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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소다 판타지 1/6 (수정)
크림 소다 판타지

제1회 - 김밥대마왕의 장
제2회 - 희야대마왕의 장
제3회 - 선탠대마왕의 장
제4회 - 알통대마왕의 장
제5회 - 몸빼대마왕의 장
제6회 - 복수의 장

xacdo 씀

제1회
김밥대마왕의 장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크림 소다’라고 하는,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성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아름다운 여성의 잔인한 복수극이다. 하여간에 지금 중요한 것은 도대체 ‘크림 소다’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그녀는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성이다. 이름은 크림 소다. 본명은 강초연이지만 크림 소다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나의 본명도 현경우지만 작도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잠깐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나의 페이버리트 칼라는 핑크, 화이트 핑크에요!”

크림 소다양의 깜찍하고 발랄한 목소리가 들리시는가? 물론 이것은 글이기 때문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위의 대사에서 깜찍하고 발랄함을 느꼈다면 당신은 천재다. 아니면 당신은 바보다.

우리는 위의 대사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 크림 소다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화이트 핑크다. 화이트 핑크를 얼마나 좋아하냐 하면, 머리카락도 핑크, 눈썹도 핑크, 속눈썹도 핑크, 마스카라도 핑크, 컨택트렌즈도 핑크, 아이섀도도 핑크, 립글로즈도 핑크, 귀걸이도 핑크, 볼터치도 핑크, 목걸이도 핑크, 니트도 핑크, 팬츠도 핑크, 브래지어도 핑크, 팬티도 핑크, 구두도 핑크, 핸드백도 핑크, 핸드폰도 핑크, 심지어는 사랑스러운 그녀의 심장 색깔까지 콩딱콩딱 두근거리는 화이트 핑크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 화이트 핑크를 좋아하는 걸까? 그것은 크림 소다가 핑크를 이 세상의 근원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크림 소다는 세상 만물에 핑크가 내재하고 있다는 논리를 폈다. 사무용품점에 가 봐도 핑크는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색상이며, 인터넷 서핑을 5분만 해봐도 여지없이 핑크색 페이지를 만날 것이며, 들판에 만발한 꽃도 핑크색이 단연 돋보이며, 핑크색으로 물든 나무 하며, 핑크색 구름 하며, 핑크색 건물 하며… 세상 어디를 바라봐도 핑크가 빠지지 않는다. 여러분도 크림 소다처럼 핑크색 컨택트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기 바란다. 정말로 핑크밖에 안 보인다.

크림 소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태초에 핑크가 있었는데, 이것이 화이트 핑크와 쇼킹 핑크로 나뉘면서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중에 화이트 핑크는 땅으로 스며들어 인간이 되었고, 쇼킹 핑크는 하늘로 번져 노을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보며 막연한 노스탤지어를 품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크림 소다는 쇼킹 핑크보다 화이트 핑크를 더 좋아하면서도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동경이야.” 라고 말하며 쇼킹 핑크를 포기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딸기 셰이크는 좋아하면서 딸기는 싫어했다.

어쨌든 하여튼 아무튼 간에, 인간도 핑크고 하늘도 핑크고 이 세상은 전부 핑크에서 시작해서 핑크로 끝난다는 이야기였다. 화이트 핑크가 흙에 스며들어 핏줄이 되고 심장이 되고 입술이 되고 젖꼭지가 되고 항문이 되고 성기가 되어서 인간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크림 소다는 젖꼭지도 핑크, 대음순도 핑크, 회음부도 핑크, 항문도 핑크다. 이를 위해 꾸준히 핑크 니플즈 크림을 발라온 것은 절대 비밀이다.

이쯤 되면 크림 소다가 남성의 정액과 여성의 질액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애초에 20대 초반의 여성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핑크로 온 몸을 도배한다는 것 까지, 다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창녀 캐릭터일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크림 소다 판타지’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 노래를 한 곡 들어보자.

