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xacdo.net > 피드백의 장 > 게시판


 



xacdo
http://xacdo.net
metro.jpg (30.5 KB) Download : 19

한민족, 문명시나리오의 '자기화' 시급하다

아침에 지하철 앞에서 나눠주는 신문 'metro'에 실렸던 기사인데요. 꽤나 흥미로워서 typing해봤습니다.
같이 보시죠... ^^


metro > feature

2003년 1월 15일 수요일


한민족, 문명시나리오의 '자기화' 시급하다


# 시장국가와 극장국가

1.시나리오 수입국-극장국가
대한민국과 그 이전의 조선이나 고려, 삼국 등우리 조상들은 항상 문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우리가 직접 쓰지 못하고 수입해서 살아온 탓에 세계를 경영한, 중심국이 된 경험이 없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제국주의 국가를 침략자나 나쁜 나라로 규정하면서도 사대를 하고 속으로는 패배주의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왔다. 고대에는 주로 중국에서 시나리오를 수입했고 근대에 와서는 미국을 비롯, 구미에서 수입했으며 일제 때에는 일본을 통해서 구미문명의 시나리오를 간접적으로 수입하기도 했다. 적어도 고조선을 제외하면 주로 남의 나라에서 언제나 시나리오를 가져다 쓴 셈이다. 시나리오를 빌려 쓰는 입장에 있는 나라를 극장국가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은 시나리오를 빌렸다는 점에서 모두 극장국가적 성격이 강하다. 한국과 일본은 자연적 특성이 다른 가운데서도 '중국 시나리오'와 '서구 시나리오'를 함께 경험한 동아시아 주변국으로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도입된 시나리오를 '자기화'시켜 나가는 데에 있어서 한국은 매우 관념성을 보이는 데 반해 일본은 실질성을 보인다. 한국은 비교적 오리지널리티에 충실하려고 하기 떄문에 매우 관념적인 색채를 보이며 이것이 더욱 극장 국가적 성격을 강화한다. 조선의 주자학적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가장 극심한 예의 하나이다.

2.시나리오 선택법-쇄국과 사대
시나리오를 수입하는 나라의 선택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쇄국이요, 다른 하나는 개방이다. 쇄국은 흔히 주체성으로 보이고 개방은 사대성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오늘날 주체성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대외적으로 폐쇠적이고 개방을 강조하는 남한의 경우 사대적인 경향이 농후한 데서도 증명된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쇄국을 하여 국가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면 결과적으로 주체도 되지 않고 국가의 존립마저도 위협받게 된다. 쇄국보다는 개방이 낫다는 것이 문화에도 적용되는 잡종강세의 법칙이다.
대체로 시나리오를 처음 도입할 때는 우선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자체 생산해 본 경험이 부족하고 동시에 기존의 시나리오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생소한 시나리오에는 합리적인 대응보다는 적대감을 갖기 쉽고 그것이 심할 때는 폐쇠적인 자세를 보인다. 이것이 쇄국이다. 그러나 새로운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위해 숭고한 순교나 희생을 치르는 시련을 겪고 이해가 확충되면 사태는 역전되어 개방은 사대로 변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근대에 들어 중국시나리오에서 서구시나리오로 중심 시나리오를 바꾸어야 하는 어려움에 처했다. 그런데 근대화의 초기에 조선은 쇄국을 택한 반면에 일본은 개방을 택했다. 이것이 근대화에 한국과 일본간의 국력의 격차와 식민과 피식민을 가름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 한-일 '극장국가'적 성격

