하는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경미한 차별을 받을때마다, 그것을 정확히 지적하되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것이다.

너는 나에게 잘못을 했어. 나는 그 점을 꼬집어 정확히 말해. 하지만 그건 나에게 아무런 정서적인 타격을 입히지 않아! 이렇게 유쾌하게 넘기는 것이다. 설령 속마음은 쫄아들더라도, 겉으로는 안 그런척, 센 척하고 넘기는 것이다. 그래야 그 사람이 움찔하고 앞으로는 조심하면서, 나도 다치지 않지. 이런 마음가짐이 약자, 소수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여성의 사회적인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일단 본인도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살아남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이중적인 전략, 매사에 예민하게 흥분하는 듯 하지만 자신은 결코 그런 부정적인 감성에 매몰되지 않는 전략이 필요하다.


9. (6/17 추가)

이렇게 싸우긴 싸우되 말리며 싸우는 분들을 보면, 촛불집회 때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분들이 생각난다.

시위가 항상 그렇듯, 밤이 깊어갈수록 시위가 점점 격렬해졌다. 나는 그 광경을 야근하며 인터넷 생중계로 보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열받아서 경찰 버스를 발로 차고 부수려 했다. 그랬더니 옆에서 양복 입은 민변 분이 나와서 말리는 것이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하면 저희가 도와드릴수가 없어요!"

시위하러 나온 분들 대부분이 가벼운 옷차림인 것에 비해, 확실히 양복을 갖추고 나오신 민변 분들의 권위는 대단했다. 아무리 땀에 쩔어 짜증나서 막 부수려는 움직임을 그 양복의 권위가 막아선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유순하게 멈춘 건 아니고, 결국 경찰 버스가 약간 부서지긴 했지만, 민변 분들도 성화를 내면서 몸으로 막아서, 간신히 그 부수는 분들을 막을 수 있었다.

확실히 경찰 버스를 부수면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라 해도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다. 벌금은 그렇다 치고, 언론에서 "폭도"로 불러도 뭐라 마땅히 변호할 방법이 없을 수 있다. 그래서 최소한, 지나친 폭력으로 번지는 것은 현장에서 미리 막자, 이런 생각일 것이다.


나는 온라인 페미니즘의 정서적 급진주의에 대해서도, 이것이 정서적 수준에서 전략적으로 용인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육체적이거나 현물적인 폭력적 급진주의로 번질까 우려하는 분들의 우려를 안다.

문제는 이런 분들의 우려가, 이런 우려를 빌미로 페미니즘 전체를 반대하는 논리로 삼는 분들과 언뜻 보기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 분들에게 큰 뜻으로 페미니즘을 찬성하는 거냐, 반대하는 거냐 물어야 할까? 이게 무슨 피아구분하자는 십자가 밟기도 아니고, 이렇게 물으면 결국 싸우자는 거니, 참 어려운 지점이다.


급진주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과격해질수밖에 없다. 급진주의는 수명이 짧다. 그러면 결국 어느 순간에는 타협주의, 세속주의에게 그 역할을 넘겨야 할 것이다.

다만 나는 아직 이 분야에서는 급진주의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생명력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긍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도 이러다 너무 지나치다 싶으면 마치 경찰버스를 부수는 분들을 말리는 양복입은 민변처럼 말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2552

  • aa 16/06/05 01:35  덧글 수정/삭제
    저도 같은 생각 입니다
  • Ddd 16/07/19 04:36  덧글 수정/삭제
    같은 생각입니다. 좋은 글이네요
  • ㄱㄴㄷ 16/07/20 02:33  덧글 수정/삭제
    공감합니다. 좋은 글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써 주신 것 같네요
  • CIE 16/07/20 05:43  덧글 수정/삭제
    좋은글이라 댓글 남기고갑니다.
  • 이만수 17/01/24 19:13  덧글 수정/삭제
    급진주의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일베가 보수를 나꼼수가 보편윤리를 참칭하는것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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