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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열전] 산전수전

http://www.movist.com/movies/movie.asp?mid=581

요즘에는 '방화'라는 말을 잘 안씁니다. 굳이 방화란 말을 쓰지 않아도 될만큼 우리나라 영화가 성장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게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닙니다. 얼마 전만 해도 "국산영화는 유치해서 안본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죠. 방화는 외국영화와는 다른 관점으로 보아야만 겨우 볼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방화를 찾아봐도 이런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방화2(邦畫)
ꃃ자기 나라에서 제작된 영화. '국산 영화'로 순화.
¶방화 산업/오랜만에 방화에 관객이 몰렸다.

오랜만에 방화에 관객이 몰렸다.. 얼마나 방화가 흥행을 못했길래 이런 예시가 국어사전에 실릴 정도였을까요. 그런 면에서 1999년 쉬리의 등장은 한국영화계에 일대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수도없이 시도되었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첫 성공이었으니까요. 쉬리의 성공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건진 힘든 결실이었습니다. 그 열매를 삼성이 싹 먹어버리고 입 닦은건 아쉽지만요.. 어찌됬건

그런 면에서 한국영화의 1999년은 축제분위기였습니다. 유래없는 자금이 영화판으로 몰려들었고 그 덕에 별의별 영화가 다 나왔죠. 하지만 그 가운데 성공한 영화는 2000년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 정도였습니다. 그 사이 1년간 개봉한 영화 대부분이 망했습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죠. 겨우 쉬리로 가능성이 보이나 했더니 온갖 쓰레기 영화들이 다 말아먹은 겁니다. 그런 영화 가운데 손꼽히는 영화가 바로

'산전수전'입니다. 1998년 개봉했던 '여고괴담'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괴담류 영화로 꽤나 인기를 끌었는데요. 뭐 영화가 잘되서 인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여자배우들이 예쁘다는 이유로 많이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 그 장면도 유명했죠. 귀신이 더.더.덕 하고 갑자기 다가오는 장면. 워낙에 인상이 깊어서 그당시에는 매트릭스의 림보댄스로 총알피하기 장면만큼 패러디가 즐겨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찌됬건 그 영화로 가장 덕을 본 사람은 바로 김규리씨였습니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비록 연기는 못하지만 얼굴은 예쁜 김규리. 그분의 두번째 영화가 바로

산전수전입니다. 김규리의 흥행열풍은 과연 이어질 것인가. 그당시 소재고갈을 겪고있던 한국영화계는 궁여지책으로 일본영화의 시나리오를 수입해옵니다. 그때 한국음악계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죠. 비교적 정서가 비슷한 일본, 게다가 문화수입이 금지된 탓에 일반인들은 전혀 접할 수 없는 것을 베껴다 자기 것처럼 만들어서 흥행하던 시절이었죠. 표절시비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나마

산전수전은 떳떳히 밝히고 시나리오를 수입했습니다. 1996년 개봉했던 '비밀의 화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코미디 영화였는데요. 전적으로 주인공 여배우 1인에게 의존하는 캐릭터 지향의 코미디입니다. 음 지금이라면 장나라씨가 주연하면 좋을 것 같네요. 거의 뭐 짐 캐리 수준의 표정연기를 보여줬다고 하니.. 그런데 문제는 그 자리에

김규리씨가 캐스팅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뭐 공포영화에서 코미디영화로 이미지변신이다 하면 이해가 가긴 하는데.. 좀 연기력이 뒷받침되고 그래야 그게 되지 그냥 얼굴만 예쁘다고 밀어붙이면 어쩌자는 건지.. -_-

개봉날 이야기를 좀 해야겠군요. 저는 좋아하는 영화는 개봉날 그것도 조조로 꼭 봅니다. 워낙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해서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제가 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생각을 해야 속이 시원하거든요. 그래서 TV나 신문에서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도 절대로 보지 않습니다. 오로지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볼지 안볼지를 결정합니다. 산전수전도 그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포스터빨에 속았죠.

그때만 해도 멀티플렉스 같은게 없던 시절이었죠. 저는 동네 극장으로 전화를 해서 몇시부터 영화를 시작하냐고 물어봤습니다. 11시 시작이라고 하길래 좀 여유있게 10시 50분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문이 잠긴 거에요. 좀 두드리고 소리를 쳤더니 그때서야 주섬주섬 극장 문을 여시더군요. 극장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몇달 후 김기덕 감독의 '섬'을 볼때 같은 경험을 하긴 했지만 그때는 그게 처음이라 극장의 적막함이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극장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어다니고.. 그렇게

텅 빈 극장에서 산전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영화는 노멀한 페이스로 진행되었고 아주 평범하게 막이 내렸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눈이 부실 정도의 형광 자주색에 하얀색 글씨로 올라가는게 아직도 잊혀지질 않네요. 영화가 끝나고 뒤를 돌아보니 극장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허망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더군요. -_-;; 그렇게 산전수전은 초유의 흥행부진을 겪고 일주일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전 영화관에서 볼때 '그냥 TV 특집극 수준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TV에서 해주는걸 봐도 TV드라마 수준조차 안되더군요. TV특집극 수준은 됬던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나 '싸이렌'과도 비교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김규리씨가 차라리 아이돌 스타였다면 연기 못하는 것도 그럭저럭 봐줬겠지만, 그것도 아닌것이 전적으로 여주인공의 연기력에 의존하는 영화에서 그렇게 밋밋한 연기를 보여줘도 되는건지 제가 답답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산전수전은 '여주인공이 예쁘고 내용이 참신하다고 해서 영화가 흥행하는 건 아니다'라는 비싼 교훈을 남긴 채 기억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이걸보니 얼마전 개봉했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생각나네요. 이것도 비슷한 교훈을 남겼죠. '여주인공이 예쁘고 내용이 참신하고 섹스어필을 하고 화제거리가 된다고 해서 영화가 흥행하는 건 아니다'라는 비싼 교훈을 말입니다.

고작 몇가지 요소에 혹할정도로 관객은 바보가 아닙니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가 바로, 영화가 '재미있다'는 한가지를 위해서 수십 수백가지의 재미있는 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겨우 비장의 아이템 몇가지 정도로 성공할만큼 영화계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요즘 관객은 영악하거든요.
|hit:2017|2003/07/04
  
존도 이것도 비슷한 교훈을 남겼죠. '여주인공이 예쁘고 내용이 참신하고 섹스어필을 하고 화제거리가 된다고 해서 영화가 흥행하는 것이다'
라고요?
2003/07/05 x
xacdo 꽥 수정수정 200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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