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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컴퓨터 공학 쪽의 국영문 혼용체

06/10/27 21:35(년/월/일 시:분)

컴퓨터 하는 사람들은 유난히 영어를 많이 섞어 쓴다. 애초에 배울 때부터 영어로 배우고, 영어로 사고하고, 결과물까지도 영어니까 결국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 또한 영어다.

그럼 도대체 대학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길래 그러는 걸까? 두 분의 교수님을 통해 비교해보자.

박능수 교수님

슬램덩크의 안선생님을 닮은 박능수 교수님. 이 분의 수업은 빈틈이 없기로 유명하다. 발표 자료의 한 부분도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고, 책의 어느 부분을 질문해도 막힘없이 답변한다. 또한 공과 사의 구분도 철저해서 얼굴도장을 많이 찍어도 점수는 완전히 별개로 나온다. 시험문제 또한 매번 새로 만들어서 족보가 소용이 없다. 시험을 보면 점수분포도까지 보여주면서 시험의 경향과 정답비율을 분석까지 해 주시는 분이다.

각설하고, 어쨌든 박교수님은 컴퓨터 공학 쪽의 일반적인 교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학을 갔다와서 자신이 영어로 배운 탓도 있고, 전공 책의 번역이 그렇게 빨리 나오는 편도 아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최신 개정판의 원서로 보는 것을 권장한다. 또한 발표 자료도 100% 영어고, 인터넷에 널린 것도 영어 자료다 보니 수업 시간에도 영어 단어가 수도 없이 튀어나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업을 영어로 진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수업은 영어 단어를 80% 정도 곁들이고, 나머지 20%를 은,는,이,가 등의 조사와 하다, 되다 등의 번역투로 진행이 된다. 이른바 국영문 혼용체다.

예) 그래서 multiplicand를 ALU에 add하고 shift right 해 주면 결과값이 나오죠.

여기서 multiplicand를 피승수, ALU를 산술 논리장치 식으로 한글 단어를 사용하는 편이 더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영어 단어로 강의를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multiplicand나 피승수나 둘 다 외래어인건 마찬가지다. 애초에 그런 단어는 한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소 번역투인 걸 감수하더라도 영어 단어를 번역 없이 사용하는 편이 사고의 과정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나이 드신 교수님 중에서는 ALU 같은 영어 단어 대신에 산술 논리장치 같은 한문 번역투를 사용하는 분도 있는데, 그쪽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영문 혼용체도 충분히 쓸모가 있다.

그렇다면 컴퓨터 전공 수업을 한글로 강의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재하 교수님을 보자.

이재하 교수님

이재하 교수님은 내가 2학년 때 새로 오신 분으로 상당히 젊다. 그래서 많은 여학생들이 입학 면접때 이 분의 말끔한 모습을 보고 희망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정작 수업때는 1년 내내 똑같은 옷, 감지 않은 머리, 항상 머리를 긁적이며 버벅대는 수업에 실망을 하는 경우가 많다. -_-

하지만 버벅대는 수업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교수님은 최대한 영어를 안 쓰고 강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책도 영어고,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강의자료도 영어고, 유학은 독일로 갔다왔으니 그걸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버벅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자세한 용어나 스펙에 대해서는 다 넘어가고 개념만 다루게 된다. 이 알고리즘이 어떤 식으로 동작한다 하는 것을 영어 단어 또는 한문 번역투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두리뭉실하게 대충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즉 이교수님의 수업 전략은, 어렵지만 정확히 설명해서 소수의 학생들만 알아듣는 것 보다는, 이해하기는 쉽지만 정확하지는 않게 설명해서 대부분의 학생이 알아듣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알고리즘을 배우면서도 그것을 영어로 적는 슈도 코드(pseudo code)에 대해서는 강의를 하지 않아서, 시험 답을 한글로 장황하게 적어도 개념만 맞으면 맞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거의 문과 시험 수준의 답안지가 나온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두리뭉실하게 수업하면 학생들도 두리뭉실하게 쓰기 때문에 학점 분포가 고르지 않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배우지도 않은 걸 증명하는 문제 비율이 높은데, 완전 수학 올림피아드 보는 기분이다. 그래서 공부한 양이 아니라 개인의 자질에 따라 학점이 나온다. 교수님도 머리가 맑은 상태에서 시험 보러 오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 정도. -_-



결론. 번역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컴퓨터 전공에서 사용하는 영어 단어를 한글로 바꿔도 똑같이 이해하기 어렵다면 번역하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국영문 혼용체도 충분히 쓸모가 있다.

그리고 번역은 단어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번역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소 두리뭉실해 지더라도, 그 편이 이해하기 쉬워진다면 그 또한 맞는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이 두가지 방법이 최선이라고 본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 이렇게 유능한 교수님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463

  • mcfrog 07/01/05 06:06  덧글 수정/삭제
    맞습니다. 전에 컴공쪽 배운 친구랑 얘기해봤는데, 컴공은 특히 번역한 용어를 쓰기가 어려운 분야 같더군요. 실용적인 접근이 우선이겠죠.
  • asdf 07/04/06 13:12  덧글 수정/삭제
    으흠~ 컴공이라면 혹시 코드를 누가 더 짧게 짰느냐로 A 와 B 가 갈린다는 루머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저런 차이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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