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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B급 야설의 걸작, <깊고 깊은 구멍>을 말한다
제 1회 회춘문예 평론부문 가작

B급 야설의 걸작, <깊고 깊은 구멍>을 말한다.
기파랑


목차
1. 여는 글
2. 작가와 연대에 관하여
3. 작품의 성격과 논쟁적 사안
1) 성장소설
2) 리얼리티 논쟁
4. 주요인물 분석
5. 무엇이 이 소설을 걸작으로 끌어올리는가
1) 새로운 인물형의 제시
2) 금기에 관한 유연하고 새로운 자세
a. 근친
b. 강간
3)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다
4) 야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
6. 닫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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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는 글

..."야설의 황금시대"라 일컬어지던 90년대 초중반을 기억하시는가. PC통신과 사설 BBS를 젖줄로 삼아 두터운 독자층이 형성되고 탁월한 작가들이 발굴되었으며, 작가와 독자가 혼융일체가 되어 하얗게 밤을 새우던 그 열정과 감격의 시대를. 작품의 수준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국내창작물이 외국번역물을 질과 양 모두 압도하기 시작했고, 매너리즘에 빠진 할리퀸 시리즈를 창작 야오이물들이 무섭게 위협하였다. 촛불은 타기 전에 가장 밝게 타오른다고 하였던가. 고속모뎀과 인터넷보급으로 인한 사진/동영상물에게 헤게모니를 넘겨주기 직전,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처절하도록 아름다웁게 야설의 황금시대는 꽃피었다. 그 야설의 황금시대, 야설계의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뜨고, 졌다. 한 어린 소녀가 섹스의 전도사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 가히 성장소설로의 위격을 갖추었다할 수 있는 장편야설 <간호사의 비밀(낸시)>, 거침 없는 10대소년을 1인칭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워 소년독자들이 꿈꾸는 모든 것을 표현해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낸 섹스어드벤쳐물 <똘이>. 빠른 전개와 툭툭 끊어치는 듯한 하드보일드한 문체, 그리고 과감한 상황설정이 일품이었던 <야마다>, 섬세한 묘사력으로 훔쳐보기심리의 진수를 보여준 완성도 높은 단편 <다희의 방>, 구운몽을 그대로 패러디하여 고전의 향취를 물씬 풍긴 희귀 단편야설 <무풍침대>, 섹스와 황금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경쾌한 터치로그려낸 세태풍자야설 <북에서 온 정일이>...아아. 그 별과 같이 빛나던 그리고 셀수 없던 작품들. 그리고, 그 숱한 별중에 북극성마냥 단연 빛을 발하던 존재, 별 중의 별, 야설 중의 야설. ....<깊고 깊은 구멍(부제:왕자지 밤바다)>이 있었다.


아아. <깊고 깊은 구멍>. 혹은 왕자지 밤바다. 그 이름을 되뇌일 때마다 가슴이 떨려오고 눈이 젖는다. 야설의 황금시대 한 가운데에 서서 그 이름만으로 야설을 대표하던 작품. 빼어난 구성, 탁월한 묘사, 장편임에도 느슨해지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 야설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듯 모든 찬사를 한몸에 받았으며, 또한 그 황금시대의 마지막을 나타내듯 그것은 스러져가는 제국의 마지막 장수처럼 비장했으며 장려한 낙일처럼 처절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고전적인 문법을 충실히 따르되 절대 고루하지 않았고, 그 어떤 작품보다 파격적이되 지나치지 않았다. 작고하신 야설학계의 귀두 곡근(曲根) 김병루 선생께서도 생전에 "<깊고 깊은 구멍>은 천하에 다시 없을 작품"이라며 극찬하시며, "야설학도라면 마땅히 익혀야할 야설의 바이블이니, 아아 씨바 후학들아 졸라게 용맹정진할지어다."라고 입술 가배얍게 말씀하시었다.


본 학인은 매서운 북방의 얼음평원을 횡단하는 순례자의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 본시 공부가 부족하야 이러한 글을 내놓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으나, 본 학인이 한낱 야설낭인으로서 강호를 떠돌다 일생을 마칠 것을 염려한 사형의 권유로 용기를 내어 붓을 잡는다. 이제 꽃이 피는 계절, 집필이 끝나면 사형과 술 한잔 빨고저.


