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Drum Room

red: cabasa
blue: synth tom

X-axis: stereo panning (left to right)
Y-axis: velocity (light to strong)
Z-axis: FX send (reverb intensity)

I made a conceptual “drum room” in the 3-dimension space. In this virtual space, I can move two spheres with a mouse, and they interact with their environment and user behavior. They dynamically generate 3-dimensional sound with different velocity, stereo panning, and a reverb effect. source codes: https://github.com/kyungwoh/3d_drum_room

메타 예능 – 두니아 (2018, MBC)

미술 평론가 임근준메타(meta-)라는 말을 많이 썼다. 메타는 그 자체에 대한 것, 자기 참조적인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영화 나이트메어 7 – 뉴 나이트메어(1994)에서 나이트메어 영화를 만드는 얘기를 영화 안에서 다루는 것 같은 것이다.

내 생각에는 포스트(post- = 후기), 비욘드(beyond = ..너머) 다음으로 하다하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기가 어려울 때 메타(meta- =자기 참조)까지 가는 것 같다.

나는 두니아(2018)가 메타 예능이라고 생각한다. 두니아는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에 익숙해야 웃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미리 설정된 드라마 부분과, 연기자의 즉흥에 맡기는 리얼리티 부분이 계속 교차되는데, 이 두 부분의 경계가 때론 명확하지 않고, 심지어는 와장창 깨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두니아에서는 재미의 요소로 삼았는데, 이것은 예능이나 드라마라는 형식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게 도대체 뭐지?”하고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어려운 장치다.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두니아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초반 두 달 정도는 연기자들도 시청자들도 두니아의 형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헤맸지만, 세 달을 넘어가니 출연자들도, 보는 사람들도 익숙해져서 형식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비로소 재미있을 수 있었다.

예능에 대한 예능, 메타 예능. 이런 시도가 나는 참 새로웠다. 그러고보니 나는 옴부즈맨 프로그램도 항상 재미있게 보았다. 방송사가 자사 방송에 대해 스스로 비판한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두니아도 예능이 예능 스스로를 재미로 삼는다는 점이 좋았다.

시청률이 너무 낮아서 아쉽게도 추석 개편 때 끝날 것 같은데, 다음에는 굳이 외국을 나가지 말고, 쾌적한 스튜디오에서 출연자과 연출자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너무 습하지 않고 너무 덥지 않은 환경에서 생산성 높게 방송을 찍었으면 좋겠다. 특히 초반에는 정말 너무 더워서 지쳐 보였다.

예능이 출연자들을 괴롭혀야 재밌는 경우도 있지만, 출연자들을 편안하게 배려해줘야 재밌는 경우도 있다. 마리텔 같은 경우도 서로 개입하고 시끄럽게 경쟁해서 재밌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기 집에서 혼자 유튜브 방송을 하듯이 조용히 집중해야 더 잘 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효리네 민박 – 시즌1 – 2화 – 남편 상순에게 털어놓는 조금은 외로웠던…’스물다섯 이효리’에서 이효리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데 이효리가 아닌 타인의 정면샷들이 추억처럼 지나가며 음악 없이 가니까 적막하고 쓸쓸해서, 마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예능이 예능을 넘어서는 순간들을 보곤 한다. 가짜 웃음소리도 없고 음악까지도 멈춰버린 조용한 예능도 가능하다. 꼭 메타 예능이 아니더라도, 비욘드 예능도 가능하지 않을까.나는 그런 순간을 기다리며 두니아를 계속 본다. (끝)

트루스 오어 데어 (Truth or Dare, 2018)

출발 비디오 여행이었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하여튼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트루스 오어 데어라는 영화 소개를 봤다.  트루스 오어 데어는 술자리에서 하는 진실 게임 + 왕 게임 같은 건데, 돌아가면서 자신의 재미있는 진실을 고백하던가, 그러기 싫으면 짖궂은 벌칙을 하는 게임이다.

이 영화에서는 젊은 친구들이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을 하는데, 이게 아무리 해도 끝나지가 않는 거다. 그리고 벌칙을 너무 위험한 걸 시켜서 죽기도 한다. 공포영화니까…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죽기 싫어서 이 게임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영화 소개는 여기까지. (TV 영화 소개도 여기까지였다)

(이 다음부터는 스포일러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꽤 흥미로워서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결말은 좀 시시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저주를 받아서, 죽지 않는 한 빠져나가는 방법이 없었다. (있긴 했는데 잘 안되게 되었다) 결국 죽을 때까지 게임을 계속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결국 다 죽어야 하나? 그래서 주인공들은 마치 한국의 3년 고개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3년 고개가 뭐냐 하면, 한 번 넘어지면 3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저주받은 고개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 고개에서 넘어져서, 나는 이제 3년밖에 못 살겠구나 슬퍼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3년마다 한번씩 넘어지면 계속 살겠구나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3년마다 일부러 넘어지며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얘기다.

