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도닷넷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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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블로그의 끝

06/03/20 17:50(년/월/일 시:분)

http://mirugi.egloos.com/1278301
블로그의 끝[Blog's End].

mirugi님의 글은 이런 내용이다. 일단 온라인에 글을 발표하면, 자기가 죽고 그래서 글이 자신의 손을 완전히 떠나는 시점이 되더라도, 글은 '살아있다'. 그래서 온라인에 글을 올릴때 신중하자는 취지의 글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할수가 없다. 과연, 내가 온라인에 올린 글의 수명은 과연 얼마나 될까? 정말로 내 통제범위를 벗어나 나의 수명을 넘어서까지 블로그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럴리가 없잖아.


- 블로그는 일시적인 유행일 뿐이다

이글루스에 있는 유명 블로거들은 대부분 PC통신을 경험했을 것이다. 나 또한 2400bps 단말기부터 시작해서 PC통신의 발전을 리얼타임으로 겪으면서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그 거대하던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넷츠고 등이 전부 없어져버린 것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그 상실감은 그 시대를 겪은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SK가 이글루스를 인수하는게 괜히 말이 많은 것이 아니다.

http://www.ebuzz.co.kr/content/buzz_view.html?ps_ccid=4148
넷츠고가 폐쇠되고 네이트로 통합되면서 동호회는 망했다. 2004년 하이텔 VT 서비스 중단도 많은 유명 커뮤니티를 사장시켰다. 견디다 못한 유저들은 이글루스로 대피했다. 그런 얼음집조차 SK가 인수해버리다니. 이번엔 또 무슨 일을 당할까 두려울 뿐이다.

나는 그때만 해도 xoom 등의 무료 홈페이지 계정 서비스를 기웃거리며 "그저 개인적인 홈페이지 정도라면 앞으로도 계속 무료로 쓸 수 있을거야"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무한 계정을 제공하던 xoom은 nbc에 통합되어 망했고, 다른 무료계정 서비스들도 하나둘 망해갔다. 결국 내 홈페이지도 견디지 못하고 유료계정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나는 그때만 해도 단순히 개인적인 취미로 온라인에 글을 쓰는데 내 돈을 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컴퓨터 공학도인 나 조차도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이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고, 나는 점차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되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건 블로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과거의 글을 보는 방법

물론 지금도 하이텔이나 나우누리에서는 과거의 글을 볼 수 있는 VT 및 웹 서비스를 지원한다.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글들이 예전 그대로 남아있다. 도대체 왜 이런 자선활동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봤자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닐테니 뭐 상관없겠지.

http://www.zdnet.co.kr/microsite/aspirin/log/0,39035016,39141625,00.htm
[ZDNet Korea] 아스피린 - 오, 나우누리 베스트 유머!

뿐만 아니라 아카이브 웨이백머신에서는 인터넷의 수많은 글들을 임의로 수집하고 있다. 아니 동의도 없이 그래도 되는거야? 싶겠지만, 실상 검색엔진의 웹 크롤러도 하는 일은 마찬가지다. 저작권에 문제는 없을까 싶겠지만, 잘 보면 경고문구가 써 있다. "본 내용의 저작권은 해당 저작자에게 있으며, 네이버는 검색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 - 참 편리한 말이지.

http://www.archive.org/
인터넷 아카이브 - 웨이백 머신

나는 여기서 JH님과 earmme님의 다메토크 대결을 뒤져보기도 하고, 나 조차도 잃어버린 내 홈페이지의 자료를 다시 찾기도 했다. 때론 네이버나 구글의 '저장된 페이지'에서 보물같은 글을 발견하면, 오래전에 잃어버린 고대 유적을 찾아내는 기분이다. 이럴때면 크롤러가 싫지는 않다.

지금도 박물관이나 도서관을 가면, 적게는 수십년 전 글부터 많게는 수백년 전의 글까지, 약간의 노력을 들이면 열람할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방법들도 현대 인터넷의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분명히 열람할 수는 있지만, 그걸 일부러 찾아보는 사람은 뭘 연구하거나 전문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 외에는 없다.

과거의 글은 분명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글은 죽은 글이다.


- 중요한건 컨텐츠가 아니라 커넥티비티

사실 블로그는 약간 발전된 게시판에 불과하다. 대단한 기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쓰는 걸까? 그것은 트랙백, RSS, 검색엔진과의 싱크 등이 사람과 사람을 보다 쉽게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쉽게 링크가 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인터넷이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사람들은 뉴스 같은 컨텐츠를 보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인터넷을 대중화 시킨것은 메일이었다. 사람들은 별 쓰잘데기도 없는 내용을 서로 주고받는데 인터넷을 사용했다. 현대에 와서 메일이 메신저로 대체됐을 뿐이지, 하는 일은 비슷하다.

여전히 사람들은 인터넷을 전화처럼 사용한다. 어떤 내용을 다운로드 받기보다는, 누군가와 쓰잘데기 없는 잡담을 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사실 무언가를 다운받는 것도 어떻게 보면 대화의 확장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온라인 게임이야 말할 것도 없고, 쇼프로를 보는 것도 어찌보면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으로 외로움을 달래려는 욕구일 수 있다.

즉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글은 그저 언어의 기능 중에 친교의 기능을 할 뿐이다. 야 날씨 참 좋다. 밥 먹었어? 요즘 잘 지내냐. 서로가 친밀감을 표시하는 뜻없는 말들, 그것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인터넷을 할 뿐이다. 인터넷은 여전히 전화의 사용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외로움을 달리기 위해 친한 척 말할 뿐이라면, 무슨 말을 하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컨텐츠는 중요하지 않다.


- 죽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

그래서 나는 말조심을 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블로그를 하는 이유가 그저 타인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지, 그 대화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즉 웹의 메신저화, 웹의 잡담화가 블로그라고 나는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글 건너편에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는다면, 나의 블로그는 살아있다고 볼 수 없다. 반대로 내가 실제로 죽더라도 블로그를 통해 내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다면, 블로그는 살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글의 존재여부를 떠나서 블로그의 생명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다.

그런 의미에서 커넥티비티가 끊어졌을때가 블로그의 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기술의 발달은 블로그의 컨텐츠를 영원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하이텔이나 나우누리의 과거 컨텐츠가 남아있다고 해서 그것을 살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 하이텔은 죽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블로깅을 할때 원칙이 있다. 작도라는 인간이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게 할 것. 비록 신중하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적이긴 하도록. 그래서 설령 내가 죽고 없어지더라도, 훗날 누군가 이 블로그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도 내가 살아있었다는 실감이 들도록, 그래서 컨텐츠는 사라지더라도 커넥티비티는 남을 수 있도록.

블로그의 생명은 링크에 있다.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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