쇄국과 사대의 극단적 자세로 인해 오늘날 유교를 보려면 중국보다 한국을 찾아야 하고 불교를 보려면 인도나 스리랑카, 네팔, 티베트보다 한국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아마 기독교도 나중에는 서구에는 교회건물만 요란하고 실지로 기독교정신을 찾으려면 한국을 찾아야 할런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매우 외래종교나 이데올로기에 맹목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인류문명사에서 이데올로기 체계보다는 도구체계가 훨씬 우위를 점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도구체계에 있어서 간발의 차이가 정복과 피정복이라는 상반된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 비일비재한 일이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내에서도 철의 제련 기술이나 응용의 차이에 따라 차이가 나게 된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 손을 든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원자폭탄이라는 미증유의 원자기술 격차로 인해 폭탄세례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 당신 일본의 신도(神道)가 미국의 프로테스탄트보다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바로 핵기술, 도구체계의 차이가 승패를 결정한 것이다.
물론 한국에 비해 일본의 탁월한 근대화성공은 시나리오 도입의 시간적 앞섬과 함께 일본문화의 특성인 무사숭배와 반(潘)이라는 중세 봉건영주제, 그리고 장인정신 등이 서구와 역사, 문화와 맞아떨어진 탓도 주효하였다. 일본은 1853뇬 6월 에도시대에 미국군함 페리제독이 이끄는 흑선에 의해 개항을 하고 명치유신으로 근대화에 앞장선다. 반면 한국은 서구에 의한 개항에는 저항하다가 불행하게도 일본에 의해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개항을 하게 되었지만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근대화는 크게 지연된다. 한국의 개항은 일본에 의한 2차적 개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서구에서 직접 수입한 1차적인 개항을 이룬 일본에 비해 근대화의 수행에 있어서 많은 왜곡과 불이익을 겪게 된다. 일제의 그 잔재는 바로 그것이다. 한국과 근대화는 결국 일제 식민통치기에 일본에 의해 '일본식'으로 추진되었다. 이러한 '일본식'은 서구시나리오를 정확히 해독하는 데에 부정확을 초래했으며 더욱이 토착화에 지체를 가져오는 요인이 되었다.

3.시나리오 연출법-절대적 관념주의
시나리오를 수입한 나라의 연출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실질성이고 다른 하나는 관념성이다. 그러나 대체로 관념성에 머물기 쉽다. 불행하게도 우리도 관념성에 치중하는 후자의 입장에 선다. 일본은 비록 시나리오를 수입하였지만 그것의 토착화를 통해 산업과 문화의 기층, 즉 '밑으로부터 올라온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에 성공한 반면 우리는 '위에서부터 내려가는 시나리오'에 실패하여 시나리오가 생성되기까지 그 자연환경적 요인(조건)과 역사적 요인(과정)을 간과하거나 생략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우리의 관념성은 바로 시나리오의 피상적 응용과 실험으로 연결되고 토착화는 거리가 멀게 된다. 일본은 비록 처음엔 시나리오 수입국이었지만 재빨리 일본식으로 번안하고 보세가공하여 수출국으로 변신을 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것이 '대일본제국'이라는 것이다.
시나리오 수입국은 언제나 시나리오의 철학적, 문화적 기반이 부실하여 쉽게 양식주의에 빠진다. 이것은 창의성이 결여되는 원인이 되는데 이에 비해 시나리오 생산국은 자신의 문화적 하부구조를 기반으로 상부구조인 문화적 시나리오를 생산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문화적 상하구조가 소통이 원활하게 되고 기존 시나리오(프로그램)가 맞지 않을 경우에는 시나리오를 수정하거나 변형하는 능력을 구비하는 것과 상반된다. 이는 분화의 상부구조인 시나리오만 수입한 나라는 하부구조와의 이반(離反)으로 이율배반과 왜곡에 빠져있으면서도 프로그램을 자체생산하지 못해 기존의 프로그램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합리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기존의 이데올로기는 기성품이지만 합리성은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방법을 가지는 것이다. 고기를 수입하는 것보다는 고기 잡는 도구(방법)을 수입하는 것이 훨씬 발전적인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독자적인 도구체계를 가지는데 소홀하다. 삼국시대까지는 그래도 외부에서 들어온 불교나 유교를 토착종교인 선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게 만들어 쓰는데 성공했으나 그 후 고려시대에는 대승불교를, 조선시대에는 주자학(유교)을 시나리오의 교본으로 삼아 연극을 해왔으며 대한민국에선 기독교와 민주주의를 다시 시나리오로 채택해 연극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시나리오를 자기화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4.극장국가와 시장국가의 정체
극장국가라는 말은 미국의 인류학자 클리포도 기어츠가 인도네시아의 한 섬인 '네가라'(Negara)를 현지연구하면서 처음 쓴 말이다. 극장국가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스스로 쓰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빌려와서 단지 연출하거나 연기하거나 번안, 각색하는 나라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극장국가에 대칭되는 개념이 시장국가이다. 시장국가는 물리적 힘이나 앞선 문화로 시장을 개척하는 국가를 말하는데 근대로 말하면 서구제국들이다. 극장국가라는 개념은 시장국가 군에 속하는 서구의 학자가 비서구 세계를 보는 틀이라는 점에서 매우 제국주의적 관점에 동조하는 것이긴 하다. 더욱이 한 인류학자가 자문화의 극장문화라는 틀로 본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문화를 주변문화로 보는 자기비하 혹은 자기비판의 함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자아비판을 하는 데는 요긴하다.