밝혀두건데, 이 글은 <깊고깊은 구멍>의 분석을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활발한 학설대립을 소개하고, 또한 그 언저리에 위치한 작품들을 살살 비벼봄으로써, 궁극적으로 야설의 황금시대를 되짚어보는 연구서가 될 것이다. 또한, 야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본다. 상당히 학문적이며 아니꼽고 씹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을 듯하다. 따라서 이 글이 재미있을 가능성은 오노새끼 양심만큼도 없다. 기대하지 말길 바란다. 본 학인은, 백만인의 어줍잖은 꼴림보다 단 한사람의 강렬한 파정이 더 가치있다는 신념 아래 다만 붓을 놀릴 뿐이다. 단 한사람이라도 본 학인의 글을 읽고 흥미로워 한다면 혹은 행간에 점점이 뿌려진 본 학인의 눈물과 고뇌의 흔적을 읽어낸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글을 읽을 사해동포에게 부탁컨데, 졸라게 긴장하며 읽어달라. 때는 무르익었고 학인의 가슴은 고동친다. 아아 씨바 졸라게 용맹정진!



2. 작가와 연대에 관하여

"이성현(bambad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작가의 신분에 대하여는, 그 시절 야설작가가 그러하듯 별다른 정보가 없다. 다만 학계에서는,1) 문장의 주술호응, 맞춤법 등 기타 문법이 (타 야설에 비해) 비교적 정돈되어있고 2) 대학생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정확하며 3) 작가가 자기와 비슷한 인물을 주인공을 내세우는 당시의 관례 등을 이유로 들어 "작가는 주인공인 26살의 대학생 마성기와 비슷한 연배일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작품이 쓰여진 시기에 관해서는 90년대 중반, 즉 94-95년으로 추정하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었으나, 욘쎄이야설연구소 허용 교수가 이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논쟁에 불이 붙었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허용교수는 의욕 넘치는 저서 <한국야설론>을 통해 "왕자지 밤바다는 8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며, 1990년에 발표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미 1990년에 이토록 탁월한 작품이 발표되었다는 것은 한국야설의 선진성을 웅변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허교수의 주장에 기존통설을 대표하던 관악야설연구소 권양성 교수는 "한마디로, 조또 모르는 소리"라며 박력있게 응수하였다. 권교수는 자신의 <야설학 원론> 개정판에서 "한국야설의 연대를 억지로 끌어올리려는 일부 국수주의적 학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어디까지나 학문은 실증적이어야 할 터, 마빡에 피도 안 마른 허교수는 건방 떨지 말고 공부를 더 하길 바란다"라고 불같은 심정을 토로했다.


본 학인의 판단으로는, 허교수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본다. 소설 여러 곳에서 80년대 말적인 단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1) "써클룸"에서(동아리방이 아님에 유의) 자위하다 들켜버린 여자후배가 남자선배인 주인공을 "형"이라고 부르고, (8편) 2) 나이트클럽의 "부르스타임"에서는 80년대 히트곡 wham의 "careless whisper"가 나오는 등 (15편) 90년대에 들어서면 볼 수 없는 장면들이 그려진다. 또한, 왕자지 밤바다의 주 파일형태였던 "deep**.txt"의 작성일자가 1990-07로 되어있는 것들이 최근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어, 허교수의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본 학인은 허교수의 주장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앞으로의 글을 진행시켜 나가겠다.



3. 작품의 성격과 논쟁적 사안


1) 성장소설

본 소설이 성장소설의 형식을 갖추었다는 평가에는 학계의 이견이 없다. <깊고깊은 구멍>은 야설계에 성장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던지고, 또한 완성한 작품이었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섹스어드벤쳐물(<똘이>로 되표되는)에 대한 야설계의 진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당시 섹스어드벤쳐물의 구성을 보자면, 1)주인공 남자 오늘도 굶주린다 2) 어딘가에 간다. 문장 세 개 이내로 여자 등장 3) 어떻게든 먹는다 4) 몸을 추스리고 "오늘도 보람찬.." 류의 멘트를 씨부리고 1)의 자동대기모드로 돌아가는 주인공. 이러한 구조로 쓰여져있다. 이는 야설 특유의 강렬한 카타르시스는 있으되 그 이상의 감동을 기대할 수 없고, 한 시리즈 물이 3편짜리건 30편짜리건 "여자만 바뀌는" 안타깝고 지루한 상황이 연출된다. 또한 남성독자(혹은 여성독자도)가 야설을 읽으며 수작업을 수행할 시(아아 야설은 진정한 인터랙티브 문학이 아니더냐), 작업 종료 이후로는 남은 이야기에 대한 흥미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중대한 문제점도 노출되었다. 스토리, 스토리에 목말라 있었다, 당시 야설계는.


<깊고깊은 구멍>은 이러한 당시 주류야설계의 고민을 일거에 날려버린 혁명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한 소년이 서낭당에서 동네누나들과의 어울림을 통해 성에 눈뜬 이래, 수많은 여인을 거치며 지적 인격적 성숙을 이뤄 전인적 섹스 히어로로 거듭나는 스토리는 독자들에게 말초적 쾌감만을 넘어선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고 이후 야설의 흐름마저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와 비견될만한 작품은 (간호사의 비밀<낸시>)가 있겠으나, 번역물 특유의 생경한 어휘, 국내현실과는 동떨어진 설정, 감정이입이 쉽지않은 여주인공 등으로 <깊고깊은 구멍>만큼의 지지를 얻어내지는 못하였다.


