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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소다 판타지 1/6
크림 소다 판타지

제1회 - 김밥대마왕의 장
제2회 - 희야대마왕의 장
제3회 - 선탠대마왕의 장
제4회 - 알통대마왕의 장
제5회 - 몸빼대마왕의 장
제6회 - 복수의 장


제1회
김밥대마왕의 장


이 이야기는 '크림 소다'라는 이름을 가진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소개하자면 김희선알몸 패밀리와 싸우는 슈크림에 대한 이야기다. 하여간에 지금 중요한 것은 주인공인 '크림 소다'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그녀는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성이다. 이름은 크림 소다. 본명은 강초연이지만 크림 소다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나의 본명도 현경우지만 작도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잠깐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나의 페이버리트 칼라는 핑크, 화이트 핑크에요!"

크림 소다양의 발랄하고 깜찍한 목소리가 들리시는가. 물론 이것은 글이기 때문에 목소리 같은 것이 들릴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위의 대사에서 발랄하고 깜찍함을 느꼈다면 당신은 천재다. 아니면 당신은 바보다.

우리는 위의 대사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 크림 소다는 화이트 핑크를 제일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냐 하면 머리카락도 핑크, 눈썹도 핑크, 속눈썹도 핑크, 컨택트렌즈도 핑크, 마스카라도 핑크, 아이섀도도 핑크, 볼터치도 핑크, 립글로즈도 핑크, 귀걸이도 핑크, 목걸이도 핑크, 니트도 핑크, 팬츠도 핑크, 브래지어도 핑크, 팬티도 핑크, 구두도 핑크, 핸드백도 핑크, 핸드폰도 핑크, 심지어는 사랑스러운 그녀의 심장 색깔까지도 콩딱콩딱 두근거리는 화이트 핑크였다.

그도 그럴 것이 크림 소다는 핑크를 이 세상의 근원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어딜 봐도 잘 보면 그 안에 핑크가 내재되어 있지 않은가. 나무를 봐도, 건물을 봐도, 전화를 봐도 어딜 보나 핑크가 보일 것이다. 여러분도 크림 소다 양처럼 핑크색 컨택트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기 바란다. 정말로 핑크밖에 안 보인다.

크림 소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태초에 핑크가 있었는데, 이것이 화이트 핑크와 쇼킹 핑크로 나뉘면서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중 화이트 핑크는 땅으로 스며들어 인간이 되었고, 쇼킹 핑크는 하늘로 번져 노을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보며 막연한 노스탤지어를 가지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크림 소다는 화이트 핑크보다 쇼킹 핑크를 더 좋아하면서도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동경이야."라고 말하며 쇼킹 핑크를 포기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딸기셰이크는 좋아하면서 딸기는 싫어했다.

어쨌든 하여튼, 인간도 핑크고 하늘도 핑크고 이 세상은 전부 핑크에서 시작해서 핑크로 끝난다는 것이 크림 소다의 지론이었다. 화이트 핑크가 흙에 스며들어 핏줄이 되고 심장이 되고 입술이 되고 젖꼭지가 되고 항문이 되고 성기가 되어서 인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크림 소다는 젖꼭지도 핑크, 대음순도 핑크, 회음부도 핑크, 항문도 핑크다. 이를 위해 꾸준히 핑크 니플즈 크림을 발라온 것은 절대 비밀이다.

이쯤 되면 크림 소다가 남성의 정액과 여성의 질액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애초에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것부터 핑크를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것까지 다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일 뿐이지 않은가.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도 '크림 소다 판타지'인 것이고.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노래를 한 곡 들어보자.


김밥 - The 자두 -

(여자)
몇 십 년 동안 서로 달리 살아온 우리
달라도 한참 달라 너무 피곤해
영화도 나는 에로 넌 포르노
난 콘돔 너는 피임약

(남자)
그래도 우린 서로 통한 게 있어, 김밥
김밥을 좋아하잖아
언제나 김과 밥은 붙어산다고
너무나 부러워했지

(합창)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있을래
날 안아줘 날 안아줘
옆구리 터져버린 저 김밥처럼 내 가슴 터질 때까지


더 자두의 김밥을 들으셨다. 참 들으면 들을수록 선정적인 노래가 아닐 수 없다. 두껍고 길고 미끈미끈한 그 외형부터 시작해서, 안의 내용물도 희고 끈적끈적한 것이라니. 특히 '옆구리가 터졌다'는 표현은 콘돔이 터졌다는 은유적 표현 아닌가. 혹자는 '내 가슴 터질 때'를 실리콘 가슴이 터진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주장하기를, 그 표현은 제왕절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말이 맞는다면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도 정자가 난자에 착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에 신빙성은 한 층 더해진다.

