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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1999) :: 김기덕 감독 - 귀축물의 예술영화화
제가 처음 김기덕감독을 알게 된 영화는 바로 '섬'이었습니다. 1999년 한일전이 하던 저녁, 저는 축구에 관심이 없던 터라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거리는 텅 비어있었고 극장 또한 텅 비어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극장 안으로 들어서자 텅 빈 좌석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그때 극장에 한 4명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관객이 없는 터라 놀래야 할 장면에서도 제대로 놀라지 못하고, 입을 막고 '허억.'을 작게 소리내야 했습니다. 다들 친구도 없이 혼자 보러 탓인지 나갈때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극장 문을 나서더군요.

이렇게 김기덕 감독 영화에는 관객이 든 적이 없었습니다. 가장 히트한게 나쁜남자의 50만 정도죠. 그 전까지는 다 합쳐봤자 5만이 안 넘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런 돈도 안 되는 영화를 어떻게 1년에 한편씩 꾸준히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그 뒤에 돈 많은 후원자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화 시작할때 보면 투자에 기업 이름대신 개인이름이 하나 올라가던데, 이 분이 개인적으로 돈을 대주시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영화도 이런 빽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걸까요.

어찌됬건 이런 후원자가 있는 덕분에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할 작품도 나오고 그러는 거겠죠. 그래도 김기덕씨가 돈을 못 버는건 변함이 없어서 맨날 걸어다니고 4시간 걸리는 거리도 걸어다니고 그랬답니다. 뭐 해병대 출신이니까 체력적으로 버텨주니 그런 거겠죠. 그만큼 이 아저씨는 한번 밀어부치면 끝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 그게 도대체 옳은 길인지 아닌지 판단할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김기덕 감독 영화는 저도 한동안 분석이 안 되더군요. 도대체 어느 카테고리에 밀어넣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왜 이런 영화를 뭐하러 돈들여서 관객에게 보여주려는 건지 그 의도도 모르겠고. 그러던 중 저는 나쁜남자에서 조재현씨가 포르노 잡지를 성나게 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추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김기덕 감독도 포르노 뻔질나게 봤겠지. 그렇다면 그런 포르노가 이사람 영화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그때 제 머리에 떠오른 것이 바로 '귀축물'이었습니다. SM물 중에서도 최고의 극악함을 자랑하는 이 장르는, 과거 사드 백작의 '소돔의 120일'부터 시작되어, 일본 성인 애니메이션의 야근병동, 취작 등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귀축물의 내용은 아주 단순합니다. 악마같은 남자가 여자를 아주 집요하게 괴롭히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독자는 여자가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지는가를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죠.

이것은 다른 SM물과도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것이 단순히 'SM 플레이', 즉 즐기기 위해 역할극을 하는 것과 달리, 귀축물은 정말로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상대를 괴롭힙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룰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여자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모든 것은 단순히 남자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성노예일 뿐입니다.

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단순히 귀축물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상당 부분 들어맞더군요. 항상 창녀가 등장하는 것 하며, 그 창녀가 남자에게 끌려다니고 괴롭힙을 당하고 결국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나락으로 떨어져 무너져버리는 전개. 아니 뭐 남자도 무너지기는 마찬가지지만. 하여간에 이건 귀축물의 너무도 일반적인 전개였습니다.

처음 귀축물이란 장르를 세상에 가져온 사드 백작의 경우 비판을 받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인정하기 싫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깨웠다는 점이었습니다. 왠만하면 안 그런척 착하게 살고 싶은데 그걸 왜 굳이 들먹여서 그러냐 하는 거죠. 이런 면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의도는 이런 인정하기 싫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귀축물의 화법으로 전달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즉 귀축물의 예술영화화 라고 할까요.