< 이윽고 셋은 그 일을 마치고 말했다. "이제 알았어?" "으응, 근데 왜 그걸 해?" "성기야, 이건 여자들이 풀을 만드는 거야. 그건 니 자지에 털도 나고 자지가 이 오이만큼 꺼지면 그 때 다 가르쳐 줄께. 알았지?" "응" 그 후로 고사당에 갈 때마다 누나들은 내 자지에서 풀을 만들어 주었고 나는 누나들의 보지에다 오이로 풀을 만들어 주었다. -깊고깊은 구멍 4편 中 >


성장소설에는 언제나 <통과의례> 모티브가 등장한다. 통과의례는 언제나 "조건"을 필요로 한다. 깊고깊은 구멍 역시 고전에 충실한 작품답게 이 모티브를 차용하는데, 주인공소년이 성의 세계에 입문하기 위한 조건은 "자지가 이 오이만큼 커지면"이다. 단순히 "나이가 차면", 아니라 분명히 "오이만큼"이라고 명시하였다. 니미, 어디 보통것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오이만해질 수 있던가. 딴지일보 "강추! 고추단련법" 이런 것들 눈빠지게 보면서 조슬 쥐어짜봤자 안될 놈은 안된단 말이다. "오이"는 주인공이 섹스히어로로서의 비범한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 자인지 1차적으로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영웅신화는 이러한 통과의례 모티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조건은 매우 혹독하다. 주인공 성기 또한 소년에서 섹스히어로로 성장하는 자이므로, 이러한 영웅신화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것이다. 본문을 더 보자.


< ...내가 15살이 되던 해에 나는 이제 자지에 털이 수북하게 자라났고 자지가 큰 오이만큼 커지게 되었다. 나는 그 해 여름 몹시 무덥던 날 성자 누나를 데리고 장독대 뒤로 갔다. 거기서 나는 내 자지를 성자 누나에게 꺼내어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내 자지를 문질러 세워서는 뒷담에 열린 오이 중에 제일 큰 것을 따서 내 자지와 크기를 비교했다. 내 자지가 더 컸다. "성자 누나 이제 내 자지에 털도 많이 나고 자지가 오이보다 더 커졌으니까, 나에게 모두 다 가르쳐 줘. 보지하고 자지가 어떻게 되는 건지......" "오 그래 우리 성기 자지가 이제 이렇게 자랐구나. 오늘 밤에 식구들 몰래 고사당에 올라가자. 옥섬이하고 순녀도 같이......" 나는 그날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저녁을 먹고 동산에 달이 떠오르자 나는 성자 누나와 몰래 집을 빠져 나와 옥섬이 누나하고 순녀 누나를 만나 고사당으로 올라갔다. 고사당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사당 안에 촛불을 켰다. 무더위에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6편 中>


아아. 소년은 성숙하여 이제 용틀임을 시작한다. 역발산 기개새. 느껴지는가. 이제 성년에 들어선 소년의 넘치는 기백이. 하늘을 찢고 땅을 흔들 듯한 그 강렬한 에너지가. 침을 삼키며 소년의 성장을 기다리던 독자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릴만한 장면이다. 동산에 달이 휘영청 뜨는 밤, 소년은 그동안 키워왔던 자신의 남성을 자랑스럽게 공개하며 성인의 세계에 입문한다. 오이,뒷산,고사당,무더운 여름밤,달 등 강렬하고 토속적인 생명력이 물씬 풍기는 소재를 대거 배치한 작가, 상황설정과 소품배치를 얼마나 탁월하게 수행하는 야설고수인지 단박에 과시해보이는 대목이라 하겠다.


2) 리얼리티 논쟁


비교적 리얼리티에 충실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깊고 깊은 구멍>이나, 15편의 "스트립퍼 아가씨 일당백 빠굴씬"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나이트클럽에 들이닥친 괴한들에게서 여자손님들을 구해내기 위해 그 머릿수만큼 남자손님과 관계를 맺는 스트립퍼 아가씨의 이야기는 자극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야설매니아들의 뜨거운 눈물을 얻어내었고, 그 지지만큼이나 가열찬 논쟁이 있었다.