김밥 - The 자두 -

(여자)
몇 십 년 동안 서로 달리 살아온 우리
달라도 한참 달라 너무 피곤해
영화도 나는 에로 넌 포르노
난 콘돔 너는 피임약

(남자)
그래도 우린 서로 통한 게 있어, 김밥
김밥을 좋아하잖아
언제나 김과 밥은 붙어산다고
너무나 부러워했지

(합창)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있을래
날 안아줘 날 안아줘
옆구리 터져버린 저 김밥처럼 내 가슴 터질 때까지

더 자두의 김밥을 들으셨다. 참, 들으면 들을수록 선정적인 노래가 아닐 수 없다. 굵고 길고 미끈미끈한 그 외형부터 시작해서, 안의 내용물도 풀처럼 희고 끈적끈적하다니. 특히 ‘옆구리가 터졌다’는 표현은 콘돔이 터져서 피임에 실패했다는 결정적인 비유 아닌가? 혹자는 ‘내 가슴 터질 때’를 실리콘 가슴이 터진 것으로 해석하지만, 그 부분은 제왕절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을 정자가 난자에 착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여튼 어쨌든 아무튼 간에, 이 김과 밥처럼 서로 철썩 달라붙어서 사는 신혼부부가 있었으니, ‘슈 크림’(여자)과 ‘화이트 좀비’(남자)였다. 이 부부는 『태극 김밥』이라는 김밥 노점상을 하고 있었다. 왜 하필 그 많고 많은 노점 음식 중에서 굳이 인기 없는 김밥을 선택했던 걸까? 그 이유는, 겉으로는 까맣고 속으로는 하얗고, 다섯 가지 다채로운 내용물로 꽉꽉 채운 김밥이야말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을 상징하는 최고의 음식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무슨 군것질거리에 음양오행을 따지고 지랄이냐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렇게 넘겨버리기에 음양오행은 우리의 삶 속에서 너무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색깔을 예로 들면, 흑백으로 나누면 음양이요, 후레시맨처럼 빨강/파랑/초록/노랑/핑크로 나누면 오행이다. 그레이스케일(2), RGB(3), CMYK(4) 칼라처럼, 불과 몇 가지 색깔의 조합으로도 우리가 보고 느끼기에 충분한 색을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음양오행은, 몇 안 되는 핵심요소가 대부분을 좌지우지한다는 『20/80 원칙』의 동양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집 메뉴 중에 짜장면, 짬뽕, 탕수육, 군만두, 빼갈 다섯 가지가 메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남자의 인생도 대입→군대→취직→결혼→자녀양육 다섯 단계로 볼 수 있는 거고, 동방신기도 그래서 다섯 명이고, 김희선알몸 패밀리도 마찬가지 이유로 다섯 명인 거고, 김밥 속도 이런 깊은 뜻을 담아 단무지, 햄, 계란, 당근, 시금치 다섯 가지인 것이다. 물론 시금치 대신 오이나 우엉을 넣을 수도 있고, 당근이나 계란이 빠질 수도 있고, 햄 대신 쇠고기나 참치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들어가느냐에 상관없이 합치면 다섯 가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슈 크림과 화이트 좀비 부부는 이런 이유로 음양오행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하는 김밥을 사랑했다. 하지만 이처럼 완벽한 김밥의 아름다움이 쿠킹호일이라는 포장지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너무 싫었다. 그래서 부부는 어떻게 하면 김밥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김밥의 노출이 필요하다고 - 즉 김밥의 선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온 것이 콘돔이었다.

콘돔 김밥. 이 말도 안 되는 음식을 길거리에서 팔고 있자니, 정작 부끄러워하는 쪽은 손님이었다. 물론, 콘돔으로 김밥을 포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도저히 아니었다. 손님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슬금슬금 피해가자, 안되겠다 싶어 부부는 홍보용 노래를 불렀다. 자두의 김밥이었다. 화이트 좀비가 기타를 치고 슈 크림이 노래를 부르며 귀엽고 앙증맞은 율동을 했다. 후일 사람들이 기억하기로 그 때 슈 크림의 율동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옥을 느끼게 할 만큼 충격적으로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익명의 증언을 들어보자. “(음성변조) 길을 가는데 어디선가 많이 듣던 노래가 들리는 거에요. 그래서 뭔가 해서 가봤더니, 잘은 모르겠는데 하여가 엄청 귀엽고 예쁜 여자가 지랄발광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거에요. 그 다음에 필름이 끊겼고, 정신을 차려보니 콘돔으로 포장한 김밥을 잔뜩 사버린 후더라구요.”

