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채널이 난무하는 케이블TV.
나는 원체가 TV를 즐기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즐겨보는 채널은 몇개 안된다.
그 몇 안되는 즐겨보는 채널 중에서도 특별히 편애하는 채널이 있으니 이름하여 '디스커버리 채널'인지라.
타겟층부터가 대단하다. 25세에서 54세까지의 고학력 고소득층을 타겟으로 한 다큐멘터리 일색의 방송을 하는데. 한낮 쇼프로나 뉴스만 즐겨보는 머리속이 텅빈 천한 사람들에게 TV라는 바보상자가 도대체 무슨 재미겠냐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프로는 인기가 많다. 예를 들면 얼마전 종영한 역사스페셜이라던가. 생명의 신비. 잘 먹고 잘사는 법 등… 어려운 프로를 싫어하는게 아니다. 단지 없어서 못 볼 뿐이다.
왜 도올 김용옥 선생의 그 어려운 강의가 그토록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을까. 단지 도올선생의 재치있는 입담 때문일까. 아니면 도올선생이 말도 안되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도올선생은 내가 알기로 TV라는 매체를 가장 적절히 활용했던 최초의 강사였다. 지난 중고등학교 시절 수없이 접했던 TV강의. 그 중 제대로 된게 얼마나 있었는가 생각해본다면 다들 쓰레기였다. 단위시간당 엄청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TV라는 매체를 두고 그걸 다 어따 써먹은 거야. 단지 자기가 강의하기 편한대로, 아니면 출연료 받아먹으려고 지멋대로 죽죽 늘리기 일쑤. TV강의의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한 사람은 단언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도올선생의 강의에 열광했던 것이다.
TV는 그렇다치고 인터넷은 그 가능성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을까. 그럴리가 없지. 아무리 인터넷을 서핑해봤자 드넓은 인터넷 쓰레기 바다 속에서 건지는 것은 Ctrl+C & Ctrl+V로 토씨하나 안 바뀌고 똑같이 나열된 쓰레기 정보 뿐. 왜 네이버 지식검색이 인기있을까. 이것은 정보를 매개로 한 온라인 게임이다. 아는 것이 많아서 답변을 잘 해줄수록 레벨이 올라간다. 그만큼 사람들은 제대로 된 정보에 굶주려 있다는 얘기다. 정말 뭔가 제대로 알고 싶다.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궁금해 미치겠어… 누가 좀 나를 공부시켜줘…
이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채널이 바로 디스커버리 채널이다.
언뜻 보기에도 이런거 만들려면 엄청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경쟁사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게 가볍다는 소리를 듣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하다. 가만히 한시간동안 앉아있으면 어지간한 책 한권을 읽는 수준의 정보를 제공해준다. 사실 TV라는 매체는 어지간한 책보다 많은 정보를 빠른 시간안에 유쾌하게 전달해준다. 나도 같은 내용이라면 책보다는 TV를 보고 싶다. 문제는 책 한권 쓰는 것보다 TV프로그램 한편 만드는거 더 오래 걸릴껄. TV하니까 우습게 생각하지, 말을 바꿔서 영화라고 해보자.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해보자. 이제 납득이 가는가.
마린블루스 2003년 7월 7일자 일기
어려운 얘기라고 고리타분할까? 천만의 소리. 매트릭스에서 느꼈겠지만 어렵다고 재미없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어려울수록 흥미를 자극한다. 가볍게는 공룡이나 이집트의 신비, 아니면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의 기원을 파헤쳐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현대'라는 기업이 어떻게 굴지의 기업으로 올라서게 되었는가, 아니면 현대 사회가 밤낮없는 24시간 체제로 들어서면서 인간이 겪는 '호르몬 지옥'의 실체라던가. 당장 우리가 매일매일 접하는 민감한 주제들을 디스커버리 채널은 꽤나 진지하고 깊이있게 파헤친다. 물론 아까도 말했듯이 경쟁채널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게 가볍다는 소리를 듣는만큼 결론을 잘 내리거나 뼈있는 소리를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어찌怜?내가 보기에는 과거 'SBS 호기심천국'이나 '그것이 알고싶다' 따위의 것들 보다는 훨씬 깊이있게 다루는 것 같아 즐겁다.
즉 디스커버리 채널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틈새를 노렸다. 지오그래픽은 워낙 철저해서 사실 하나 확인하는데 수십 시간을 투자하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하나 만드는데 10년씩 투자하기도 한다. 물론 그래서 지오그래픽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제작기간이 길어서 놓칠 수 밖에 없는 비교적 가볍고 민감한 주제들이 있었다. 이걸 디스커버리 채널은 캐치한 것이다. 발빠르게
변화하는 케이블TV 시장에서 충분히 진지하면서 그러나 빠르게 많은 주제들을 건드렸다. 그래서 외계인 얘기도 나오고 고대문명의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얘기도 나온다. 이런 애매모호한 주제는 지오그래픽에서는 다루지 않던 것이었다. 덕분에 심지어는 지오그래픽을 추월할 정도로 디스커버리 채널은
몸집을 불렸다.
어찌怜?25세부터 54세의 고학력 고소득 성인을 대상으로 한 방송인만큼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는 것은 즐겁다. 방송의 로고대로 entertain your brain이다. 앞으로도 이런 방송이 부디 망하지 않고 오랫동안 버텨줬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라면 바램이다.
ps. 이번에 본 '브루스 올마이티'라는 영화에도 디스커버리 채널에 대한 언급이 나오더군요. 유명한가봅니다. (2003 07 14)
디스커버리 채널 www.discovery.com
[동아일보]
자연다큐 '맹수들의 大戰' - 내셔널 지오그래픽 vs 디스커버리 채널
[주간조선]
한 가지 주제를 ‘진득하게’ 풀어나가니 재미도 있고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효과
write 2003 07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