대쪽같은 물건으로 유명한(곧아서 그런게 아니라 마디가 있어서 그렇다는 풍문이 있다) 한야설당 이헤창연구원은 딴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선...그 장면이...씨발 졸라 음란하다. 일단 맘에 안든다"라고 얼굴을 붉힌 후, "긍지 높은 내가 차마 입에 올리기에도 부끄러우나, <일당백 빠굴>씬에서의...그 한구멍 두개 넣기 테크닉이나 6대 1 멀티 플레이...아 이걸 내가 말해야 하나..아무튼 이거 리얼리티에 문제 있다."라고 줄곧 우유를 빨고 왼쪽 오른쪽뺨을 만지며 곤혹스러워했다. 이에, 새천년야설당(현재 소속. 몇달 후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현재라는 단서를 붙인다) 이인제 연구원은 "헤창이는 <야설적 상상력>이 부족한 자"라고 평한 후, "평생을 정상체위의 세계에서만 활동하여 <야설적 상상력>이 부족한 그는, <깊고깊은 구멍>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참고로 나는 <야설적 상상력> 그 자체."이라고 주장하였다. (딴지일보 45호 3월 일망타진 인터뷰 참조) 이에, 딴지 수뇌부가 "발기왕예비대회에서 헤창이에게 밀리고, 뒤를 봐주던 기명사미마저 발기불능에 빠지자 잽싸게 데중이에 가버린 것도 그 <야설적 상상력>으로 보아야하는가."라고 집요히 파고들자 조용히 담배를 빼물며 "하...씨발"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본 학인은, <야설적 상상력>을 통해서든, 실제가능성을 통해서든 작품의 가치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고 보는 바, 그 리얼리티 논쟁은 실익이 없다 판단한다. 또한, 논란의 핵심이 되었던, 이 글에서 표현된 초고난이도 섹스써커스는 여러 양인과 왜인들의 영상물울 통해 그 가능성이 이미 실증된 바 있으므로 리얼리티 논쟁 자체는 접는 국면에 들어섰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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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요인물 분석


혹자는, "야설에는 인물이 없다"고 말한다. 등장하는 것들은 남자건 여자건 견공(주로 셰퍼드가 선호)이건 이름만 바꿔가며 겹치기 출연하는 양 다 똑같은 대사 똑같은 신체조건 똑같은 테크닉으로 떡을 치기에, 개성적 인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겠다. 허나, 잘 된 야설에는 언제나 인물이 있다. 야설에는 인물이 없다? 일부 우매한 독자의 세심하지 못한 관찰력과 무딘 감수성이 빚어낸 가슴 아픈 멘트다.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법이다. 거칠디 거친 야설의 행간에서 보석처럼 숨겨진 <인물>을 캐내지 못하는 자신은 돌아보지 못한 채, "야설에는 인물이 없다" 이러한 혀놀림으로 야설을 능멸하는 자, 비판 받아 마땅할지니.


1) 마성기

<깊고 깊은 구멍>의 주인공. 고뇌하는 섹스히어로. 학계에서는 기존의 저돌적인 주인공의 대표격인 똘이와 대비시켜, 똘이형/마성기형 인물을 가르고, 그 전형으로서 주인공 마성기를 든다. 이는 돈키호테형/햄릿형 인물로 환치시켜도 무리 없다. 언제나 절륜한 정력과 샘솟는 욕망을 과시하며 너 여자? 나 주인공이야 를 외치며 졸라게 내리치는, "보자마다 일단 먹고 들어가는" 마초스타일의 똘이형과는 달리, 여성인물들과의 상호교감을 중시하며, 언제나 섹스 자체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계속하는 26살의 이 진지한 남자는, 당시 시대의 부름에 응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시대적으로, 이런 인물이 왜 필요했는지 앞서 말한 바 있다. (1편 참조)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3편)으로 넘긴다.


주요 대사

" 그러나 그것은 모두 단지 생식기에서 느끼는 쾌감 하나였어..그러면 그외엔 섹스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무엇을 위해서 섹스하는가? (중략)..답을 찾으리라. 섹스의 진실을." -7편

"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간직되어져야하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 성의 자유이다. 개인에게서 가장 순수한 행복이 왜 퇴폐와 종족보존이라는 이름 아래 억압당해야 하나? 섹스는 자연스러운 것. 서로의 사랑을 표현하고 쾌락과 행복을 가질 수 있는 것. 섹스는 나이를 초월하고, 종족을 초월하고, 혈연을 초월하고, 성별을 초월하여야 하며 결코 숨기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아름다운 몸짓이어야 한다..." -3편



2) 성자누나

마성기의 사촌누나. 주인공을 성의 세계로 인도하고, 또한 모든 것을 가르쳐 준 여인. 이 또한 당시의 일반적인 야설경향에서 상당히 틀어져나간 독특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어린 남자주인공을 "따먹는" 농염한 연상녀(여교수,선생님,친구누나 등이 선호) 혹은 남자주인공에게 "따먹히는" 여자 둘 중 하나의 역할만이 강요되었던 여성캐릭터에서 벗어나, 주인공에게 "대등한 성인"이 되어 "상호교감으로서의 섹스를 나눌 것"을 요구한다. 주인공이 성장을 거듭하여 확립하게 되는 섹스철학의 출발점은 사실 성자누나에게 있다.