이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도 마찬가지인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참여하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많이 늘리면 자기 차례가 띄엄띄엄 돌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참여자가 많을수록 오래 살 수 있다. 그래서 얘네들은 유튜브로 이 게임을 생중계해서 전 세계 사람들을 게임으로 끌어들인다. 오올~ 머리 좋네. 그렇긴 한데 좀 김이 빠지긴 한다. (왜냐하면 이러면 더 이상 공포영화가 아니니까)

물론 3년 고개에도 “최초 넘어진 시점부터 3년 후에 죽는다” 같은 악성 조항을 넣으면 이런 트릭이 안 먹힐 수 있다.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도 “이 게임은 최대 12명까지만 참여가 가능하다” 또는 “참여자가 늘어나도, 다음 차례는 12일/(전체 참여자 수) 시간 후 자동으로 넘어간다 (예) 참여자가 120명인 경우, 한 사람이 12일/120명=2시간을 초과하면 그 사람은 현재 도전(트루스 오어 데어)을 계속 하면서 다음 사람에게 차례가 넘어간다” 같은 악성 조항을 빡빡하게 추가하면 이런 트릭이 안 먹힐 것이다. (물론 이래도 더 이상 공포영화가 아닐 것이다) (조항을 따지다 보면 변호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좀 더 나아가서, 만약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떡할 것인가? 나라면 공포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일단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마음으로, 내 생애 마지막에 뭘 하고 죽으면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이제 공포영화는 물 건너 갔다) (이쯤 되니 영화 멜랑콜리아(2011)에 가까워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여러분, 나는 이제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고백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감춰온 진실은, 사실 저는 이상성애자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 최애는 비욘세가 아니라 제이지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했습니다… 아니 제이지 말고 당신을요.

다음 차례에 저는 더 이상 고백할 진실이 없습니다. 제 인생을 아무리 돌이켜봐도 더 이상 감출 비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는 이제 죽음의 도전을 맞이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아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제가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선물을 남기고자 합니다. 제가 음원 서비스에 올린 노래들의 수익금, 모두 가지십시오. 작도닷넷의 광고 수익금도 마찬가지로 모두 가지십시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좋은 곳에 써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남깁니다. 부디 안녕히…

(다음 장면) 그의 장례식, 그의 음원 수익금 정산서, 그의 애드센스 수익금… 슬퍼하는 사람들. 그리고 참가자들이 모두 죽어서 마침내 끝난 이 죽음의 게임. 갑자기 닥쳐온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한 주인공들의 마지막 모습들. 이것을 우리는 삶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죽음이라 부르기 보다는. (끝)

생각의 미래


나는 앞으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미래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지금 모르는 것들이 지금의 나를 앞으로 어떻게 바꿀까? 아니 지금은 아는 것도 나중에 가서야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을까? 뭔가 놓치는 것이 있을까?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까? 아무래도 좋으려나?

내일은 더 나아질까? 한 달 후에는 뭔가 좀 풀리려나? 예측이 가능할까? 전망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건 다 내가 하기 나름인걸까? 아닌 부분도 있으려나? 그래서 지금 나는 나를 어째야 할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혹은 내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 그럴 여지와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그래서 모두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까?

힘이 드려나? 견딜 수 있을까? 알 수 없을까? 알아도 상관없으려나?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나는 코카콜라 광고를 떠올린다. “생각을 멈추고 느껴봐.” 잡생각이 많아지면 차라리 생각을 안 하는 것도 방법이다.

환상의 여인과 도망자

환상의 여인(1942)
도망자(1993)

세계 3대 추리소설 중 하나라길래 궁금해서 환상의 여인을 보았다. 소설은 유명세에 비해 상당히 지루했지만, 마지막 트릭은 꽤 재미있었다.

어제 TV에서 우연히 옛날 영화 도망자를 봤는데, 소설 환상의 여인과 중요 트릭이 똑같았다. 오히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감옥에 갇혀 있어서 뭘 할 수가 없으니 꽤 지루했는데(물론 주인공이 갇혀있는데 내용이 진행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긴 하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도망다니니까 훨씬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표절까진 아니었고) 소설의 단점을 잘 보완해서 영화를 만든 것 같았다.

회사원이자 소설가인 곽재식의 소설 작법서,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에도 그런 부분이 나온다.  “망한 영화에서 이야기 소재를 얻는다.” 헌터X헌터의 작가 토가시 요시히로도 재미없는 작품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노트에 적으며 연구했다고 한다.

환상의 여인은 핵심 트릭은 좋았지만 나머지가 별로였는데, 도망자는 핵심 트릭을 유지하면서 나머지를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 여기서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도망자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보고 싶다.

