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인물
16/06/03 00:40(년/월/일 시:분)
1.
새뮤얼 헌팅턴 - 문명의 충돌이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다. 1996년 책인데도 미래를 너무 잘 맞춰서 "큰무당 헌팅턴 선생"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얼마 전 2008년에 돌아가셨으니 이젠 본인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정감록 같은 예언서가 되어버렸다.
이 책에서 가장 화제가 된 부분이 "
이슬람의 경계선은 피에 젖어있으며 그 내부 또한 그렇다" 였는데, 최근 알 카에다, IS 등의 이슬람계 테러 세력으로 현실화되었다.
트위터에서 그 다음으로 주목한 예언은 중화문명이었다. 동아시아 3국, 한중일 중에서 일본은 독단적으로 갈 것이나, 한국은 문화적 유사성으로 중국에 편입될 것이고, 중화문명과 이슬람문명이 유사하여 연대하여 서구 문명에 충돌할 것이라는 예언은 정말 충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유교 + 이슬람 = 유슬람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물론 한국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닌게, 기독교가 동아시아 3국 중 유일하게 상당한 기세를 점유하고 있는데, 이것이 서구 문명의 전파라기보다는 기복적 무속신앙, 권위주의적 유교사상과 융합되어 기형적인 형태인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과 한국 유교문명의 연대는 설령 큰 방향이 그렇게 가더라도 작은 방향으로는 그리 순조롭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익산/제주 할랄단지 반대도 그렇고)
2.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관점에서 나를 돌이켜보면, 나는 완전히 서구 문명에 젖어있다. 서구 문명이 내세우는 자유, 인권, 사랑 같은 보편적 가치가 굳이 물을 필요도 없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성지향성/성정체성을 떠나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와 같은 권리를 누려야 하고, 연공서열을 떠나 젊은이도 어르신과 동등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등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럴까? 아마도 나와 같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 부분 서구 문명의 보편적 가치에 젖어있을 것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이런 서구 문명에 젖은 젊은 사원들과, 유교/중화 문명에 젖은 중년 사원들이 서로 충분히 소통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조직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이런 단층선은 비단 회사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도 공유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충돌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이 1997년 IMF 위기 때와 2008년 금융위기 때였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어려워지니 누군가를 해고하긴 해야 하는데, 직급이 낮은 사원을 자를 것인가 아니면 높은 사원을 자를 것인가? 이 문제에서 1997년에는 높은 쪽을, 2008년에는 낮은 쪽을 선택했다. 이것이 나는 세대간 충돌 양상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사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직급이 높은 쪽을 자르는 편이 효율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서는 생산성을 떠나서 나이가 많을수록 어찌됬건 급여를 올려주는 연공서열제, 평생직장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직급이 높을수록 흔히 말하는 가성비, 급여 대비 생산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1997년 IMF 위기 때는 높은 분들을 먼저 잘랐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대체로 집안의 가장이다보니, 수익이 끊겨 한순간에 가정 전체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빠져 사회적인 파장이 매우 컸다. 즉 급여 대비 생산성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그들이 짊어지는 생활비 혹은 가족적/사회적 책임에 비하면 급여의 효율이 결코 낮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2008년 금융위기로 10여년만에 다시 한번 비슷한 상황이 도래하자, 이번에는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크게 줄이는 형태로 대응했다. 덕분에 IMF때처럼 가정이 무너지는 사회적 여파는 줄었으나, 청년들이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청년실업 문제가 새로 생겼다.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고 싶으나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이때 청년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1. 중년들과 싸워 일자리를 쟁취한다
2. 중년들에게 굽히고 생활비를 타낸다
문제는 그 싸울 대상이, 가족적으로 보면 아버지였다는 것이었다. 내가 일자리를 얻고자 하면 우리 아버지가 짤려야 하는 비극적인 제로섬 게임이었다. 그래서 이것이 사실은 서구 문명과 유교/중화 문명의 충돌임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생계와 고귀한 서구적 가치관 앞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이 문제를 가족적으로 풀고 말았다.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으나, 차마 가족을 찢는 비극적인 선택을 할 수는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냥 아빠 차 끌고 다니면서 힙합 하고, 엄마 카드 긁어서 애인 생일 선물 사주고 그러는 거지.
덕분에 중장년 실업률은 낮아지고 청년 실업률은 높아지는 상황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가족주의도 해체는 커녕 오히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대가족화되며 유교적 중화 문명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니 2005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던 외침이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버린 느낌이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던 진보 집권이 끝나고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 집권이 시작되는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그때만 해도 공자가 굳이 죽을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었지만, 이제와보니 잠깐 반짝했던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린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3.
즉 나는 청년 세대와 중장년 세대간의 갈등이 사실상 서구 문명과 중화 문명의 대리전이라고 생각하고, 나와 같이 스스로를 사회적 소수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서구 문명의 대리자로서 현재의 유교 문명과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싸우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나의 생각에 발목을 잡는 한 사람이 있었다.