주요대사

" 성기야 이제서 알았지? 여자의 보지와 남자의 자지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거야.그 하나가 없어도 안 돼. (중략) ..너의 좃물은 사랑의 약수물이야. 목 마른 사람에게 목을 축여 주듯이, 너와의 관계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언제고 베풀어 주어서 갈증을 풀어 주어야 하는 거야." -5편


3) 지보연

작가의 네이밍실력 역시 보통이 아님을 나타내주는 이름이다. 거꾸로 읽어보시라. 무척이나 청순한 캐릭터. 성자누나로 시작되어 무수한 여자를 거친 그의 종착점이 그녀임을 암시하는 구절이 소설 곳곳에 나타난다. 그녀와의 <용평스키장 눈밭 빠굴씬>은 지극히 아름다운 묘사와 애틋한 대사로 그 이름이 높다. 말이 없는 그녀, 고로 대사가 별로 없다. -_-;

주요대사

"저..차 있어요"
"하아하아...하아하아"
"으응..."


4)김영숙 간호사

주인공이 부상당해 입원한 병원의 섹시한 간호사. 인물상으로는 그다지 중요하다고 할 수 없으나 <임상병리실 책상위 빠굴씬>은 야설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뽑힐 정도로 농밀한 묘사와 강렬한 에너지로 유명하다. 완급을 조절할 수 아는 문장의 길이, 운문과 산문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서술, 역동적이고 참신한 비유, 섹스 중에 스치는 갖가지 상념들에 대한 칼날 같은 묘사, 놀라운 언어 유희.. 성희의 무아지경을 그리는 작가의 표현력은 이 에피소드에서 물이 오른다. 꼭 다시 읽어보시라. 아릿하게 가슴에 사무쳐오는 감동이 그곳에 있다.


주요대사

없음. 지보연보다 더.


5) 성현

성기의 오랜 친구. 우선 이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작가 이름이 "이성현"으로 알려져 있음은 이미 말한 바 있다. (1편 참조)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가진 인물을 이야기 속에 박아넣는 것에는, 그 인물에게 모종의 중대한 역할을 부여한 경우가 많다. 성현은 작가의 분신으로서, 주인공의 섹스철학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자신의 <용평난교씬>이 바로 그것. 2대 2 난교를 하던 중 성현은 주인공의 남성을 느닷없이 입에 문다. 기겁을 하는 주인공. 그러나 이내 깨닫는다. "섹스란,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것, 인종 성별 나이 이 모든 굴레를 벗어나는 절대적인 것.."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주인공은 희열에 몸을 떨며 기꺼이 성현과 펠라티오를 교환한다.

<깊고 깊은 구멍>이 충분히 고전적이되, 또한 파격적인 작품이라고 불리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야오이를 제외하고는 주류하드코어야설물에서 남성동성애묘사는 금기시 되어있었다. 선호도 역시 낮았다. 당신의 기억을 떠올려보라. 최근까지도 이러한 상황을 제시한 야설이 얼마나 있는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12년 전에 이런 작품을 써낸 작가를 생각하면 본 학인은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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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엇이 이 소설을 걸작으로 끌어올리는가


학문의 길은 참으로 험난하고 고독한 일인 바, 쉼없는 야설연구와 용두질로 심신이 지칠 제, 본 학인은 이만 학문을 접고 싶은 유혹에 하룻밤 사이에도 열두번씩 몸부림치곤 한다. 평생을 다 바쳐도 야설의 깊은 깨우침 한자락을 얻지 못할 인생, 알아주는 이 없이 홀로 강호를 떠도는 야설낭인의 인생, 용기를 내어 조빠지게 글써봤자 독자평가 납득이 안가는 마이너스나 배터지게 받아먹는 인생, 업보로다 업보로다 오오 금생(今生)은 접고 다음 생의 윤회를 기다려야 하는가. 처절한 절망감으로 끝내 울음을 터뜨리니, 바위가 녹고 하늘이 찢어질 듯 하다. 밤이 다가도록 울고 새벽이 오면 한줄기 눈물 속에 오롯이 떠오르시어 본 학인에게 다시 힘을 주는 분이 둘 있으니 야설학의 대가, 또올 김뇽옥선생과 마광쑤교수이시다. 그 분들을 생각하고나서야 본 학인, 눈물을 씻는다.