필름이 끊겨가며, 사람들은 미친 듯 콘돔 김밥을 사먹었다. 매스컴에서는 경쟁적으로 콘돔 김밥을 보도했고, 일단 콘돔 김밥이 나왔다 하면 장르를 불문하고 시청률 대박이 터졌다. 아침 교양프로건, 휴먼 다큐멘터리건, 심야 토크쇼건, TV 토론이건, 연예오락프로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돔 김밥이라는 소재에, 두 부부의 현란한 말솜씨가 더해지니 금상첨화라. 콘돔 김밥은 대박을 쳤다.

하지만 KBS만은 유일하게 콘돔 김밥에 부정적이었다. 나름대로 공영 방송이기도 했고, 나이 많은 윗분들께서 콘돔 김밥 같은 상스러운 것은 꼴 보기 싫어하는 탓도 있었다. 그래서 윗분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아랫분들은 눈에 불을 켜고 콘돔 김밥의 꼬투리를 잡고 늘어졌고, 그 결과로 “콘돔 김밥에 정액이 묻어있다”는 KBS 9시 뉴스 특종 보도가 나왔다.

콘돔 김밥에 정액이 묻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러브호텔에서 쓰고 버린 콘돔을 재활용하는 것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잘 닦아서 쓴다고 하지만 솔직히 좀 덜 닦을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손님은 정액을 먹는 셈이다. 문제는 정액을 먹는 것이 아니다. 이리(생선 정소, 魚白)도 국거리로 먹지 않는가.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 공영 방송인 KBS의 믿음직한 앵커의 입에서 “불결하다”는 평가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정액을 먹는 것을 불결하다. KBS 뉴스에서 그랬다더라. 입소문이 퍼지면서, 콘돔 김밥은 전혀 팔리지 않았다. 화이트 좀비가 아무리 뒷돈을 먹이고 반박 보도를 내고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해도, 콘돔 김밥은 전혀 팔리지 않았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신혼부부, 서로의 몸을 간절하게 원하는 시기. 슈 크림은 외로이 가게를 지키며 혹시라도 돌아올 손님을, 그리고 혹시라도 돌아올 남편을 기다렸다. 밤이 깊었네. 방황하며 춤을 추는 불빛들. 이 밤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 벌써 새벽인데 아직도 혼자네요. 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남편은 전화도 안 받고. 노점상이라 가게를 혼자 닫을 수도 없는데. 그저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이 근질근질한 보지를 쑤셔 줄 누군가를.

오늘 만든 김밥은 벌써 쭈글쭈글하게 말라 비틀어졌다. 그 위로 파리 한마리가 날아와서 콘돔 너머 김밥을 먹어보려고 한참 애를 쓰다가 미끄러져 날아가 버렸다. 콘돔 비닐 안으로 정액이 보였다. 저건 누구껄까? 아마도 남편꺼겠지. 어쩐지 귀엽더라. 후훗. 요즘엔 김밥이 하도 안 나가서, 굳이 러브호텔까지 콘돔을 구하러 가지도 않으니까. 우리가 쓰는 콘돔만으로도 충분하지. 사람들이 알면 기겁할거야. 도대체 하루에 몇 번을 하는 거냐고. 하하.

슈 크림은 장난스럽게 콘돔 김밥을 입에 물고 살살 빨았다. 이렇게 빨아주면, 남편은 항상 정액을 마시라고 요구했지. 짓궂게도. 이렇게라도 마셔주면 좋아할까? 슈 크림은 열심히 빨았다. 그러다가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지에 넣어보았다.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남편을 생각해서 한창 탄력을 받은 참에, 남편이 돌아왔다.