# 현실이 연극, 연극이 현실

극장국가는 일상적인 현실이 바로 극적인 것으로 구성되며 외국에서 들여온 시나리오의 연출이기 때문에 언제나 현실이 연극이고 연극이 현실이기도 하다. 극장국가의 특징은 더욱이 자신이 이러한 연출이나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극에 심취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오늘날 북한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하다. 북한사회는 아예 연극사회, 세트사회이다. 마치 영화나 연극의 세트장 같은 북한사회의 풍경을 우리는 종종 본다. 북한 사회는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연기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한사회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극장국가에서는 자연히 정치가 지배와 복종이라는 계급체계라기보다는 마치 연극의 배역처럼 느껴진다. 통치자와 피통치자는 적대적인 대립관계라기보다는 일종의 한시적으로 배역이 다를 뿐이다. 극장국가는 항상 시나리오를 빌려온 쪽 '저쪽세계'를 두고 동경한다. 저쪽세계에 대한 이해와 정보는 바로 여기서 엘리트의 조건이 되고 외부세계에서 들여오는 정보의 해석능력은 권력을 얻는 지름길이 된다. 저쪽세계는 때로는 시나리오를 제공하고 떨어져 있는 세계가 아니라 시나리오대로 잘 하고 있는지, 연극을 감독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때로는 관객이 되기도 할 것이다.
시장국가는 거래와 교역의 중심이 되고 대량생산되는 상품을 팔아야 하는 시장을 요구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가격(삶의 척도)을 정한다. 시장국가는 가격을 정하고 계속적으로 생산과 함께 시장을 지배하기 위한 부의 축적을 꾀한다. 그래서 시장국가는 산업의 생산품과 함께 제국의 휘하에 들어오는 신민(臣民)의 영혼을 관리하기 위한 선교단을 미리 보내 우호적으로 만들게 한다. 종교는 사후세계를 보장하는 고상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세계, 즉 시장의 거부감이나 저항을 사전에 부드럽게 하고 끝내 막는 구실을 한다
제국주의가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시장이야말로 인류가 평화적인 상태에서 전쟁이라는 게임을 의례처럼 하면서 선의의 생존경쟁을 벌이는 전장(戰場)인 것이다. 이제 남을 지배하는 제국주의보다는 남에게 자신을 잘 파는 제국주의가 바로 세계의 중심이 되는 국가이다. 지배와 피지배라는 전쟁의 질서가 제국주의를 이끌어왔으나 현대에 접어들어 파는 자와 사는 자라는 시장질서로 제국주의가 결정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시장질서야말로 민족주의와 그 허구가 잘 드러나는 실체이며 본질이다.