오오 또올선생이 누구시더냐. 천하의 빠굴선진국를 부유하며 학위를 줄줄이 수집하시고 귀국, <민족빠굴>의 기치를 높이 든 코리아야설연구소의 부교수에 취임하여 기백넘치는 저서 <계집이란 무엇이더냐> 한권으로 학계에 도전장을 내미시었다. 이어, <소녀경 주해>, <나는 카마수트라를 이렇게 본다> 등 향기 높은 동양고전을 재해석하는 역저를 내놓아 학계를 놀래키었다. 허나, 천재는 언제나 견제당하는 법. 그분의 혜성같은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던 일부 사악한 무리는 "내용과 구성이 파격적이고 난삽하여 고문(古文)의 정률을 벗어났다. 사문난적이다"고 모함, 선생은 학계에서 매장되었고 코리아야설연구소의 부교수직위도 해제되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대중에게 가르침을 베풀고자 TV에 출현, EBS(Erotic Broadcasting System)에서 <노자와 십팔 세기>를 강의하시며 대중의 인기를 얻으시었다. 번쩍이는 머리와 쇳소리 섞인 목소리, 날렵한 몸놀림으로 최근 중년부녀자들의 섹스심벌("물개"라는 별명이 붙었다던가)로까지 떠올랐으니, 오오 놀라울 뿐이다.


야설계의 기린아 마광쑤 교수는 또 어떤 분이던가. 욘쎄이야설연구소 교수시절 <오라 장미여관으로> <나도 야한 여자가 좋은데> 등을 집필하시어 삽입성교의 강박관념에서 허우적대던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무수히 구원하시었고, 소설 <교태>등을 직접 창작, 실천하는 지성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여주시었다. 이 분 또한 시련이 있었으니 당시 발기등등했던 기명사미가 청와대에서 비서가 보고 있는 이분의 글을 뺏어 보게 된 것. 글자 잘 못읽는 기명사미, "아흐 이거 씨발.... 어쨌든 졸라 음란하자너...다 잡아처넣어..." 이리하여 마광쑤,장정일,이횬세 등 지조있는 선비들의 글과 그림이 모두 불태워지고 본인은 투옥되는 등의 분서갱유가 벌어지니, 기명사미정권때 저질러진 사화라 하여 <기명사화>라 한다. 출옥 후 좃선에 연재된 "광쑤생각"이 혹시 그분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풍문이 세간에 돌았으나, 이에 마교수께서는 "내가 좃선같은 찌라시에 글 한 줄 쓸 사람인가. 좃선이 쓰일 곳은 오직 화장실 뿐이다."고 말씀하시어 그 강직함을 만방에 알리시었다.


본 학인이 이토록 장황하게 두분을 소개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두 대가께서 이미 <깊고 깊은 구멍>에 대해 논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대가는 작품을 알아본다. <깊고 깊은 구멍>의 탁월함을 이미 깨달으신 두 분은, 양 사설연구소의 학술 교류기간 욘코-코욘 학술제기간에 신촌의 허름한 대포집에서 <깊고깊은 구멍>과 한국야설계의 미래에 대해 불꽃 튀기는 논쟁을 벌이셨으니 오오 그 치열함이 용과 호랑이가 어우르는 듯하였다. 늦봄의 밤꽃나무처럼 방렬한 향을 내뿜던 그 논쟁을 주위의 학인 하나가 옮겨적어 소량 출판, 유포하였으니 그 희소성으로 인해 학계에서조차 그 실존여부가 논란이 되던 책자, <깊고 깊은 구멍 강해>가 되겠다.

본 학인, 이 책을 구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더랬다.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국립야설감정소 백방을 돌아다녀도 구할 수 없었고 택시비만 수억 깨졌더랬다 씨바... 실의와 좌절에 빠져 지낸던 나날, 욘쎄이연구소 중앙도서관 3층을 배회하던 중 구석 저편에서 빨간 표지로 요염한 빛을 내쏘던 작은 책을 발견했다. 심상찮은 느낌으로 책을 꺼내자 표지에 쓰여져있는 금빛찬란한 글자. <깊.깊.구.강.해> 오오오. 본 학인 주먹을 불끈 치켜올리며 카운터를 향해 "아줌마 났어요!"를 외쳤더랬다. 오호라. 당구장이 아니고 도서관인 것을. 사서 아가씨를 비롯 여럿이 졸라 째려보는지라 넘실대는 쪽팔림을 가슴에 안고 골세레머니하는 이동국이마냥 티셔츠 까뒤집어 얼굴 가리고 그냥 뛰어나왔더랬다.


고백하건데, 이번 5장의 논의는 책에 나와있는 그 분들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내가 각주를 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흐 너 표절이자너 라고 딴지 거실 분도 있겠으나, 일개 학인이 대가의 말씀들을 곰씹어 다시 나만의 언어로 썰을 푸는 것은 부끄러운 일은 아니며,오히려 가상한 일이라 본다. 고로 이 글을 계속 읽어나갈 사해동포들은 딴지 걸지 말아달라. 본 학인 소심하단 말이다.