화이트 좀비는 미안한 마음에 늦게 들어온 변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콘돔 김밥을 보지에 쑤셔 넣고 있었다. 남편은 분노했고, 아내는 무서웠다. 남편은 콘돔 김밥으로 아내를 마구 때렸다. 남편은 밖에서 좆빠지게 고생하는데, 너는 안에서 좆나게 뭐하는 짓이냐. 그렇게 김밥이랑 하고 싶으냐. 좋다. 니 소원대로 해 주마. 남편은 아내의 보지에 김밥을 억지로 쑤셔 넣었다. 아내는 아파했지만 남편은 무시했다. 시간이 지나자 도저히 들어갈 것 같지 않던 김밥이 쏙 들어갔다. 정말 거짓말처럼 쏙 들어갔다.

바로 이 때,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오셨다. 슈 크림은 황급히 앞치마를 내렸다. 화이트 좀비는 헛기침을 하며 손님을 받았다. 손님은 조금 당황했지만, 젊은 부부가 오밤중에 한 판 했었나보다 넘겨짚고, 모르는 척 했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보지물은 별개로 하고 말이다. 슈 크림은 조마조마하며 화이트 좀비의 눈치를 살폈다. 손님은 어서 빨리 김밥이나 사가려고 했다. 그런데 김밥이 다 식어서 말라비틀어진 것밖에 없었다.

“저… 김밥이 이것밖에 없어요?”

화이트 좀비는 슈 크림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슈 크림은 고개를 저으며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딱 하나 남은 따뜻한 김밥은 슈 크림의 보지 속에 들어가 있었다. 아내는 겁에 질린 애완견 같은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봤다. 하하, 이거 재미있는걸?

“손님, 운이 좋으십니다. 마침 따끈따끈한 김밥이 딱 하나 남았는데.”

화이트 좀비는 슈 크림의 앞치마를 들추고 난폭하게 보지를 쑤셨다. 그러자 그 안에서 체온으로 데워진 콘돔 김밥이 불쑥 나왔다. 화이트 좀비는 손님의 코앞에 콘돔 김밥을 내밀었다.

“자, 시큼한 냄새도 일품이죠!”

슈 크림은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금도 반항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화이트 좀비는 손님에게 귓속말로 「단돈 3만원」만 달라고 했고, 손님은 얼떨결에 「무려 3만원」이나 내고 김밥을 샀다. 슈 크림이 한창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죽어야 할지 도대체 뭘 어떡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화이트 좀비는 헐거워진 보지 속으로 남은 김밥을 꾸역꾸역 더 밀어 처넣고 밖으로 끌고 나가 김밥을 팔았다. “네년의 죄를 씻을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그렇게 콘돔 김밥의 출장판매는 시작되었다.

어~ 취한다, 딸꾹. 너무 늦었는걸. 사내는 비를 쫄딱 맞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 사내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길모퉁이에서 우산을 쓴 남녀가 서 있었다. 비쩍 마르고 키가 큰 창백한 남자와, 핑크색으로 온 몸을 도배한 예쁜 여자였다. 남자는 능청스레 다가가 무슨 김밥인가를 권했고, 여자는 비장한 표정이었다. “손님, 손을 내밀어보세요.” 남자는 여자의 어깨에 다정하게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으로 치마를 걷어 올렸다. 노팬티의 하반신이 드러났다. 여자는 손님의 손 위에 콘돔 김밥을 살포시 낳았다. ‘김밥 낳기 쇼’였다. 손님은 귀신에 홀린 듯 3만원을 내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슈 크림은 두려웠지만 화이트 좀비를 믿었다. 배가 너무 아파서 걷기 힘들 때면, 화이트 좀비가 굳은살이 박힌 왼손 끝으로 다정하게 클리토리스를 문질러주곤 했다. 그러면 이상하게 견딜 수 있었다.

