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5/09/11 14:03(년/월/일 시:분)
갑자기 옛날에 괴로웠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쿡, 쿡 쑤시듯 머리를 파고든다. 딸꾹질처럼 멈출 수가 없다. 계속 사로잡힌다. 몸이 피곤할수록, 아플수록 심해진다. 이게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몸이 편안할 땐 괜찮다. 하지만 살다보면 체력이 떨어질 때도 있고, 정말 정신없이 바쁠 때도 생긴다. 게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노화가 와서 점점 몸이 쉽게 피곤해지고 피로도 잘 풀리지 않는다. 몸의 노화가 마음의 결함을 더 쉽게 불러온다.
이러면 자꾸 과거에 사로잡힌다. 과거에 괴로웠던 그 시점을 기준으로 마음이 거기에 머물러버린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 때의 고통스러운 감정이 점점 강화된다.
임근준씨가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에서, 자기는 그런 과거의 괴로운 감정을 잘 덮는다고 말했다. 그냥 덮는게 아니라 그 위에 잔디도 깔고, 물도 주고, 잘 관리해서 들썩이지 않도록 차분하게 정리한다고 했다.
http://www.podbbang.com/ch/7776
여섯 빛깔 무지개 - 팟빵
...정확히 몇 회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지금 바로 이 소중한 현재의 시간을 살아야 하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살아야 할텐데, 그래서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몇 개 골라서, 마음의 조경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 때의 상황을 나 이외의 다른 이의 관점으로도 요리조리 돌려보며 조망해보고, 해롭지 않은 수준에서 자기 합리화도 해보고, 그 일의 당사자에게 직접 할 수 없으니 간접적으로 속죄하기 위해, 좀 더 넓은 사회적 범위로 확대하여 공익적으로 승화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마음의 빚을 차곡차곡 갚아나가고,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것 같았던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한결 홀가분했다. 어느 정도는 자기 기만이고, 정신 승리이긴 하지만, 부끄러워서 구태여 남 앞에 꺼내 말할 것도 아닌데, 내 마음 깊은 곳의 사정인데 좀 관용적이면 안될까.
또 어느 궂은 날이 찾아온다. 저기압이고 습도가 높아 예전에 다쳤던 등짝의 어느 한 부위가 심하게 아파온다. 그럴때 꼭 완전히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고통스러운 과거가 딱 맞춰 생각난다.
하지만 그 풍경은 지난번과는 사뭇 다르다. 그 기억의 주변에 내가 미리 심어놓았던 마음의 조경이 함께 살아난다. 파릇파릇한 풀내음을 풍기고, 전보다 한결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여전히 다소 들썩이고, 자세히 맡아보면 무척 더러운 냄새가 나지만, 그 위로 세심하게 고른 아로마 향이 다소나마 악취를 가려준다.
고통스러웠다고 해서 계속 고통스러울 순 없다. 어찌됐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