1) 새로운 인물형의 제시


두 대가 모두 <깊고깊은 구멍>의 첫째 가는 덕목으로 "새로운 인물형의 제시"를 꼽았다. 주인공 마성기가 당시 야설주인공의 고전적인 조건-절륜한 정력,강건한 육체,이상하게 주위에 여자가 많은 상황-임을 일차적으로 갖춘 자임에 대해서는 두 대가의 견해 모두 일치한다. 그렇다면 그 이상으로 무엇이 있을 것인가. 왜 마성기는 새로운 인물인가. 또올선생은 마성기를 야설사 초유의 탈(脫)프로이트, 탈 남성중심주의 캐릭터로 보면서 다음의 본문을 던져준다.

< 공부를 하던 중에 민경이는 내게 말했다. "선생님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게 후회 되요. 남자들은 서서 오줌도 누잖아요? 즉, 여자는 있을게 없다는 거 아니예요. 그 말은 남자들은 원래 있는거고 여자는 있어야할게 없다는 말 아니예요?" "민경아, 여자는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거야. 네가 여자로서 가질 수 있는 행복을 배우게 될꺼야" "그게 언제예요?" "응 지금 가르쳐 줄 수도 있지" "그럼 가르쳐 주세요" > -4편 中


마성기가 과외하는 여고생 민경이와의 대화다. 뒤의 작업멘트는 신경쓰지 말지어다. 설마 저거 외워서 과외하는 학생한테 써먹을 또라이는 없으리라 본다. ...정말 하지마라. 뺨맞고 과외 짤린다 으흑. 여튼 우리가 신경을 집중해야할 것은 민경이의 첫마디 되겠다. 요약하건데 "남근은,<있어야할 것>. 여성은 그것을 가지지 못함으로써 컴플렉스를 느끼고, 그리하여 여성은 남성의 결여태라는 자괴감을 가지게 됨" 오오 이것은 딱 프로이트가 아닌가. 눈썰미 좋고 좀 책 좀 뒤적인 분들은 여성을 남성의 결여태로 보는 고대 그리스철학까지도 거슬러서 생각할 수 있겠다. 실상 우리들이 무심코 읽어나가는 야설 속의 마초이즘,남근숭배주의가 실상 양인들의 수천년 묵은 이론을 뿌리로 하여 면면히 이어져 왔던 것인 바, 이에 대해 또올 선생은 "조또 아닌 양인 프로이트 씹새끼한테 우리 야설계가 너무 흔들려 왔다"라고 <계집이란 무엇이더냐>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리하여 또올선생은 "남녀의 성기를 평등하게 놓고 시작하는 마성기의 멘트는 야설계의 뉴 패러다임을 그대로 제시한다"라고 열렬히 칭송하였다. 마교수의 입장은 또올선생에 비해 비호의적이다. "새로운 인물임은 사실이지만 그건 멘트에서만 드러날 뿐 하는 짓은 그게 그거"라고 비판한 후, "삽입성교 위주의 기존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정확하게 찔렀다. 이어서 "무엇보다 난 채찍이 안 나오는 야설은 흥분이 안 돼..맘에 안들어..."하며 나른한 목소리로 내뱉으셨다.

본 학인의 입장은 또올선생의 입장과 마교수의 입장을 절충한다. 또올선생의 의견대로 마성기가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인물임은 확실하나 그 스스로 완벽하게 모습을 완성해내지 못함에 아쉬움이 있고, 마교수의 의견대로 삽입성교의 강박관념은 벗어나지 못했으되 어느 정도 사상면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 그 성과가 있다 하겠다.



2) 금기에 관한 유연한 자세

야설은 금기를 먹고 산다. <깊고 깊은 구멍>은 어떠한가. 잘라 말하자면, "금기를 다루되, 선을 넘지 않는다". 사회적 금기에 대한 독자의 욕구들은 충분히 충족시켜주면서, 아주 테크니컬하게 살짝 피해나간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마교수는 "보일 듯 말해줄 듯 독자를 살살 약올려 무한발기를 이룩하는 초고난이도의 절묘한 설정"이라고 탄복하였다. 이 대체 무슨 메카니즘이란 말인가. 본 학인이 조단조단 설명해주리라.

a)근친

근친은 예로부터 하드코어야설의 주요한 소재 되겠다. 이모, 고모 사촌누나 정도로 만족하던 고전근친야설시대를 지나 근래에는 친누나 친어머니 비롯 직계 방계 6촌을 넘나드는 무시무시한 소설이 슥슥 나오고 있다. 꼭, 이런 소설... 마지막편은 온가족이 거실에서 뒤엉켜 꽃피는 가족애를 과시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깊고깊은 구멍>에는 근친장면이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근친을 다루는가. 다룬다. 씨바야 장난하냐 하면서 의자를 들었다놓았다 하는 분, 좀 참아라. 이야기해줄꺼다 내가. <깊고깊은구멍>에서는 ...새엄마를 내세운다. 아버지와 구멍동서가 되는 도착적인 상황을 만들어 근친상간이 갖는 금지된 욕망을 충분히 충족시켜주면서도, 사회적 금기성을 자연스레 비껴나간다는 말이다.