하여튼 간에 이 김과 밥처럼 서로 철썩 달라붙어서 사는 신혼부부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슈 크림'(여자)과 '화이트 좀비'(남자)였다. 부부는 '태극 김밥'이라는 김밥 노점상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많고 많은 길거리 음식 중에서 왜 하필 인기없는 김밥을 선택했던 것일까? 그것은 겉으로는 까맣고 속으로는 하얗고, 다섯 가지 다채로운 내용물로 꽉꽉 채운 김밥이야말로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최고의 음식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무슨 군것질거리에 음양오행을 따지고 지랄이냐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렇게 넘겨버리기에 음양오행은 우리 주위에서 너무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색깔을 예로 들어 흑백으로 나누면 음양이요, 후레시맨처럼 빨강 파랑 초록 노랑 핑크로 나누면 오행이다. 물론 그레이스케일, RGB, CMYK 칼라처럼 두서너 가지 색깔만으로 모든 색깔을 완벽하게 나타낼 순 없다. 하지만 불과 몇 가지 색깔의 조합만으로 우리가 보고 느끼기에 충분한 수준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음양오행이란 것은, 몇 안 되는 요소가 대부분을 나타낼 수 있다는, 20%의 핵심부분이 전체의 80%를 좌지우지한다는 20/80 원칙의 동양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집 메뉴 중에 짜장면, 짬뽕, 탕수육, 군만두, 빼갈 다섯 가지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남자의 인생이 대입-군대-취직-결혼-자녀양육 다섯 단계로 볼 수 있는 거고 그런 이유고, 동방신기도 그래서 다섯 명이고, 김희선알몸 패밀리도 그래서 다섯 명인 거고, 김밥 속도 이런 연유로 단무지, 햄 계란, 당근, 시금치 다섯 가지인 것이다. 물론 시금치 대신 오이나 우엉을 넣을 수도 있고, 당근이나 계란이 빠질 수도 있고, 햄 대신 쇠고기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들어가느냐에 상관없이 합치면 다섯 가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슈 크림과 화이트 좀비 부부도 이런 이유로 음양오행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하는 김밥을 사랑했고, 이처럼 완벽한 김밥의 아름다움이 쿠킹호일이라는 포장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너무 싫었다. 그래서 부부는 어떻게 하면 김밥을 더욱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김밥의 노출이 필요하다고 - 즉 김밥의 선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온 것이 콘돔이었다.

콘돔 김밥. 길을 가던 사람들은 콘돔으로 포장한 김밥을 보고 기겁했다. 물론 콘돔으로 김밥을 포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도저히 아니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슬금슬금 피해가자 안되겠다 싶어, 부부는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 홍보가 필요하다고 판단,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노래는 더 자두의 김밥이었다. 화이트 좀비의 기타 반주에 맞춰 슈 크림의 귀엽고 앙증맞은 율동으로 노래를 불렀다. 후일 사람들이 기억하기로 그 때 슈크림의 율동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옥을 느끼게 할 만큼 충격적으로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증언을 들어보자. "길을 가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노래가 들리는 거에요. 그래서 뭔가 해서 흘끗 쳐다봤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간 엄청 귀엽고 예쁜 여자가 지랄발광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그 다음에 어쩐지 정신을 잃었던 것 같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저도 모르게 김밥으로 포장한 김밥을 잔뜩 사버린 후더라구요."

최면술을 쓴 건지, 마약을 공기 중에 뿌린 건지, 귀신에 홀렸는지, 사람들은 미친 듯 콘돔 김밥을 사먹었고, 화이트 좀비의 시기 적절한 언론 플레이로 전 매스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전 세계적인 이슈로 급부상했다. 김밥을 말다 말다 못해 공장을 차릴까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순조롭기만 하던 콘돔 김밥에도 예상치 못한 복병이 숨어있었으니, "콘돔 김밥에 정액이 묻어있다"는 KBS 9시 뉴스의 보도가 그것이었다.

콘돔 김밥에 정액이 묻어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러브호텔에서 쓰고 버린 콘돔을 재활용해서 쓰는 것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잘 닦아서 쓴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좀 덜 닦은 콘돔도 생기기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손님은 정액이 묻은 김밥을 먹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정액을 먹는 것이 아니다. 생선 정소도 국거리로 먹지 않는가.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 "불결하다"는 KBS의 평가였다.