하루의 마무리는 섹스였다. 남편의 팬티를 내릴 때마다 슈 크림은 감탄했다. 오 마이 갓 땡큐 아멘. 어쩜 이렇게 마른 몸에, 어쩜 이렇게 크고 훌륭한 것이 붙어있다니! 하늘의 축복이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크고 훌륭한 고추를 내려주셔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여자의 가슴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남자의 고추 크기. 남자의 팬티를 일일이 내려 볼 수도 없는 일이고, 솔직히 남편의 고추 크기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는데, 이런 대박이 걸릴 줄이야. 정력이나 테크닉은 둘째 치고 일단 포만감이 대단해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합. 냠냠 쩝쩝. 화이트 좀비는 여자가 먼저 남자를 벗기는 건 좀 아닌가 싶었지만 뭐 어때, 귀엽잖아.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행복한 부부생활은, 짭짤한 수익을 바탕으로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때 그 사건을 까먹었고, 매스컴에 뿌린 막대한 리베이트 비용이 마침내 효과가 나타나면서 예전의 인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김밥은 잘 팔렸다. 낮에는 가게에서, 밤에는 거리에서. 이제는 한번에 7줄까지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탄력을 잃지 않는 슈 크림의 보지에 화이트 좀비는 감탄했다. 오 마이 갓 땡큐 아멘. 하느님 감사합니다. 데스메탈 동아리에서 기타와 보컬로 만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화이트 좀비는 그녀를 만난 걸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김밥을 팔고 있지만, 언젠가는 함께 음악을 할 날이 오겠지. 화이트 좀비는 슈 크림의 손을 말없이 꽉 잡았다. 그러면 슈 크림은 영문도 모른 채 웃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슈 크림의 생리가 끊겼다. 임신인가 싶어서 병원을 찾아갔더니, 의사가 화를 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신 겁니까?”
“네?”
“자궁이며 나팔관까지, 완전 걸레가 됐어요. 창녀도 이렇진 않을 겁니다. 도대체 여성분께 뭘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의사는 화이트 좀비에게 X레이 필름을 보여줬다. 잘은 모르겠지만 초면에 화를 낼 만도 한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상처에 베이고 찢겨, 생리는커녕 임신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초음파 검사를 하고 내시경으로 확인해봤더니, 세균감염과 궤양이 심해서 수술로 다 잘라내야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다. 슈 크림의 여자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끝이었다. 슈 크림은 울었다.

이럴 때 남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남자는 여자가 울고 싶을 때, 실컷 울게 해줘야 한다. 여자의 감정에 동조하면서, 몸속에 숙변처럼 남아있는 슬픔을 눈물로 만들어 배설시켜야 한다. 물론 운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진 않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아지지 않는가? 돈, 명예,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기분 좋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차갑게 식은 눈물을 닦고 부은 눈으로 살짝 웃는 그녀를 보라. 겨우 이런 보잘것없는 미소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살아갈 이유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웃는걸 보고 싶다고 해서 남자들이여, 여자를 웃길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라. 여자는 슬플 때 울고 싶어 하지, 슬플 때도 웃고 싶어 하진 않는다. 남자들처럼 평생 3번만 울어야 하네 어쩌네 하면서 슬픔을 억누르고, 슬픔에 무뎌지고, 슬픔이라는 감정을 몸에서 거세해야 할 필요가 여자들에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화이트 좀비는 슈 크림을 어떻게 달래줬을까? 화이트 좀비의 성격상, 슈 크림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실컷 울게 해줬을 리는 없고. 그냥 “울지 마”하며 달래주기만 했어도 중간은 갔을 텐데. 원래 데쓰메탈 하는 사람들이 좀 과격하다. 물론 슈 크림도 이런 면이 좋아서 결혼한 거지만, 이번에는 좀 심했다. 화이트 좀비가 어떡했냐 하면