여기서, 내 글 2편을 주의 깊게 보셨거나 나만큼이나 <깊고깊은 구멍> 숙독하신분은 딴지를 건다. "성자누나는 마성기의 사촌누나자너...근친 맞짜나 씨바야." 허나, 이를 해명할 권위자의 말씀을 하나 소개한다. 우리나라 가족야설계의 대부이신 경히야설연구소 김주쑤 박사님의 이론이다. "...본디 야설에서의 근친이라 함은, 직계 방계 아울러 6촌 정도를 지칭하였으나, 직계존비속이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최근 이 바닥의 생리 상,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여 방계 4촌 이상은 이제 근친으로 보지 아니하며, 따라서 직계존비속 정도가 진정한 근친이라 할 것이다. 씨바 졸라!" ...고조 요즘 우리 야설계에서는.. 사촌누나? 그 정도는 이제 근친 축에서 못 낀단 말이다. 둘째누나 정도는 되야 "아 이제 좀 가까운갑따.." 한다는 거지.


b)강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친구와 자신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오던 외삼촌 사이에서의 고뇌어린 삼각관계를 그린 근친동성애물 <난 삼촌이 있는데>의 작곡가 박지뇽은 "강간장면이 들어가지 않는 시리즈물 야설은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한 적 있다. 허나, <깊고깊은 구멍>에는 없다. 야설의 모든 것을 집대성되어있다고 일컬어지는 작품에 그 흔한 소재가 안 들어가다니. 오오 작가는 여기서도 트릭을 썼다. 새엄마는 주인공에게 "다 말해뒀으니" 좀 내숭떨지라도 친구(과부)를 덮치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한 새엄마의 음모. 과부의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해, 봉사정신으로 달려든 마성기와 끝까지 반항하는 새엄마의 친구. 여기서 작가는 강간장면의 강렬한 에너지는 살려 묘사하되 주인공에게는 강간이 아니다 라는 심리를 설정, 독자들의 욕구는 채워주되 도덕적인 찝찝함은 일찌감치 제거해버렸다 하겠다.


3)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다

실존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70년대 직공들의 노동현실과 에로티시즘을 씨줄과 날줄마냥 절묘하게 엮어낸 <박아사탕>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좋은 야설은 시대성까지 담아낸다"라는 명제는 유효하다. <깊고 깊은 구멍>에서 이러한 시대의 아픔은 드러나는데, 학계에서는 1) 성자누나가 미군과 결혼해 한국을 떠나는, 당시 흔히 볼 수 있는 양공주스토리 조의 설정 2) <중딩 미경이와의 독서실 빠굴 씬>을 든다. 특히 또올선생은 2)를 높게 치는데, "..미경이가 팬티를 집어던지자 독서실에 걸려있는 "하면된다"에 걸쳐지는 장면, 이것은 그 구호로 대변되던 당시의 폭압적인 사회분위기와 독서실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폭력적인 입시현실의 이미지에 대해 <팬티를 집어던짐>으로 날리는 작가의 통렬한 야유"라고 평한 바 있다.



닫는 글

실상, 본 학인은 가슴 아프다. 작금의 현실이 본 학인을 너무나 가슴 아프게 한다. 야설은 어디 있는가. 자라나는 아해들도 나이 지긋한 성인들도 너나 할 거없이 말초적인 동영상에 빠져 모니터에 침을 흘리고 있으니 통분스럽기 그지없다. 그 동영상이라 하는 것들을 볼작시면 왜인과 양인들의 써커스형 체위디스플레이가 주류요, 상상력이란 눈꼽만치도 없는 바, 개인의 인격을 훼하는 몰카 있으니 이 어찌 안타깝지 아니한가. 오오 자신만의 환타지를 문장으로 표현, 무명씨의 작가로 작품을 수줍게 내어놓고 그 영원한 환타지의 세계에서 노닐던 우리민족의 풍류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떤이는 쓰고 어떤이는 읽고 하며 밤을 새워 교감하던 우리네 인정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오오.

이 글이 기존 야설계에 작은 도움이 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나와 함께 해준 진로 참이슬에게 감사를 표한다.


http://www.namrodang.com/
|hit:38591|200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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