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 오어 데어 (Truth or Dare, 2018)

출발 비디오 여행이었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하여튼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트루스 오어 데어라는 영화 소개를 봤다.  트루스 오어 데어는 술자리에서 하는 진실 게임 + 왕 게임 같은 건데, 돌아가면서 자신의 재미있는 진실을 고백하던가, 그러기 싫으면 짖궂은 벌칙을 하는 게임이다.

이 영화에서는 젊은 친구들이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을 하는데, 이게 아무리 해도 끝나지가 않는 거다. 그리고 벌칙을 너무 위험한 걸 시켜서 죽기도 한다. 공포영화니까…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죽기 싫어서 이 게임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영화 소개는 여기까지. (TV 영화 소개도 여기까지였다)

(이 다음부터는 스포일러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꽤 흥미로워서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결말은 좀 시시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저주를 받아서, 죽지 않는 한 빠져나가는 방법이 없었다. (있긴 했는데 잘 안되게 되었다) 결국 죽을 때까지 게임을 계속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결국 다 죽어야 하나? 그래서 주인공들은 마치 한국의 3년 고개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3년 고개가 뭐냐 하면, 한 번 넘어지면 3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저주받은 고개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 고개에서 넘어져서, 나는 이제 3년밖에 못 살겠구나 슬퍼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3년마다 한번씩 넘어지면 계속 살겠구나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3년마다 일부러 넘어지며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얘기다.

이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도 마찬가지인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참여하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많이 늘리면 자기 차례가 띄엄띄엄 돌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참여자가 많을수록 오래 살 수 있다. 그래서 얘네들은 유튜브로 이 게임을 생중계해서 전 세계 사람들을 게임으로 끌어들인다. 오올~ 머리 좋네. 그렇긴 한데 좀 김이 빠지긴 한다. (왜냐하면 이러면 더 이상 공포영화가 아니니까)

물론 3년 고개에도 “최초 넘어진 시점부터 3년 후에 죽는다” 같은 악성 조항을 넣으면 이런 트릭이 안 먹힐 수 있다.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도 “이 게임은 최대 12명까지만 참여가 가능하다” 또는 “참여자가 늘어나도, 다음 차례는 12일/(전체 참여자 수) 시간 후 자동으로 넘어간다 (예) 참여자가 120명인 경우, 한 사람이 12일/120명=2시간을 초과하면 그 사람은 현재 도전(트루스 오어 데어)을 계속 하면서 다음 사람에게 차례가 넘어간다” 같은 악성 조항을 빡빡하게 추가하면 이런 트릭이 안 먹힐 것이다. (물론 이래도 더 이상 공포영화가 아닐 것이다) (조항을 따지다 보면 변호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좀 더 나아가서, 만약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떡할 것인가? 나라면 공포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일단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마음으로, 내 생애 마지막에 뭘 하고 죽으면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이제 공포영화는 물 건너 갔다) (이쯤 되니 영화 멜랑콜리아(2011)에 가까워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여러분, 나는 이제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고백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감춰온 진실은, 사실 저는 이상성애자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 최애는 비욘세가 아니라 제이지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했습니다… 아니 제이지 말고 당신을요.

다음 차례에 저는 더 이상 고백할 진실이 없습니다. 제 인생을 아무리 돌이켜봐도 더 이상 감출 비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는 이제 죽음의 도전을 맞이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아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제가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선물을 남기고자 합니다. 제가 음원 서비스에 올린 노래들의 수익금, 모두 가지십시오. 작도닷넷의 광고 수익금도 마찬가지로 모두 가지십시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좋은 곳에 써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남깁니다. 부디 안녕히…

(다음 장면) 그의 장례식, 그의 음원 수익금 정산서, 그의 애드센스 수익금… 슬퍼하는 사람들. 그리고 참가자들이 모두 죽어서 마침내 끝난 이 죽음의 게임. 갑자기 닥쳐온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한 주인공들의 마지막 모습들. 이것을 우리는 삶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죽음이라 부르기 보다는. (끝)

환상의 여인과 도망자

환상의 여인(1942)
도망자(1993)

세계 3대 추리소설 중 하나라길래 궁금해서 환상의 여인을 보았다. 소설은 유명세에 비해 상당히 지루했지만, 마지막 트릭은 꽤 재미있었다.

어제 TV에서 우연히 옛날 영화 도망자를 봤는데, 소설 환상의 여인과 중요 트릭이 똑같았다. 오히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감옥에 갇혀 있어서 뭘 할 수가 없으니 꽤 지루했는데(물론 주인공이 갇혀있는데 내용이 진행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긴 하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도망다니니까 훨씬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표절까진 아니었고) 소설의 단점을 잘 보완해서 영화를 만든 것 같았다.

회사원이자 소설가인 곽재식의 소설 작법서,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에도 그런 부분이 나온다.  “망한 영화에서 이야기 소재를 얻는다.” 헌터X헌터의 작가 토가시 요시히로도 재미없는 작품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노트에 적으며 연구했다고 한다.

환상의 여인은 핵심 트릭은 좋았지만 나머지가 별로였는데, 도망자는 핵심 트릭을 유지하면서 나머지를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 여기서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도망자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보고 싶다.

첫째로 주인공의 아내가 일단 죽고 시작한다. 냉장고 속의 여자라고 불리는 클리셰다. 남자 작가의 작품에서 여자 캐릭터가 너무 도구적으로 쓰여서 재미가 없다. 여자를 좀 더 입체적으로 움직인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여기에 참고가 될 만한 작품으로, 홍상수 감독의 김민희 이전과 이후 영화를 들 수 있다. 홍상수도 김민희 이전까지는 여성 캐릭터들이 인형같이 딱딱하게 움직였는데, 김민희 이후로는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인다.

둘째로 결말 이후를 더 그리고 싶다. 나는 물론 영화의 결말이 매우 깔끔하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부연할 여지도 있다고 본다. 주인공은 의사로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망을 다니면서 작은 범죄를 저지른다. 앰뷸런스를 훔쳐 달아난다거나, 신분증을 위조한다거나, 경찰의 지시에 불응하고, 지하철 창문을 부수고, 사람을 때리기도 한다. 이런 점은 벌을 받아야 할 것이고, 벌을 받은 이후의 의사 생활은 이전과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예전보다 조금 덜 고집스러워진다거나, 전에 안하던 욕을 하는 등 약간은 불량스러워졌지만 자기처럼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에게 조금 더 관대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주인공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런 결말의 모범 사례로 나는 내 인생을 훔친 사랑스러운 도둑녀(Identity Thief, 2013)와 더 행오버(The Hangover, 2009)를 들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