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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 간 ‘프와그라’ - 맛에 대한 인간 집념의 산물
# 거위 간 ‘프와그라’ - 맛에 대한 인간 집념의 산물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에 종종 등장하는 게 백년 묵은 여우다. 나그네가 산길을 넘다 보면 어느 새 날은 어두워지고 멀리 불빛이 보이면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한다. 그런 집에는 꼭 아리따운 처녀가 있기 마련이다. 곧 구미호로 변할 여우다. 요 백년 묵은 여우가 나그네를 꼬여서 빼먹으려는 게 무엇이냐. 바로 애다. 애란 간이다. 간을 비롯한 내장들이 맛있긴 맛있나 보다. 사자가 먹이감을 잡으면 먼저 따뜻한 내장을 파먹는다.

그 먹다 남은 고기를, 즉 맛없는 질긴 살점을 먹는 건 초원의 청소부 하이에나다. 이 식성이 바로 사자와 하이에나의 차이다. 간은 고기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부위 중 하나다. 싱싱한 간은 특히 맛있다. 간이라는 부위는 특유의 향이 있다. 소금에만 찍어먹어도 싱싱한 쇠간은 제 맛이 난다. 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간은 프와그라(foie gras)다. 프와그라란 ‘기름진 간’이라는 뜻이다. 프와그라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맛있는 걸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집념을 엿볼 수 있다. 사료를 조절하면서 몸집에 비해 간만 비대하게 만든 것이 프와그라다.

억지로 사료를 밀어 넣는데 이 사료는 간만 집중적으로 키우기 위한 용도로 먹이는 것이다. 프랑스의 시골 마을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길거리에 “프와그라 팝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걸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집집마다 특유의 비법으로 거위나 오리의 간 키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프와그라는 기름지고 부드럽다. 힘줄을 잘 제거해버리면 입안에서 보들보들 녹는다. 그냥 날 거로 먹어도 되고, 구워먹기도 하고, 딱딱하게 떼린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맛의 달인’이라는 만화에 프와그라에 견주어 아귀의 간 얘기가 나오기에 궁금함을 못 이겨 먹어본 적이 있다. 서울에서 싱싱한 아귀 간을 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고 해서 부산에 있는 단골 집에 부탁해서 날짜를 받고 내려갔던 것이다.

아귀의 간은 싱싱함이 생명이라 아무 때나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갓 잡은 아귀에서 간을 빼내고, 소금만 올려놓아도 상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소금에만 살짝 찍어먹어도 바다의 싱그러움과 간의 육질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 상어 요리의 핵심도 간

보길도에서 상어 한 마리를 잡아먹은 적이 있는데 그 때도 맛의 핵심은 간이었다. 회는 질깃질깃해서 별 맛이 없었다. 삭스핀도 생 삭스핀은 먹을만 한 게 아니었다. 물에 불리고 말리는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맛있는 삭스핀이 만들어지는데 갓 잡은 상어의 지느러미는 머리털처럼 입안에서 엉키는 게 먹을 만 한 맛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가장 맛있는 건 콩알만한 간이었다. 아귀 간과 마찬가지로 입안에 넣으니 금새 녹아버리고 말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르쳐 주고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카우카소스 산상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인다. 제우스는 자신의 상징인 독수리를 보내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파먹게 하는 형벌을 내린다. 독수리가 파먹어도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인간의 간도 마찬가지다. 술을 너무 마셔서 무리를 하지 않는 이상 간은 꾸준히 스스로 해독하고 치유된다. 간의 상징성이란 게 이런 것일까. 오늘도 술을 마시느라 내 간은 부풀어오른다. 지방간이지만 내 간은 맛은 없을 것 같다.


글 / 고형욱 요리평론가
|hit:5072|200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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