# 유통에 의해 권력결정

여기서 말하는 시장에서는 권력에 의해 유통이 결정되는 질서가 아니라 유통에 의해 권력이 결정되는 질서이다. 유통의 최고의 장은 바로 극장이며 시장은 궁극적으로 극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근대에서 중심국가는 시장국가이고 주변국가는 극장국가가 된다. 근대에 이르러 문명시나리오를 제일 먼저 쓴 지역은 역시 서구제국이었다. 한편 동양은 고대와 중세까지는 서양보다 앞서서 시나리오를 썼지만 근대에 이르러 완전히 서양에 압도당하여 서구제국의 식민지나 문화적 종속국으로 전락했다. 동양의 시나리오는 중심이동을 한 서양과 달리 문명의 중심을 중국에 두면서 나머지나라는 주변으로 존재케 했다. 그런데 중국이 서양의 침략에 의해 문화적 종주국의 자리를 빼앗김으로써 동양의 근대는 서양에 압도되고 만다.

5.고대 문명의 최초 시나리오
하지만 우리 한민족에게도 인류문명의 최초의 시나리오라는 측면에서 보면 결코 약소국이 아니다. 알타이문명의 문법인 '천지인(天地人)문법'으로 보면 우리 민족은 '인시나리오' 계열에 속한다. 문명은 자연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조건에 의해 선택의 폭을 제한 당한다. 따라서 기후와 산업에 따른 전지구적 시나리오를 도표를 통해 살펴보자.
(1)인(人,仁)시나리오: 농업지역/동양/중국(동이족)/문인(文人)중심/관리(官吏)/상대주의/모성적 역사(문화)관/인간학중심/유교
이 지역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을 중시하여 인간중심으로, 인간관계를 잘 설정하는 것이 삶을 잘 살아가는 요체가 된다. 농업이 잘 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식량과 의식주를 확보하는데는 어려움이 적었다. 인간관계가 삶의 성패를 좌우한다.
(2)천-지(天-地)시나리오: 반농반목지역-상업지역/중동,인도지역/수메르,인도/무인(武人)중심/장군(將軍),상인(商人)/절대-상대주의/부성-모성적 역사(문화)관/물리학-생물학중심/기독교-불교
이 지역은 농업이 부실하여 목축을 병행하여야 했으며 인간관계보다는 하늘을 절대적으로 신앙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중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됨으로 다른 쪽도 절대적으로 되기 쉽다.
(3)천(天)시나리오: 반농반목지역-산업지역/서양/로마(그리스)/상공인(商工人)중심/사업가/절대주의/부성적 역사(문화)관/물리학중심/기독교,이슬람교
이 지역은 하늘과 땅을 동시에 절대적으로 섬기다가 다시 하늘을 절대시하는 탈농업, 탈목축시대인 산업사회를 건설한다. 땅의 구속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인간의 절대성에 의해 삶의 성패가 좌우되었다.
'인(仁)시나리오' 지역은 하늘과 땅을 갈라놓을 필요가 없어 언제나 상대적이고 상보적인 관계로 설정하였으며 인간중심이었다. 반면 '천-지시나리오'에서 천과 지는 극단적인 것 같지만 서로 통하는 관계로 양자는 서로 가역반응을 하면서 '천지시나리오'에서 '천시나리오'와 '지시나리오'로 분화, 이동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천-지(天-地)시나리오'는 통합된 형태로 존재하기도 하고 '천(天)시나리오'와 '지(地)시나리오'로 나누어 질 수도 있다. 어쨌든 '천-지'는 한 세트로 서로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기독교와 불교는 한 뿌리이면서 상호보완적이다. 결국 인류문화는 '천-지 시나리오'와 '인시나리오'로 나뉘에지는데 천지는 인을, 인은 천지를 섭리적으로 이해할 때 오나성이 된다.

박정진(문화평론가-시인)


이 글은 일간신문 메트로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www.clubmetro.co.kr
|hit:3266|2003/01/15

Prev
 또다시 찾아온 트래픽오버 [3]
xacdo 2003/01/15 3266
Next
 ㅋㅋㅋㅋ 이런 이런~ 작도닷넷 왜이래~ [1]
Tonyx 2003/01/15 3266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 skin by 

작도닷넷 피드백의 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