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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대역 스턴트맨
그는 깊은 한숨과 함께 생활정보지를 내팽개쳤다.

"휴. 이거야 원."

벌써 1년이 넘었다. 위태롭게 버티던 직장에서도 짤린지 벌써 1년, 그 후로 직장을 구하기 위해 갖은 발품을 다 팔았지만, 그를 받아줄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차곡차곡 쌓인 빚은 어느새 만기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돌려막기도 한계가 있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다. 집에서 자기만 바라보고 있을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차라리 죽어버릴까."

죽는다고 해서 보험금이 제대로 나오기만 한다면, 차라리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하지만 요즘은 보험사도 만만치 않아서 자살을 잘 가려낸단 말이야. 결정적으로 그의 수중에는 그 하찮은 보험에 들만한 돈 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 어떻게든, 내 생명을 바쳐서라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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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영화사에서는 사망 장면에서 실제로 죽어주신 스턴트맨을 모집합니다.
모집: 0명 - 보수는 충분히 드림

그의 눈에, 생활정보지 한 켠에 실린 말도 안되는 광고문구가 들어왔다. 사망 대역 스턴트맨이라. 그의 머리속에는 이걸 해야 되나 말아야되나 하는 생각보다는, 도대체 보수가 얼마나 되길래 충분하다는 걸까 하는 생각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 * *

"그러니까, 그 대역을 정말, 꼭 써야 되냐구요."
"어쩔 수 없잖아. 컴퓨터 그래픽을 쓰기에는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해. 하지만 정말 중요한 장면이라고. 리얼리티를 살려야만 한단 말이야."

"즉, 사람이 컴퓨터보다 싸다는 얘기군요."
"그런 셈이지."

프로듀서의 말을 듣고, 감독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실감나는 살인 장면을 찍기 위해 실제로 사람을 죽이다니. 물론 돈은 덜 들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계획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진데다, 배우들이 연거푸 출연을 거부헀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는 70%를 찍어놓은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시 찍기 시작했고, 세트도 다시 만들어야 했다. 이대로는 영화가 끝나기 전에 파산할 것만 같다. 정말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 PPL(간접광고)도 닥치는대로 들여오고 있지만, 밑빠진 독처럼 촬영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너무 스펙타클한 영화를 기획했던게 잘못이라니까."
"이제 와서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아시잖아요."

"되돌릴 수 없다는 거?"
"예."

감독이 담배를 물고 고민하는 사이, 사망 대역으로 지원한 남자가 찾아왔다. 감독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 *

"이번 씬은 NG 없다는 거 알지?"

상대역 배우는 모르고 있었다. 자기 손에 들린 칼이 진짜라는 걸. 사실 이번 씬의 정체를 아는 건 감독과 프로듀서, 그리고 스턴트맨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NG가 없어요?"
"NG 없어, 없어."

배우는 실없이 웃었다. 긴장하는 건 스턴트맨 정도였다.

레디.

순간 느꼈다. 정말 인생이라는 건
이번 씬처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NG란 없는

액션.

스턴트라는 것을.

2005 04 29
|hit:2448|200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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