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접한 것은 2002년 12월 31일, NHK 홍백전에서였다. 마침 할일도 없고 위성에서 홍백전을 해주길래 "어디 나도 일본인같은 연말을 보내볼까" 하는 생각에 다들 놀러나가는 연말에 집에 틀어박혀서 TV나 보고 있었다. 마침 보아도 나오고 SMAP도 나오고 초난강도 나오고 각트도 나오고 모닝구무스메도 나오고 그래서 뭔지 몰라도 하여간 재밌었다. 그러던 와중에…
뭔지 몰라도 관중들의 함성? 뭔가 험악한 남자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보통의 "꺄아~" 하는 여자들의 함성소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 둔탁하고 폭력적인 함성 뒤에 나온 스타는 바로, 오늘 이야기할 마츠우라 아야(통칭 아야야)였다. 사실 난 누군지도 몰랐고 하여간 뭔가 엽기적으로 귀여운 뭔가 알 수 없는 롯데월드 풍의 조그만한 여자아이가 나와서 지랄에 가까운 깜찍을 떨면서 뭔가를 했다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하여간 참 내 취향에 맘에 들었다.
도대체 누군지 너무도 궁금해진 나는, 고심끝에 야후 재팬에서 홍백의 한자인 紅白을 쳤다. 그리고 그 결과를 한미르 재팬 번역기에 넣고 돌리면서 찾기를 30여분. 나온 순서를 가지고 겨우겨우 찾아낸 그 아이돌 스타는 바로… 마츠우라 아야였다! 일본어를 몰라도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다니!! 역시 정보화 시대구나!!!
松浦亞彌 - Yeah!めっちゃホリディ
Yeah! 굉장한
HOLIDAY
신나는 여름의
희망
Yeah! 대단한 SUMMERTIME
빨리 사랑을
하고 싶어
시대를 조금 앞서가 패션
잡지를 여는 것은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
대단한 수영복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
대단히 멋져
여자들 모두 승부의
시간 라이벌 같은
것에 지지 않아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
대단한 열기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
대단한 배틀
가끔씩은 센치해져
버리는 때도 있어 하지만
그런건 어떻게든 어떻게 되버려
i@yume../ (나는
꿈꿔 도트
도트 슬래쉬)
Yeah! 굉장한
HOLIDAY
신나는 여름의
희망
Yeah! 대단한
SUMMERTIME
빨리 사랑을
하고 싶어
Yeah! 굉장한
HOLIDAY 용기를 짜내서
Yeah! 대단한 SUMMERTIME
새로운 자신으로 열심히 힘을내서
빨리 사랑을
하고 싶어
- 이 노래를 계기로 마츠우라 아야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어느새 병장이 되버린 군대간 친구가 휴가를 나왔다. 그 친구는 군대에서 청소하다가, 아마도 제대한 고참이 두고 갔을법한 CD에 있던 일본음악을 들으면서 그쪽 세계에 빠지게 되었고(이제 병장이라 CD도 마음껏 듣는다), 그런 이유로 마츠우라 아야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일본여행 갔을때도 일부러 아이코, 마츠우라 아야, 라르크 앙 시엘의 앨범을 사달라고 10만원을 부쳐주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그 중에 7만원만 앨범 사는데 쓰고 나머지는… 좋은 곳(……)에 썼다)
하여간에 그래서 그 친구는 휴가를 이용해서 마츠우라 아야의 콘서트 DVD를 샀다! DVD 플레이어도 없으면서! 우리집에 DVD 플레이어가 있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사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DVD는 일본 것. 지역코드가 달라서 재생되지 않았다. 바보같은 녀석…
DVD의 지역코드라는 것은 전세계적인 기업들의 담합이다. 밀수를 무력화 시키려고 전 세계적으로 담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코드 프리도 불법은 아니다. 실제로 중소기업 같이 담합해봤자 별 소용없는 회사의 제품은 아예 코드프리가 가능하게 나온다.