도올 김용옥은 미국 하버드에서 철학 박사를 하셨고, 보수정권에 비판적이라 진보적일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다. 도올 김용옥은 노자, 공자 등의 고전 유교 경전 TV강의로 화제가 된 사람이다. 외국에서 학위를 딴 주제도 전부 동양철학이었다. 그의 관심은 항상 중국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이번 JTBC 차이나는 도올에서 친중 성향을 보이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
여기까지는 유교/중화문명에 포섭된 편이었는데, EBS 10부작 한국독립운동사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전에는 없던 민족주의자의 성격도 추가되었다. 한국은 민족이 중심인 국가이고, 여기에 한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수하다는 약간의 선민사상도 살짝 곁들여졌다. 그야 독립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비록 한국의 독립운동이 썩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사실 제국주의 시대에 스스로의 무력과 자본으로 자력 독립을 한 나라가 얼마나 있나 생각해보면(미국밖에 없다), 한참이나 부족한 자원으로 한국의 독자적인 문화를 지키며 끝까지 저항한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5.
한국이 지금보다 더 나은 국가가 되려면 어떡해야 할까? 진보 쪽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이 민족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족주의는 서구 문명의 보편성, 다양성과 충돌하여 소수자/이민자 인권 보호에 잘 맞지 않는다. 우리 한 민족이 아닌 외부인들의 권익을 왜 보호해야 하나? 우리도 죽겠는데? 이런 질문에 답을 하기가 어렵다.
여기에 도올 김용옥은 지난 JTBC 차이나는 도올 마지막회에서 한국 민족주의의 확장으로 고구려/고조선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예전에 KBS 논어 강의에서 제시했던 민족주의의 세계시민주의(코스모폴리타니즘)화와 맥락이 통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범위를 좁혀 그나마 현실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한 개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조선이나 고구려나 발해의 영토를 보면 중국과 한국의 역사가 현재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중국의 동북지역,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만주국으로 독립시켰던 곳, 지금도 조선족 자치구가 있어 여전히 한국말이 통하는 지역. 여기까지를 우리 한민족의 영토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일본의 나라 지역도 한국의 백제 사람들이 넘어간 것이니 일본까지도 고구려/고조선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통일신라, 조선의 영토를 우리의 한계로 생각하지 말고, 광개토대왕이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중국의 동북공정에 휘둘리지 말고 조선족까지도 우리 한국 사람으로 포용하자는 생각이다.
차이나는 도올 내내 친중 발언을 했으면서, 제일 마지막 강의로 중국이 제일 싫어할 발언을 한 걸 보면 도올 김용옥도 참 뿌리깊은 민족주의자가 아닐까 싶다. 이제와서 중국이 조선족 자치구를 우리에게 넘길리 만무하겠지만, 적어도 남북통일보다는 더 큰 비전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즉 도올의 생각은 우리가 유교/중화문명으로 들어가는데는 거부감이 없지만, 현 중국 정권에 요구할 것은 확실히 요구하며 받아낼 것은 받아내자는 주의다. 중국이 아무리 대국이어도 우리가 쫄릴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협상적, 실용적인 면은 한편으로는 서구적이기도 하다.
6.
물론 생각해보면, 과연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가 같이 갈 수 있겠느냐 하면 그럴리 만무하고, 백번 양보해서 한민족의 범위를 남한에서 북한까지가 아니라 만주의 조선족까지 확장하자는 주장도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는 않다. 하물며 일본 나라까지도 한민족의 영토로 치자니, 이게 무슨 환단고기도 아니고. 무리한 주장인 건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유교/중화문명의 영향권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서구 문명의 보편적 가치를 포용하자는 말과 같다. 유교 사상도 유교 경전의 문구 하나하나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큰 뜻으로 받아들이면, 즉 근본주의를 버리고 세속주의적으로 접근하면 (애초에 유교 자체가 세속적이기도 하고) 유교 사상도 서구 문명을 충돌 없이 받아들일수도 있다 - 이것이 도올 김용옥의 입장이다. 참으로 이상적이다.
하지만 때론 무리하게라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세상의 흐름이 크게는 그렇게 안 가더라도, 작게 보면 수많은 흐름들이 동시에 흘러간다. 심지어는 서로 상충되는 흐름들도 같이 뒤섞여 흘러가기도 하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흐름이 섞일 때도 있다. 그런 이상한 섞임이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전체적인 색채를 풍부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열을 말해야 한둘이 될 것이다. 백을 말해야 열 몇 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더 무리하게 말해야 한다. 현실이 그렇더라도 이상을 말해야 한다. 고집을 피우자는 게 아니라,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현실은 작아도, 생각은 크게 가질 수 있지 않은가? 기왕이면 제일 크게 가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는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가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충돌할 수는 있어도 그런 충돌이 우리 사회의 결을 한층 더 촘촘하고 세세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현실주의자가 너무 많고, 이상주의자가 적다고 생각해서이다. 나는 그 빈칸을 채우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 이런 이상주의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그쪽 빈칸을 채워주면 좋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우리 생각의 영토를 넓혀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