첫째로 주인공의 아내가 일단 죽고 시작한다. 냉장고 속의 여자라고 불리는 클리셰다. 남자 작가의 작품에서 여자 캐릭터가 너무 도구적으로 쓰여서 재미가 없다. 여자를 좀 더 입체적으로 움직인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여기에 참고가 될 만한 작품으로, 홍상수 감독의 김민희 이전과 이후 영화를 들 수 있다. 홍상수도 김민희 이전까지는 여성 캐릭터들이 인형같이 딱딱하게 움직였는데, 김민희 이후로는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인다.

둘째로 결말 이후를 더 그리고 싶다. 나는 물론 영화의 결말이 매우 깔끔하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부연할 여지도 있다고 본다. 주인공은 의사로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망을 다니면서 작은 범죄를 저지른다. 앰뷸런스를 훔쳐 달아난다거나, 신분증을 위조한다거나, 경찰의 지시에 불응하고, 지하철 창문을 부수고, 사람을 때리기도 한다. 이런 점은 벌을 받아야 할 것이고, 벌을 받은 이후의 의사 생활은 이전과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예전보다 조금 덜 고집스러워진다거나, 전에 안하던 욕을 하는 등 약간은 불량스러워졌지만 자기처럼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에게 조금 더 관대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주인공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런 결말의 모범 사례로 나는 내 인생을 훔친 사랑스러운 도둑녀(Identity Thief, 2013)와 더 행오버(The Hangover, 2009)를 들고 싶다.

(끝)

시간과 나

그 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야 했다. 무언가 여지를 남겨놔야 했다. 새벽의 공기가 나를 무겁게 누르는 가운데, 나는 빨리 다음 할 일을 결정해야 했다. 시간이 자꾸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시간이 말했다. “너무 힘들다면, 그만 두어도 좋아.”

나는 물었다. “정말 그래도 될까?” 시간과 나는 한참이나 서로를 마주보았다. 시간과 나 사이의 거리는 한없이 가까운듯 멀어보였다. 나는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

시간이 멈추었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다. 시간

급하다 급해

헐레벌떡

지각이다 지각

(끝)

여정

아버지가 내 사주를 보고 오더니 역마살이 있다고 했다. 평생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살다가 객지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니냐고 덧붙이셨다.

그런 아버지 본인도 정작 역마살이 있는 것 같았다. 이북(옛날에는 북한이라는 말이 없었고 이북, 이남이라고 불렀다)에서 전쟁통에 피난 내려와 지금까지 계속 고향이 못 돌아가시고 계셨다. 그런 아버지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하숙생 – 최희준 (1965)

Eb              Fm
인생은 나그네길
Bb    Cm  Ab
어디서 왔다가
Bb7          Eb
어디로 가는가

Eb               Eb7
구름이 흘러가듯
Ab                   G7
떠돌다 가는 길에
Cm                  Fm7
정일랑 두지 말자
Eb                   Bb7
미련일랑 두지 말자

Eb             Fm
인생은 나그네길
Bb     Cm      Ab
구름이 흘러가듯
Bb7                         Eb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나 또한 지금까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당분간은 이런 타향살이를 계속 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불행하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가끔은 익숙했던 옛날 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몇 년 전에 옛날 집이 생각나서 가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내 기억속의 옛날 집은 간데 없고 웬 아파트 단지가 올라와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동네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옛날에 살던 빌라가 싹 밀리고 아파트로 재개발이 된 모양이었다.

익숙함을 찾아간 곳에서 익숙함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돌아갈 곳을 잃어버렸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어쩌면 운명일지도 몰랐다. 하여튼간에 나는 그렇게 고향을 잃어버렸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하숙생 노래를 불렀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바람이 부는 날

바람이 부는 날이 있다. 정말 어쩌지도 못할 정도로 꼼짝도 못할 날이 있다. 그저 빨리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랄 때가 있다. 모든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게 뭐 엄청난 건 아니고 그냥 가끔가다 그런 날이 한번씩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생각이 나는대로 천천히 자세하게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런데 문득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뭔가 두고 온 것처럼, 할 얘기도 그렇게 잊어먹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남는 거라곤, 내가 뭔가 너에게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 뿐이다.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수 있다. 나는 항상 그런 생각을 달고 살아간다. 말문이 막힌 채로 바람이 불고, 너는 나의 얘기를 기다리며,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버릴 때가 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이미 잊어버린 이야기 보따리를 쥐어 짜내며, 아무 말이라도 적당히 지어서 그 빈 공간을 채워넣으려고 했다.

“잠시 커피라도 한 잔 할까?”

“아니, 지금은 너무 늦었어. 지금 커피를 마시면 오늘 밤에 잠들지 못할 거야. 그래서 나 요즘 커피 안 마시잖아.”

간신히 짜낸 커피 생각이 퇴짜를 맞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연하게 타줄께.”

“내가 마시기 싫다고 하는데도 모르겠어?” 다시 한 번 매몰차게, 확실하게 거절을 당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부는 날이 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이 빈 공기를 채우고 싶었다. 나는 커피 말고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생각을 쥐어짜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