하지만 우리집 DVD플레이어는 삼성 것. 삼성 같은 대기업이 이런 담합을 싫어할리가 있나. 게다가 나는 DVD에 별 관심이 없어서 뭔가 복잡한 조치가 필요한 코드프리란 것을 해놓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 밤 10시 늦은 시간에 DVD방을 찾아 헤메기 시작한다. 사실 코드프리야 DVD방 점주에게는 그다지 쓸모있는 기능이 아니라서, 게다가 다들 기계를 잘 모르는지 대기업 제품만 선호했다. 그래서 계속 안되다가 3번째 찾은 곳에서야 겨우 중소기업 DVDP를 발견할 수 있었다. 힘들게 봐서 그런지 재미도 두배! 앗싸 좋구나!
마츠우라 아야의 2003년 콘서트 DVD. 아야는 생각보다 라이브를 잘 했다. 문제는 썰렁한 무대에 100% MR. 생음악이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마이크에서 나오는 목소리만으로 공연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안무라던가 노래가 워낙 격렬해서 중간중간에 쉬는 타임이 많았는데, 그때 전광판에서 보여주는 것은 누가 봐도 일본식 쇼프로였다. 콘서트조차 쇼프로의 연장인 그녀는 확실히 쇼프로 친화적(show-program-friendly)인 아이돌 스타였다.
전에 일본 갔을때도 느꼈던 거지만, 정말 일본 쇼프로의 가학성은 상당히 심했다. 솔직히 내 취향이었다. 개그가 폭력의 일종인 이상, 가학성이 심할수록 더 심하게 웃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멀쩡하게 생긴 우리의 아이돌 스타 아야야에게 이상한 음식 먹여서 토하게 만드는 것도 비위가 상하기는 하지만 웃긴 것은 사실이다. 그런 면이 콘서트에서도 여과없이 보여졌다.
사실 무대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억지 미소로 위태롭게 라이브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약간 다른 의미에서 재밌었다. 보아상보다도 한살 어린 나이에 이렇게 하드한 무대를 소화해내야하는 빡센 연예게에서 꿋꿋히 버티는 모습, 열심히 힘을 내서 최선을 다하는 그러나 힘들어 죽겠는 모습을 보면서 내 얼굴에 비열한 미소가 흐르는 것은 왜였을까.
앨범 제목: 松浦亞彌 コンサ-トツア-2003 春 ~松リングPINK~
앨범넘버 : EPBE-5089
발매일 : 2003 09 18
정가: 3800円
하여간에 이 DVD는 정말 대충 만들어진 것 같다. 내 친구도 "일본 DVD가 4만원대라니, 정품 맞아?"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도 그럴것이 4만원이면 DVD가 아니라 CD 값이잖아. 게다가 단순히 보통 쥬얼 케이스에, 따오판을 보는 것 같은 조악한 디자인. 게다가 CD자켓도 달랑 한장 뿐이었다 -_-;; 아무런 서플먼트도 없고. 결정적으로 표지가 별로 안 귀여웠다!!!!(이게 결정타) 그래서 정품인지가 매우 의심되는 상황에서 본 DVD는, "그래도 정품은 맞는데, 아마도 일본 팬들도 상당히 실망했을 것 같은 품질"이었다.
게다가 생음악도 아니고 MR에 맞춰서 목소리만 내는 거라, 라이브의 현장감도 떨어지고 DVD의 5.1채널 서라운드를 사용할 여지도 없었다. 그나마 카메라도 열심히 아야야의 얼굴만 클로즈업 하는데만 급급해서, 아무리 가까이 들이대도 땀구멍은 안 보이고 두꺼운 화장만 보이는 얼굴을 111분이나 봐야 했다.
그래서 재미없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 늦은 밤 남자 둘이서 그 좁은 DVD방에서 12,000원이나 내고 그것도 자기가 사서 가져온 DVD를 돌려 보다니. 언뜻 보면 음침해 보이지만 의외로 그렇지도 않다!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둘 다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의 영상을 보는 것, 그것만큼 즐거운 체험이 어디 있으랴! 아마 아야야의 라이브, 비싼 돈 주고 TV에서 하던 쇼케이스와 별 다를 것도 없는, 말이 좋아 라이브 콘서트지 단순한 MR공연 정도를 보러 온 영상 속의 관객들의 기분도 우리와 같았으리라. 아이돌 스타란 그런 것이다. 그저 바라만 봐도 즐거운 대상. 좋았다. 이것도 뭐 짧으면 2년, 길어야 7년 정도겠지만. 어찌怜?지금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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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 2003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