이제 피임할 필요가 없다며 얼씨구나 닥치는 대로 콘돔 없이 섹스 했을 뿐만 아니라, 하는 김에 손님들에게도 매춘을 강요했다. 어차피 임신도 안 되는데 뭘 그리 아까워하느냐. 너도 섹스해서 좋고, 나도 돈 벌어서 좋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논리였다. 물론 화이트 좀비의 개방적인 논리에 박수를 보낼 사람도 간혹 있겠다마는, 그러다가 화이트 좀비처럼 자다가 칼 맞고 죽는 수가 있다. 그렇게 화이트 좀비는 죽었다. 가여운 것, 쯧쯧. 화이트 좀비는 그저 슬퍼하는 슈 크림이 안쓰러워서, 슬픔을 잊고 웃게 만들려고 했던 것뿐인데. 그 방법이 좀 과격해서 그렇지.

하지만 슈크림에게, 사랑이 없는 섹스는 고통일 뿐이었다. 사랑이 식은 거지 뭐. 남편의 사랑 하나만 믿고 모든 것을 견뎌왔는데, 이제 와서 나를 버리고 다른 남자들에게 던져버리다니.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 왜 내 맘을 부셔? 그래서 남편의 가슴에 칼을 꽂은 것이다. 김밥 썰던 칼로 말이다.

한편, 그렇게 죽은 화이트 좀비 또한 억울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년이 기껏 웃게 해주려고 남의 남자랑 자는 것도 눈감아줬더니, 남의 가슴에 칼을 꽂아? 배신이야, 배신! 화이트 좀비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다음 생에서 복수를 다짐했다. 그렇게

화이트 좀비는 김밥대마왕으로 환생(還生)했다.

김밥대마왕은 핑크색 여자만 보면 김밥으로 보지를 쑤시고 다녔다. 김밥이랑 하니까 좋디? 그렇게 좋디 씨발년아? 닥치고 김밥이나 먹어라. 아, 물론 위쪽 입이 아니라 아래쪽 입으로. 배가 터져 죽을 때까지. 빨간 김밥, 파란 김밥, 찢어진 김밥… 좁다란 보지 속에 김밥 세 개가, 하는 김에 음양(2)오행(5)을 따져서 합이 7개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로 빛나고 있었다. 그 위로 핏빛 드레싱이 어우러지니 금상첨화라. 사건현장은 차라리 아름다웠다.

핑크색 여자가 하루에 한 명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세 달을 죽어나갔다. 경찰과 매스컴은 사소한 증거는커녕 범행의 동기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슈 크림이 보기에 이 연쇄살인은 명백히 슈 크림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하지만 슈 크림은 태연했다. 조용히 김밥을 팔면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카운트다운했다.

『태극 김밥』은 고사 직전이었다. 콘돔 김밥을 팔지 않아서였다. 그 씨발 개새끼가 만든 김밥을 누구 주둥이에 처넣으려고 콘돔 김밥을 팔아? 이젠 내가 만든 김밥을 팔아야지. 핑크색 절인 생강, 핑크색 게맛살, 핑크색 당근, 핑크색 햄, 핑크색 계란, 핑크색 밥으로 만든 「핑크 김밥」. 물론 김밥은 맛없었고 가게는 텅 비었다. 홀로 부르는 자두의 김밥 노래는 외로웠다. 네가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일까. 그래서 넌 둘이 될 수 있었던 거야. 내가 죽인 하나, 그리고 지옥에서 돌아온 나머지 하나. 그렇게

슈 크림은 남편과 재회했다.

남편은 화이트 좀비가 아니었다. 하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충혈된 눈 밑으로 깊게 패인 다크 서클, 역시 대마왕답게 카리스마가 넘쳤다. 물론 카리스마가 고추 크기와 비례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편은 김밥을 한 줄 시켰다.

“오랜만이네.”
“그러게.”

“이거 내가 개발한, 핑크 김밥이야.”
“어디 먹어볼까. (하나 먹는다) 음. 맛 없구만. 이러니 장사가 안 되지.”

“흥, 그 말 하려고 지옥에서 돌아온 거야?”
“물론 아니지. 너도 알잖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아내를 죽이러 왔다는 걸.”

