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미래


나는 앞으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미래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지금 모르는 것들이 지금의 나를 앞으로 어떻게 바꿀까? 아니 지금은 아는 것도 나중에 가서야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을까? 뭔가 놓치는 것이 있을까?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까? 아무래도 좋으려나?

내일은 더 나아질까? 한 달 후에는 뭔가 좀 풀리려나? 예측이 가능할까? 전망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건 다 내가 하기 나름인걸까? 아닌 부분도 있으려나? 그래서 지금 나는 나를 어째야 할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혹은 내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 그럴 여지와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그래서 모두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까?

힘이 드려나? 견딜 수 있을까? 알 수 없을까? 알아도 상관없으려나?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나는 코카콜라 광고를 떠올린다. “생각을 멈추고 느껴봐.” 잡생각이 많아지면 차라리 생각을 안 하는 것도 방법이다.

시간과 나

그 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야 했다. 무언가 여지를 남겨놔야 했다. 새벽의 공기가 나를 무겁게 누르는 가운데, 나는 빨리 다음 할 일을 결정해야 했다. 시간이 자꾸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시간이 말했다. “너무 힘들다면, 그만 두어도 좋아.”

나는 물었다. “정말 그래도 될까?” 시간과 나는 한참이나 서로를 마주보았다. 시간과 나 사이의 거리는 한없이 가까운듯 멀어보였다. 나는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

시간이 멈추었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떨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다. 시간

급하다 급해

헐레벌떡

지각이다 지각

(끝)

여정

아버지가 내 사주를 보고 오더니 역마살이 있다고 했다. 평생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살다가 객지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니냐고 덧붙이셨다.

그런 아버지 본인도 정작 역마살이 있는 것 같았다. 이북(옛날에는 북한이라는 말이 없었고 이북, 이남이라고 불렀다)에서 전쟁통에 피난 내려와 지금까지 계속 고향이 못 돌아가시고 계셨다. 그런 아버지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하숙생 – 최희준 (1965)

Eb              Fm
인생은 나그네길
Bb    Cm  Ab
어디서 왔다가
Bb7          Eb
어디로 가는가

Eb               Eb7
구름이 흘러가듯
Ab                   G7
떠돌다 가는 길에
Cm                  Fm7
정일랑 두지 말자
Eb                   Bb7
미련일랑 두지 말자

Eb             Fm
인생은 나그네길
Bb     Cm      Ab
구름이 흘러가듯
Bb7                         Eb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

나 또한 지금까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당분간은 이런 타향살이를 계속 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불행하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가끔은 익숙했던 옛날 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몇 년 전에 옛날 집이 생각나서 가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내 기억속의 옛날 집은 간데 없고 웬 아파트 단지가 올라와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동네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옛날에 살던 빌라가 싹 밀리고 아파트로 재개발이 된 모양이었다.

익숙함을 찾아간 곳에서 익숙함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돌아갈 곳을 잃어버렸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어쩌면 운명일지도 몰랐다. 하여튼간에 나는 그렇게 고향을 잃어버렸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하숙생 노래를 불렀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바람이 부는 날

바람이 부는 날이 있다. 정말 어쩌지도 못할 정도로 꼼짝도 못할 날이 있다. 그저 빨리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랄 때가 있다. 모든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게 뭐 엄청난 건 아니고 그냥 가끔가다 그런 날이 한번씩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생각이 나는대로 천천히 자세하게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런데 문득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뭔가 두고 온 것처럼, 할 얘기도 그렇게 잊어먹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남는 거라곤, 내가 뭔가 너에게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 뿐이다.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수 있다. 나는 항상 그런 생각을 달고 살아간다. 말문이 막힌 채로 바람이 불고, 너는 나의 얘기를 기다리며,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버릴 때가 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이미 잊어버린 이야기 보따리를 쥐어 짜내며, 아무 말이라도 적당히 지어서 그 빈 공간을 채워넣으려고 했다.

“잠시 커피라도 한 잔 할까?”

“아니, 지금은 너무 늦었어. 지금 커피를 마시면 오늘 밤에 잠들지 못할 거야. 그래서 나 요즘 커피 안 마시잖아.”

간신히 짜낸 커피 생각이 퇴짜를 맞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연하게 타줄께.”

“내가 마시기 싫다고 하는데도 모르겠어?” 다시 한 번 매몰차게, 확실하게 거절을 당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부는 날이 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이 빈 공기를 채우고 싶었다. 나는 커피 말고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생각을 쥐어짜내고 있었다. (끝)

냉각탑

냉각탑은 왜 쌍곡선 모양일까? 나는 이 쌍곡선이 우아하다고 느꼈다. 푸른 잔디 너머로 수증기를 내뿜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통짜로 매끈하게 곡선을 만들었을까, 참 감탄스러웠다.

그러니까 냉각탑은 왜 쌍곡선 모양일까?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그 이유는 냉각효율 때문이었다. 수증기를 좁은 출구로 내보내야, 그 좁은데 옹기종기 모여서 응축되었던 수증기가 갑자기 확- 하고 넓은 공기 중으로 해방되어야, 그래야 열이 더 빨리 식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베르누이의 정리라고 한다)

그래서 베르누이 덕분이란다. 물론 내가 냉각탑을 좋아하는 이유는 냉각 효율 때문은 아니다. 그냥 저기 저 사람보다 엄청 큰 매끈한 곡선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보고 있으면, 내가 저기에 마구 압도당해서 어느새 내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옛날부터 이런 거대한 기계류가 좋았다. 2009년 구미 공단에 내려갔을 때도, 그 뭔가 복잡한 설비가 잔뜩 있는 게 마냥 좋았다. 처음 버스를 타고 도착했을 때, 녹슨 철골 구조물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광경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그 뒤에는 아마도 어려운 수학과 과학이 있을 것이다. 공장과 기계를 돌리는 직원들도 있을 것이다. 뭔진 몰라도 엄청 복잡한 관리 체계와 회계 시스템 등이 하여간에 뒤에서 바쁘게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압도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한 눈에 보기에, 척 봐서, 크고 우아하다, 이 점에 푹 빠져버렸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성향은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똑같이 동작하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냉각탑은 왜 쌍곡선 모양일까? 네이버를 찾아본대로 나는 이제 설명할 수 있다. 아니 그 대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문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냉각탑 모양이 왜 쌍곡선 모양인지 알고 싶다. 그것이 나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