정액이 묻은 김밥을 먹는 것은 불결하다, 이것이 믿을 만한 얼굴의 KBS 앵커의 입에서 나왔다. 그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정액 묻은 김밥을 먹던 손님들도 그 보도가 나간 후로, 아니 어떻게 정액 묻은 김밥을 먹을 수 있냐며 진저리를 내기 시작했다. 단 하루만에 손님들의 발길은 뚝 끊겼고, 화이트 좀비는 이 사건을 무마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뒷돈으로 입막음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신혼부부, 한창 좋을 때. 그런 시기에 슈 크림은 외로이 가게를 지키며 손님이 돌아오기를, 남편이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밤은 깊어서 길에는 손님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보지는 근질근질해 죽겠고, 남편은 전화도 안 받고. 슈 크림은 그저 무작정 기다릴 뿐이었다. 행여나 올 손님을, 혹은 오늘도 늦게 올 남편을, 아니 그보다도 이 근질근질한 보지를 쑤셔 줄 누군가를.

파리 날리는 김밥을 무심코 바라보니, 정액이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정액은 어떤 남자의 정액일까? 아마도 우리 남편꺼겠지. 요즘에는 김밥이 하도 안 나가서 굳이 콘돔을 구하러 러브호텔까지 가지도 않으니까. 어쩐지 귀엽더라. 후훗. 슈 크림은 장난스럽게 콘돔 김밥을 입에 물고 그 위에 묻어있는 정액을 살살 빨았다. 남편은 항상 정액을 마시라고 요구했지. 짓궂게도. 이렇게 라도 마셔주면 좋아할까? 슈 크림은 열심히 빨았다. 그러다가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지에 쑤셔 보았다.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남편을 생각해서라도 조금 힘을 내볼까? 탄력을 받아 열심히 해보는데 누군가 가게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남편이었다.

화이트 좀비는 상황이 잘 파악되지 않았다. 일단 눈에 들어온 것은 놀란 아내의 표정이었고, 늦게 들어온 변명을 하려는 찰나 눈에 들어온 것은 콘돔 김밥으로 자위를 하던 아내의 보지였다. 남편은 분노했고, 아내는 무서워했다. 남편은 콘돔 김밥을 손에 들고 아내를 마구 때리며 말했다. 남편은 밖에서 좆빠지게 고생하는데 너는 안에서 좆나게 뭐하는 짓이냐. 그렇게 김밥이랑 하고 싶으냐. 좋다. 니 소원대로 해 주마. 남편은 아내의 보지에 김밥을 억지로 쑤셔 넣었다. 아내는 아파했지만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시간이 지나자 도저히 들어갈 것 같지 않던 김밥도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갔다. 정말 거짓말처럼 쏙 들어갔다.

마침 그때, 정말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왔다. 슈 크림은 황급히 앞치마를 내리고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손님은 조금 당황했지만, 젊은 부부가 늦은 밤에 가게에서 불장난을 했나 싶어서 모르는 척 했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보지물은 별개로 하고 말이다. 슈 크림은 조마조마하며 화이트 좀비의 눈치를 보았다. 손님은 어서 빨리 김밥이나 사서 나가려고 했다.

"저… 김밥 있어요?"
"아유, 물론이죠. 이런이런 다 식은 것 밖에 없네. 어디 따뜻한 거 없나?"

화이트 좀비는 슈 크림에게 따뜻한 김밥이 없냐고 눈치를 줬다. 슈 크림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따뜻한 김밥은 보지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남편만 바라보며 가슴을 졸이고 있는 아내를 보았다. 순한 애완견 같은 표정이었다. 하하, 이거 재미있는걸? 정말 재미있네. 모든 것은 나의 세 치 혀에 달려 있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어보라구.
"운이 좋으시네요, 손님. 마침 따끈따끈한 김밥이 딱 하나 남아있더랍니다. 헤헤."

화이트 좀비는 슈 크림의 앞치마를 들추고 체온으로 데워진 콘돔 김밥을 손님의 코앞에 내밀었다.
"자, 시큼한 냄새도 일품이죠. 갓 데운 따끈따끈한 콘돔 김밥!"