그런 탓에 페미니스트에게 공격을 받는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들이 비판하는 내용은 아마 포르노를 비판하는 것과 똑같을 겁니다. 즉 김기덕 감독 영화의 반은 포르노입니다. 그리고 반은 예술영화죠. 귀축물 같은 포르노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예술영화로서의 가능성을 잘 모아서 만들어내는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뭐 그런것도 있고, 이 감독은 애초에 시작할때부터 말이 안되는 상황을 즐기는 것 같더군요. 파란 대문만 해도 창녀와 대학생이 같이 산다는 설정인데,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이걸 억지로 갖다 붙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식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조폭과 미대생이 사랑을 한다는 나쁜남자도 그렇구요. 그러면서 "봐봐. 이렇게 보면 조폭과 미대생도 사랑을 할 수 있잖아?" 하고 물으니 관객은 "무슨 소리야. 어떻게 조폭이랑 미대생이랑 사랑을 할 수 있어." 하고. 감독은 아니라니까? 이거 봐봐. 독자는 아니라니까. 하고. 이런 식의 감독과 독자와의 납득시키기 싸움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답이 없죠. 사랑, 할 수도 있고 안 할수도 있습니다. 마치 조오련이랑 물개랑 겨루면 누가 이길까 하는 수준의 문제죠. 하지만 답이 안 내려지기 때문에 김기덕 감독은 더욱 이런 문제에 매진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평생을 계속 생각해도 끝이 안 날 이런 말도 안되는 화두를 잡고 계속 수많은 영화를 만들겠죠. 물론 저도 그 문답에 계속 동참할 생각입니다. 누군가 말했죠, 영화는 '대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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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야문에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받았습니다.

[malice]
무언가 조금 잘못알고 계신듯 합니다...귀축물이라고 하면 일본 야겜회사인 엘리스 소프트에서 유래되었으며 보통 여러명의 여자를 어떻게 ..뭐..하는 형태이고....SM류는 조교물이라고 분류됩니다..대표적 예가 토리코 정도이고 ..지금은 흘러 넘치죠...귀축물이라고 모두 끝이 않좋은건 아닌데다가(여선생을 그렇게 괴롭히더니....결혼하는 게임도 있음)..그것도 사랑의 끝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김기덕 감독의 경우는 그가 소위 가방끈이 짧다는것과 여러가지 직업을 거쳤다는것에서 그의 영화관에 대한 일면을 유추해볼수 있을겁니다....그의 영화에선 약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형태를 띄고 있으며...그중에 약자에게 당하는 약자가 창녀를 위시한 소위 밑바닥 여자인게 여성들에겐 불쾌감을 줄수 있는 것이겠죠.....그의 영화에선 여자는 억압당하고 성적으로 유린당하고 급기야는 인생의 종착점에 이르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렇다고 가해자인 남성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그들도 어찌보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분풀이를 여자에게 해댈뿐이죠...대표적으로 나쁜남자의 주인공이겠죠.....성적인 표현은 단지 그 폭력의 수단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보여준 예이고....귀축물이라고 하긴엔 ...조금은...무리가 따르지 않나 싶습니다.....마지막으로 귀축게임의 시초라고 해야하나...그건 투신도시였던거 같은데..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틀린부분은 고쳐주세요.

[야설의뒷문]
김기덕 감독이 영화를 구준히 만드는 이유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제작비를 대주는 후원자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지금까지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놀랍게도" 모두 흑자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영화들은 성공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워낙 저예산으로 만들기 때문에 극장에 걸고 비디오로 출시하거나 해외에 파는 것 만으로도 제작비를 건진다는 것이죠.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해외에서 꽤 지명도가 있습니다)
덕분에 제작자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없이 만들수 있는 것이죠. 제작비 10억 미만이나 내외라서 망해도 껌값인데 여태 제작비는 꼬박꼬박 건졌고, 매번 해외영화제 나가니 외국에서 제작사 지명도 높여주고, 나쁠 것이 없는 것이죠. 거기다 흥행과는 상관없이 항상 화제작이고요.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김기덕 감독의 제작,배급사는 꽤 메이저에 속하는 회사들입니다. 즉, 김기덕 감독은 지좆대로 만들면서도 스스로의 생존법을 터득하고 있다는 것이죠.
데뷔작이 마지막 작품이 되거나 몇 년에 한 편 만드는 감독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김기덕같은 비흥행 코드의 감독이 매년 1~2편의 작품을 꼬박꼬박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생존법에 탁월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점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hit:2213|200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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