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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오염된 댓글 판

13/09/16 01:04(년/월/일 시:분)

아내가 내가 요즘 정치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해서, 아차 싶어서 나를 돌아봤다. 신경써봤자 나에게 조금도 이득이 없는 정치 기사에 나는 왜 이리 쓸데없이 신경을 쓰고 화를 낼까. 도대체 그 시작은 어디쯤이었을까.

나의 블로그와 트위터 글을 쭉 돌아보니, 그 시작은 지난 7월 국정원 댓글 사건이었다. 부끄럽지만 나같은 인터넷 죽돌이에게 인터넷 세계는 현실 세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보내온 소중한 공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곳이 오염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마을 우물에 누군가 독을 푼 것 같았다. 더 이상 나는 우물물을 마실 수 없었다.

그 상실감이 나를 화나게 한 것 같았다. 2400bps 모뎀으로 힘겹게 접속해서 수다를 떨던 시절부터, 최신 LTE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를 훑어보는 지금까지, 나에게 인터넷 세계의 여론은 나의 생각과 거의 일치하는, 나에게 무한한 공감과 연대의식을 느끼게 하는 평화로운 광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아니 광장보다는, 아파트 노인정 같은 규모의 작고 열악한, 젊은 아웃사이더들이 모이는 동아리방 같은 곳이었다.

그런 허름한 동아리방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강해져서 현실적인 힘을 가지게 되자, 이를 시기한 노인정 어르신들이 우리 동아리방을 해코지하고 오염시켜서 못쓰게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그 힘이 고작 1%나 됐을까 싶었지만, 그 1%도 아쉬운 분들이 우리가 살던 삶의 터전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주변국들의 현황과 역사를 돌이켜봐도, 이런 경우에는 답이 없다. 기껏해야 현실세계에서 도태될랑말랑하는 잉여 찐따들이 모인 현실 도피처 인터넷세계가, 수십년간 공들여 쌓아올린 현실세계의 원로회 어르신들을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무력한 절망감만이 엄습한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열심히 신경을 써봤자 나만 화나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다른 가능성이 보일 때까지 어둡고 긴 터널을 나는 어학 공부, 자격증 공부, 운동과 다이어트를 하면서 나 자신을 다잡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길게 보고, 멀리 보며, 다른 생각을 하며 신경을 끈다.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2462

  • asdf 13/10/04 03:49  덧글 수정/삭제
    이런;
  • 나그네 13/10/04 04:22  덧글 수정/삭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사람입니다.

    생각을 잘 표현하시네요.

    고립되어있는 약한 사람들.
    결국은 연대 이겠지요.
    • xacdo 13/10/22 01:32  수정/삭제
      연대도 방법이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저같은 잉여 찐따가 현실적인 영향을 줄만큼 괜찮은 어른이 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연대해도 늦지 않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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