슈 크림은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금도 반항할 수 없었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남편에게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화이트 좀비는 손님에게 귓속말로 단돈 3만원만 달라고 했고, 손님은 얼떨결에 무려 3만원이나 내고 김밥을 샀다. 슈 크림이 한창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죽어야 할지 도대체 뭘 어떡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 화이트 좀비는 헐거워진 보지 속으로 남은 김밥을 3개나 더 밀어 넣었다. 그리고 길거리로 끌고 나가 김밥을 팔았다. "네년의 죄를 씻을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그렇게 콘돔 김밥의 출장판매는 시작되었다.

어- 취한다, 딸꾹. 너무 늦었는걸. 사내는 비를 쫄딱 맞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 사내를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길모퉁이에서 우산을 쓴 남녀가 서 있었다. 비쩍 마르고 키가 큰 남자와 핑크색으로 도배한 여자였다. 남자는 능청스럽게 다가와 무슨 김밥인가를 권했다. 여자는 비장한 표정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손님, 손을 내밀어보세요." 화이트 좀비는 슈 크림의 어깨에 다정하게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으로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러면 슈 크림은 손님의 손 위에 콘돔 김밥을 살포시 낳았다. 이른바 '김밥 낳기 쇼'였다. 손님은 귀신에 홀린 듯 3만원을 내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슈 크림은 두려웠지만 화이트 좀비만 믿을 뿐이었다. 배가 너무 아파서 걷기 힘들 때면 화이트 좀비가 굳은살이 박힌 왼손끝으로 다정하게 클리토리스를 문질러주곤 했다. 그러면 이상하게 견딜 수 있었다.

하루의 마무리는 섹스였다. 남편의 팬티를 내릴 때마다 슈 크림은 감탄했다. 오 마이 갓 땡큐 아멘. 어쩜 이렇게 마른 몸에 어쩜 이렇게 크고 훌륭한 것이 붙어있다니! 하늘의 축복이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크고 훌륭한 고추를 내려주셔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솔직히 남자의 팬티를 일일이 내려 볼 수도 없는 일이고, 남편의 고추 크기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대박이 걸릴 줄이야. 정력이나 테크닉은 둘째 치고 일단 시각적인 포만감이 대단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합. 냠냠 쩝쩝. 화이트 좀비는 여자가 남자 팬티를 벗기는 건 좀 아닌가 싶었지만 뭐 어때, 귀엽잖아.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행복한 부부생활은 짭짤한 수익을 바탕으로 계속될 수 있었다. 언론사에 리베이트도 충분히 먹인 탓에 태극 김밥의 인기도 예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밥은 잘 팔렸다. 낮에는 가게에서, 밤에는 뒷골목에서. 이제는 7줄까지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탄력을 잃지 않는 슈 크림의 보지에 화이트 좀비는 감탄했다. 오 마이 갓 땡큐 아멘. 하느님 감사합니다. 데쓰메탈 동아리에서 기타와 보컬로 만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화이트 좀비는 그녀를 만난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김밥을 팔고 있지만, 언젠가는 음악을 할 날이 오겠지. 화이트 좀비는 슈 크림의 손을 말없이 꽉 잡았다. 그러면 슈 크림은 반사적으로 웃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슈 크림의 생리가 끊겼다. 임신도 아닌데 세 달이나 생리가 오지 않았다. 놀라서 병원을 찾아갔더니 의사가 화를 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신 겁니까?"
"네?"
"자궁, 나팔관까지 완전 걸레가 됐어요. 창녀도 이렇진 않을 겁니다. 도대체 여성분께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의사는 내던지듯 X레이 필름을 보여줬다. 화이트 좀비는 잘은 모르겠지만 의사가 화가 날 만도 한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상처에 베이고 찢겨 생리는커녕 임신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내시경으로 확인해보니 세균감염 및 궤양이 심해서 수술로 다 잘라내야 할 정도였다. 돌이킬 수 없을 지경이었다. 슈 크림의 여자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끝이었다. 슈 크림은 울었다.

