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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팩스 : 정신병동 의사와 환자간의 잔잔한 두뇌게임
"나는 사실 외계인이다."

…이젠 뭐 하도 봐서 진부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거야 뻔하죠. 너무 괴기한 인물이라 이해하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고, 아니면 신비주의로 빠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관객에게 "이 캐릭터는 외계인이다"는 황당무계한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하느냐인데, 대부분은 그냥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여줌으로서 말문을 막히게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릅니다.

이 영화는 이 사람이 과연 외계인일까 아니면 정신병자일까를 알아내는데 주력합니다.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는 환자를 끈질기게 심문합니다. 사실 의사 쪽에서는 외계인이라고 인정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죠. 그래서 끈덕지게 물고 늘어집니다. 과연 외계인일까 아닐까. 몇 안되는 증거를 가지고 주인공과 관객은 추리를 해 나갑니다.

물론 그 과정은 영화에 흥미를 가지게 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일단 흥미를 가지고 영화 안으로 들어서면 그때부터 진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우리 현대인들이 무심코 지나치던 지구의 모든 것들이 '외계'라는 비교대상이 생긴 후로 사소한 것까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과 같은 평범한 일상도 다시 돌아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과연 지구인이란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 주제까지 다루게 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바로 결말이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자제하겠습니다만, 외계인이 어떻게 지구로 오는지에 대한 설명은 이런 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물론 영화에서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기 때문에 열심히 보셔야 이해가 가실 겁니다. 심지어 어떤 영화잡지에서는 이점을 오해하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어찌됬건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감독이나 배우나 제작사나 별로 끌리는 점은 없었지만, 이 힘은 원작의 힘과 연기력 연출력의 힘인 것 같네요. 요즘같이 볼 영화가 없는 시즌에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ps. 오랜만에 유창한 현대 미국식 영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나중에 DVD 나오면 영어공부 하는데 써도 괜찮을 것 같네요.
|hit:1845|200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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