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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의 이해

만약 강간범이 20년 지나서 용서를 구한다면

07/07/20 08:10(년/월/일 시:분)

MSNBC - Confessions of a dangerous mind, 2007년 7월 19일자 방송을 보고
http://www.msnbc.msn.com/id/12876396/



리즈 시큐로(Liz Seccuro)는 대학교 1학년때 파티에서 한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다. 맥주 두 잔을 마셨을 뿐인데 갑자기 어지러워서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파티의 한 방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있었다. 침대 시트에 처녀의 혈흔이 번졌고, 남자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가 버렸다.

그녀는 너무 억울해서 병원에도 가보고 경찰서에도 가봤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처음 하는 거라서 놀란 모양이구나"라는 말을 듣는게 고작이었다. 그녀를 강간한 사람은 같은 대학교 2학년의 윌리엄 비비(William Beabe)였다. 하지만 사건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그때는 1984년이었다.

2005년, 그로부터 21년 후, 그녀는 갑자기 잊고 있었던 이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윌리엄 비비였다. 그는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했다. 너무 죄책감이 들어서 알콜중독에 빠지기도 했다고 했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과거에 잘못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라는 조언을 받고 이렇게 편지를 보내 사과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조금은 뻔뻔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기 인생은 이렇게 망쳐놨으면서, 자기는 용서를 구하고 맘 편하게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웃기지 마! 그래서 그녀는 법적으로 소송을 걸었고, 지난 2007년 3월 법원은 1년 6개월의 징역을 판결했다.


자, 여기서 질문. 아니 그래도 20년이나 지나서 용서를 구하려고 일부러 연락을 했는데, 그걸 약점 잡아서 소송까지 가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그거야 대학교 초년생 시절에 잠시 저지를수도 있는 젊은 날의 실수 아닌가? 그리고 감옥에 보내면 맘이 편할까? 그냥 용서하고 서로 좋은게 좋은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의 인터넷 설문조사를 보자.

MSNBC 인터넷 설문조사

80%가 넘는 사람들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용서는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그에 합당한 댓가가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용서를 구하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http://xacdo.net/tt/index.php?pl=647
아마도 미하일은 여기서 딸에게 적당히 용서를 구하고 포옹을 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성들의 국제적인 성 통념이 아닐까 싶다. 왜 TV 드라마에도 흔하게 나오잖아, 남성이 여성의 뺨을 한대 후려갈기고, 그 다음에 바로 여성을 와락 포옹하는 거. 그러면 여성은 감동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지.
만약 아까와 같은 상황에서 딸이 이런 남성들의 뻔할 뻔짜 레파토리를 이해하고 있었다면, 아버지의 포옹을 적당히 받아들이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딸은 너무 어렸다. 그 상황에서 딸은 아버지의 용서나 포옹이 매우 불쾌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사실 이것이 통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순수한 여성의 반응일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용서를 구해도 별로 안 받아주는 편이더라. 전에 돈 아이머스(Don Imus)도 그랬잖아. 분명히 그는 사과를 했지만, 상대편에서 받아주지 않는 바람에 일이 커졌지.

http://xacdo.net/tt/index.php?pl=652
당사자인 럿거스(Rutgers) 농구팀은 돈 아이머스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의 변명을 "치사하다(despicable)"고 논평하며 이와 같은 사태가 "통탄할 일이다(deplorable)"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나는 앞으로 소송의 시대가 올 것을 장담한다. 잘못을 했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때까지 그 어떤 변명이나 용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소송으로 먹고 사는 기업도 많이 생겼고, 비즈니스가 아니라 개인에게도 똑같을 것이다. 요즘 학력을 속이거나 병역을 회피하려는 것에 아주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이러한 시대적 흐름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순결하게만 살 수도 없으니, 이런 상황이 닥치면 법적인 처벌까지 받을 각오 정도는 미리 해두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ps. 이렇게 용서를 구하던 윌리엄 비비도, 막상 소송까지 가니까 진술을 번복하면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강간은 아니었다. 일종의 원나잇 스탠드 같은 것이었을 뿐이다"며 다소 발뺌을 했다. 물론 강제성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 처벌까지 갔지만, 리즈 시큐로 쪽 또한 기억이 명확하지 않고 딱히 다른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1년 6개월 형에 그쳤다.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752

  • D-S 07/07/20 11:19  덧글 수정/삭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용서를 해주고 말고는 피해자의 마음이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긴데 왠지 모르게 '내가 이렇게 사과하는데 왜 안받아주는거야!'라든 이야기를 많이듣고 가해자가 떵떵거리면서 사는 사회를 보면 당연한게 안당연하게 여겨지는 세계에서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 cancel 07/07/22 14:21  덧글 수정/삭제
    미국은 강간에 대한 공소시효가 없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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