이럴 때 남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자가 울 때 남자는 여자를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까? 제일 좋은 방법은 실컷 울게 해주는 것이다. 여자의 감정에 동조하면서, 몸 속에 숙변처럼 남아있는 슬픔을 모조리 눈물로 만들어 배설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물론 운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건 없지만, 기분은 좋아지지 않는가. 돈, 명예,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기분 좋게 사는 것이다. 차갑게 식은 눈물을 닦고 부은 눈으로 살짝 웃는 그녀를 보라. 겨우 이런 보잘것없는 미소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고 해서 남자들이여, 여자를 웃길 생각은 하지 마시라. 여자는 슬플 때 울고 싶어하지, 슬플 때도 웃고 싶어하진 않는다. 여자가 원하는 건 감정의 표출이요, 감정의 억제가 아니다. 남자들처럼 평생 3번만 울어야 하네 어쩌네 하면서 슬픔을 억누르고, 슬픔에 무뎌지고, 슬픔이라는 감정을 몸에서 거세해야 할 필요가 여자들에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운다고 해서 "울지 마, 바보야. 울면 어떡하니? 웃으며 살아야지. 슬프다고 해서 울면 어떡해. 자, 뚝!" 하는 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화이트 좀비는 슈 크림을 어떻게 달래줬을까. 애초에 데쓰메탈 하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이, 여자를 모른다.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데쓰메탈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그저 여자=창녀 란 생각 뿐이다. 아니 그냥 "울지 마" 정도만 했어도 중간은 갔을 텐데. 쯧쯧. 화이트 좀비가 어떡했냐 하면, 이제 피임할 필요가 없다며 얼씨구나 닥치는 대로 콘돔 없이 섹스를 했을 뿐만이 아니라, 손님들에게 매춘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임신도 안 되는데 뭘 그리 아까워하느냐. 너도 섹스해서 좋고 나도 돈 벌어서 좋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논리였다. 화이트 좀비의 개방적인 논리에 박수를 보낼 사람도 간혹 있겠다마는, 그러다가 화이트 좀비처럼 자다가 칼 맞고 죽는 수가 있다. 그렇게 화이트 좀비는 죽었다. 가여운 것. 그저 슬퍼하는 슈 크림이 안쓰러워서, 슬픔을 잊고 웃게 만들려고 했던 것뿐인데.

하지만 슈 크림의 입장에서, 사랑이 없는 섹스는 고통일 뿐이었다. 사랑이 식은 거지 뭐. 남편의 사랑 하나만 믿고 모든 것을 견뎌왔는데, 이젠 나를 버리고 다른 남자들에게 던져버리다니. 그래, 내가 지금까지 착각했던 모양이구나.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남편의 가슴에 칼을 꽂은 것이었다. 김밥 썰던 칼로 말이다.

한편, 그렇게 죽은 화이트 좀비는 또 슈 크림을 생각하겠는가? 이년이 기껏 웃게 해주려고 남의 남자랑 자는 것도 눈감아줬더니, 이젠 남의 가슴에 칼을 꽂아?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배신이야, 배신. 화이트 좀비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다음 생에서 꼭 복수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화이트 좀비는 김밥대마왕으로 환생했다.

김밥대마왕은 핑크색 여자만 보면 김밥으로 보지를 쑤시고 다녔다. 김밥이랑 하니까 좋디? 그렇게 좋디? 씨발년아 닥치고 김밥이나 먹어라. 빨간 김밥, 파란 김밥, 찢어진 김밥… 내장이 터지도록 김밥을 처박았다. 수많은 여인들이 계속해서 희생됐다. 명백히, 슈 크림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한편 세상에 홀로 남겨진 슈 크림은 모든 것을 접고 묵묵히 김밥을 팔았다. 콘돔 김밥은 남편 아이디어잖아. 이젠 내 차례다. 핑크색 절인 생강, 핑크색 게맛살, 핑크색 당근, 핑크색 햄, 핑크색 계란, 핑크색 김, 핑크색 밥. 핑크 김밥이었다. 물론 잘 팔리지는 않았다. 가게는 텅 비었다. 홀로 부르는 더 자두의 김밥 노래는 외로웠다. 네가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일까. 그래서 넌 둘이 될 수 있었던 거야. 내가 죽인 하나, 그리고 지옥에서 돌아온 나머지 하나. 그렇게 슈 크림은 남편과 재회했다.

남편은 태연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와 김밥 한 줄을 시켰다. 김밥을 썰면서 슈 크림은 달라진 남편의 모습을 조목조목 관찰했다. 남편은 확실히 달라졌다. 충혈된 눈 밑으로 깊게 패인 다크서클. 대마왕답게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게 고추 크기와 비례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슈 크림은 핑크 김밥 한 줄과 단무지를 서빙하며 말했다.

"이야, 오랜만이야. 멋있어졌네? 역시 대마왕은 대마왕인가봐? 팬이 될 뻔했어!"
"그럼! 대마왕이 얼마나 되기 힘든데. 내가 지옥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면 놀래 자빠질걸?"