슈 크림은 전율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 정말이지, 남편을 내 손으로 직접 죽이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순간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려왔어. 그래서 지금 너무 기뻐.

“고마워.”
“뭘.”

둘은 웃었다. 그리고 침묵했다. 남편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고민되는 게 있더라. 너는 내 가슴에 칼을 꽂아 죽였잖아? 그러니까 복수를 하려면 나도 네 가슴에 칼을 꽂아 죽이는 게 맞아. 하지만 나는 김밥대마왕이니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김밥으로 쑤셔 죽여야 할 것도 같은데.”
“고민이겠네.”
“고민이지. 그래서 말인데.”

김밥 대마왕은 김밥을 손에 쥐고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주문을 외었다. 그러자 김밥이 긴 칼로 변했다. 슈 크림은 감탄했다.

“멋있다!”
“봤지? 이게 대마왕의 능력이야.”

기뻐하는 슈 크림의 얼굴을 보자, 김밥대마왕은 대마왕이 되기 위해 지옥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결국 영혼까지 팔아넘겼던 고통을, 순간 잊을 뻔 했다. 그 만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이걸로 보지부터 목구멍까지 쑤셔줄께.”

김밥대마왕이 김밥칼을 들고 다가가자, 슈 크림이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보,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너, 나를 정말 사랑했니?”
“뭐?”

“나를 사랑했다면 모든 걸 용서할께. 너 정말 나를 사랑하긴 한 거니?”

김밥대마왕은 대답 대신, 오랜 기타연주로 굳은살이 깊게 패인 왼손 끝으로 슈 크림의 클리토리스를, 여느 때처럼 다정하게 문질렀다. 익숙한 감촉이었다. 남편은 환생해서 복수를 하는 와중에도 기타를 놓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전하구만. 슈 크림은 마음이 놓였다. 남편은 여전했다. 김밥이 보지 속으로 파고들면서 날카로운 칼로 변해서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까지도, 슈 크림은 남편을 믿고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남편의 마지막 대답 하나로 반전(反轉)이 일어나기를 편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김밥대마왕은 슈 크림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분명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아니,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았어. 단 한 순간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밥은 슈 크림의 몸을 관통했다. 선명한 핑크색 피. 슈 크림은 괴로워했다. 김밥대마왕은 슈 크림의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피를 토하며 느리게 죽어가는 슈 크림을 곁에 두고, 김밥대마왕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만들어준 김밥을 마저 먹었다. 한입 한 입 씹을수록 입안에 퍼지는 맛없는 그녀의 김밥은 그녀의 많은 것을 추억하게 했다. 슈 크림은 쉽게 죽지 않았다. 오래도록 괴로워하면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힌 마지막 한 마디를 되새김질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 죽여서라도, 환생해서라도 듣고 싶었던 한마디. 다시 태어나면 들을 수 있을까. 복수하면 들을 수 있을까.

김밥대마왕은 그런 슈 크림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이 정도 원한이면 틀림없이 환생하겠지. 그래서 나에게 복수하겠지. 하지만 그 복수는 반드시 실패할거야. 왜냐하면 너는 인간이고, 나는 대마왕이니까. 인간으로서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는 거야. 아무리 환생을 되풀이해도 너는 나를 절대로 죽일 수 없어. 가엽게도 영원히 괴로워하겠지. 그런 슈 크림이 불쌍해서 김밥대마왕은 울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그의 몸에서 없어진지 오래였다.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숨이 끊어져가면서도 마지막 힘을 다해서 복수의 감정을 불태우는 슈 크림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김밥대마왕은 죽고 싶었다. 슈 크림의 손에 죽고 싶었다. 슈 크림에게 자신의 진심을 들려주고 싶었다. 슈 크림이 그토록 듣고 싶어 하는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대마왕이었다. 대마왕은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고 마음대로 진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 악한 존재가 되는 것이 대마왕이었다. 김밥대마왕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눈빛으로 죽어가는 연인을 배웅했다.

2005 06 14
|hit:3746|200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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