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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것을 바라보기가 피곤해진다
너는 멀리 있다
불투명한 너의 모습
아무리 다가가도 너의 모습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너는 내게서 너무 멀리 있다
아무리 다가가도 가까워 질 수 없는 거리에 있다

그리고 걸음을 멈춘다.
이젠
불투명한 너의 모습을 바라보기가 피곤해진다.
나는 더 이상 너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쳤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두려웠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너는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
그것은 끈적끈적한 오물이 잔뜩 묻은 철수세미 모양을 하고 있다
철수세미 속에 깊숙히 박힌 오물은 떨어질 줄 모르고 질기게 달라붙어 있다
아무리 씻어도 철수세미는 깨끗하던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제일 두려웠다.

나는 다시 가우시안 블러가 잔뜩 먹힌 너의 모습을 바라본다.
너는 과연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철수세미보다 좋은 수세미일까
지금 쓰는 철수세미가 오물이 잔뜩 들러붙어 역겹기는 하지만 설거지는 그럭저럭 잘 된다
하지만 너의 모습은 너무도 불투명해서 지금 수세미보다 잘 닦일지 알 수가 없다
  
처음 너에게 품었던 나의 감정이 단순한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렴풋이 보기에도 너는 3M사의 특허품 '스카치 브라이트'도 아니고  
홈쇼핑에서 선전하는 세제 없이도 설거지가 가능한 만능 스폰지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철수세미가 싫다
좀 더 나은 수세미를 쓰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너를 포기할 수 없다
너무 멀리 있어 너의 모습이 불투명하더라도
  

어차피 인생은 도박이다

도박은 피곤하다.

  
    
2002/03/02 19:52
|hit:2981|200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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