"그나저나 이거, 핑크 김밥! 어때?"
"먹어보고. 음. 야, 이러니까 손님이 안 오지. 좀 맛있게 좀 만들어봐라. 콘돔 김밥처럼."

"흥, 웃기셔. 그 말 하려고 지옥에서 여기까지 돌아온 거야?"
"물론 아니지. 너도 알잖아? 널 죽이러 왔다는 걸."

슈 크림은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올 것이 왔구나. 나 정말이지, 남편을 죽이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순간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려왔어. 그래서 지금 너무 기뻐. 흥분돼.

"하아, 흥분된다. 니가 날 죽인다니."
"나도 흥분돼. 어떻게 죽여야 좋을까? 나는 김밥대마왕이니까 김밥으로 쑤셔 죽일까, 아니면 복수의 의미로 네가 했던 것처럼 가슴에 칼을 꽂아 죽일까. 참 고민되더라. 그래서 말이지,"

김밥 대마왕은 가슴에서 콘돔 김밥을 꺼내더니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며 주문을 외웠다. 그랬더니 김밥이 긴 칼로 변했다. 슈 크림은 감탄했다.

"멋있다!"
"봤지? 이게 대마왕의 능력이라는 거야. 김밥을 마음대로 다루고 변형시키는 김밥대마왕! 이걸로 니 보지부터 목구멍까지 쑤셔주려고 하는데, 니 생각은 어때? 이거면 김밥으로도 죽이고, 칼로도 죽이는 셈이잖아. 일석이조지. 정말 좋은 생각이지, 그치?"

"참, 애썼네. 어지간히 죽이고 싶었나보네, 당신."
"그럼! 그 누구도 아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나를 배신한, 내 아낸걸."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슈 크림은 얼굴에 웃음을 걷어내고 말했다.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왔다.

"마지막으로 하나는 확실히 하고 가자. 너, 나를 정말 사랑했니?"
"뭐?"

"나를 사랑했다면 모든 걸 용서해줄게. 너 정말 나를 사랑하긴 한 거니? 그런 거니?"

화이트 좀비는 대답대신, 오랜 기타연주로 굳은 살이 깊게 패인 왼손 끝으로 슈 크림의 클리토리스를, 여느 때처럼 다정하게 문질렀다. 익숙한 감촉이었다. 남편은 환생해서 복수를 하는 와중에도 기타를 놓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전하구만. 슈 크림은 마음이 놓였다. 남편은 여전했다. 김밥이 보지 속을 파고들면서 자지 모양을 거쳐 날카로운 칼로 변해갈때까지도, 슈 크림은 남편을 믿고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남편의 마지막 대답 하나로 모든 것을 뒤엎고 반전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밥대마왕은 슈 크림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분명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아니.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았어. 단 한 순간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밥은 슈 크림의 몸을 관통했다. 선명한 핑크색 피. 슈 크림은 괴로워했다. 김밥대마왕은 슈 크림의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슈 크림을 상처 입히고 싶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피를 토하며 느리게 죽어 가는 슈 크림을 곁에 두고 김밥대마왕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만들어준 김밥을 마저 먹었다. 한 입 한 입 먹으면서 입안에 퍼지는 맛없는 그녀의 김밥은 그녀의 많은 것을 추억하게 했다. 슈 크림은 쉽게 죽지 않았다. 오래도록 괴로워하며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힌 마지막 한 마디를 되새김질했다. 그런 슈 크림을 김밥대마왕은 느긋하게 감상하며 생각했다. 이 정도 원한이라면 틀림없이 환생하겠지. 그래서 나에게 복수하겠지. 하지만 그 복수는 반드시 실패할거야. 왜냐하면 나는 대마왕이니까. 아무리 환생을 되풀이해도 너는 나를 절대로 죽일 수 없어. 인간으로서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는 거야. 가엽게도 영원히 괴로워하겠지.

그런 슈 크림이 불쌍해서 김밥대마왕은 울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그의 몸에서 없어진지 오래였다.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숨이 끊어져가면서도 마지막 힘을 다해서 복수의 감정을 불태우는 슈 크림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김밥대마왕은 슈 크림의 손에 죽고 싶었다. 슈 크림에게 자신의 진심을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대마왕은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고 마음대로 진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 그는 대마왕이었다. 어느 순간에도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 악한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김밥대마왕은 세상에게 가장 잔혹한 눈빛으로 죽어 가는 연인을 배웅했다.

2005 04 15
|hit:3936|200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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