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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틀린 것도 의미있다

13/12/26 11:52(년/월/일 시:분)

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틀린 말도 많이 한다. 아닌게 아니라 엄청 틀린다. 다른게 아니라 그냥 틀린 거다. 맞고 틀린 것 중에 틀린 거다. 옳고 그른 것 중에 그른 거다.

그래서 옛날에는 그런걸 기어코 고치면서 맞추려고 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틀린대로 놔두는 편이다. 아니 왜냐면, 틀린 것도 틀린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렇지 않나?

그 계기는 조경규 만화를 보고 나서였다. 조경규씨도 시시콜콜하게 자기 멋대로 얘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라, 철저히 자료조사를 해서 정확히 사실적으로 현실을 그리는게 아니라 그냥 생각나는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나른하게 술술 풀어가다보니 틀릴 때도 있고 그렇다. 근데 그 대응이 참 멋졌는데...

틀린게 있으면 틀린 그대로 두고 안 고친다. 왜냐하면 그릴땐 정말 그렇게 생각했거든. 맞는 말이건 틀린 말이건, 만화의 흐름상 그 얘기는 딱 거기에 들어가는게 맞는 거거든. 그걸 괜히 고치고 빼고 하면 그 맛이 딱 끊긴다. 더 이상 그 만화가 그 만화가 아니게 된다.


제일 안타까웠던게 싸이의 "앗싸라비아'다. 이 Assarabia가 Ass arabia로 아랍인을 비하하는 거라고 해서 급하게 "젠틀맨"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앗싸라비아로 밀고 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정 그러면 As-sa-ra-bi-a 이렇게 쓰면 되지 않나? 앗싸라비아가 훨씬 매력적이잖아. 젠틀맨은 너무 약했어.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틀린 것들에 한없이 애정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많이 틀려서 그렇기도 하지만, 맞건 틀리건 그 틀린 조악한 논리에조차도 나름의 의미가 있고 미학이 있다. 그런 관용이 있어야 다양성이 있지 않을까? 맨날 다 옳기만 하면 무슨 재미냐?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틀릴수도 있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인생에는 뻔히 보이는 정답이 있지만, 그 뻔한 정답을 틀리고 싶을 때도 있다. 괜한 객기로 오답을 떡하니 멋지게 찍어버리고 싶을 때가 분명히 있다. 틀린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 멋지지 않은가. 그런 자유분방함, 발칙함, 문제적 작품. 그런게 좋다.


나는 칸 영화제를 사랑한다. 칸은 잘 만든 영화에 상을 주지 않는다. 그런건 아카데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대신 칸은 용감한 영화에 상을 준다. 가장 도전적이고, 가장 발칙하고, 가장 영화의 끝까지 기어코 올라가서 거꾸러트리는 영화에 상을 준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봐서 실망한 적이 없었다.

잘 만들고 못 만들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지 온 인생을 바쳐서, 정말 말도 안되는 영화지만 보고나면 평생 기억에 남을, 이 나의 연약한 마음에 아주 정교하고 날카로운 칼로 난도질을 해놓을 그런 폭력적인 영화가 나의 취향이다.


그런 영화는 영화의 정답에서 멀다. 연극영화과를 가면 배울 것 같은 영화 시나리오 작법의 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그렇다고 못 만든게 아니다. 단지 정답이 아닐 뿐이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거야, 이런 식으로 만들면 뚝딱 한 편을 만들 수 있어. 이렇게 해야 웰메이드고 폼이 나. 이런게 아니라, 내가 생각한대로, 내가 재밌다고 믿는 방식으로, 가장 도전적이고 창의적이어야 겨우 한줌 나올까말까한 창작의 불씨를 한참이나 모아야 나올만한, 그런 디오니소스적 도취로 가득찬 한판의 거나한 술판 같은 영화.


때론 정말 오글오글하고,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거부감이 들지만, 그 구역질나는 오취 뒤로 무척이나 그윽하고 평생 단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환상적인 향기가 뒤에 감춰져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솔직히, 동성애도 틀린 답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애가 정답이라면, 동성애는 오답이다. 아니 솔직히 동성애가 이상하긴 이상하지 않나? 어떤 목사님은 동성애를 마치 코로 밥을 먹는 것처럼 이상한 거라고 했는데 나도 솔직히 동의하기는 한다. 밥을 입으로 먹으면 될 것을, 굳이 이상하게 코로 먹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 밥을 먹으면 어떠냐? 꼭 입으로만 먹으라는 법 있냐? 물론 정말 이상하지만 그렇게 먹겠다면 먹게 놔두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게 동성애 아닌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상한 짓 좀 하면서 살겠다는데 아무렴 어떠냐. 나는 동성애가 오답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답이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도 정말 이상한 구석이 많은 사람이고, 틀린 부분도 참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관용을 구하자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런 틀린 인간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그런 사람들의 결함 하나하나가 무척 사랑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사람은 때론 그런 결함으로 위대한 부분이 생겨나기도 한다.

마치 진주조개가 자기 몸에 들어온 모래알 하나를 덮고 덮다보니 아름다운 진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어떤 이상하고 틀린 부분 하나가 만드는 전체적인 불균형과 비대칭이, 그만큼 더 위대한 나머지 한쪽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비뚤게 살 필요까지야 없겠지만은, 그래도 그렇게 틀린 부분이 있다고 해서 억지로 바로잡으려고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틀린 부분이 있으면, 그냥 그대로 자연스럽게 놔두고, 인생을 비뚤고 기울어진채로 전력을 다해 살아가면 그만이다. 인생이란 모르는 법이고, 일단 어떻게든 살아봐야 뭐라도 되든 말든 한다. 나는 그런 결함을 짊어지고 열심히 발을 내딛는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다.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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