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06/04/29 22:18(년/월/일 시:분)
|
주호민 - 짬 32편 중에서 |
군인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힘든 훈련도, 고참의 괴롭힘도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사회와 멈춰있는 자신, 이런 괴리감이야말로 군인을 가장 힘들게 한다.
http://homins.net/
호민의 3류만화
때론 군대의 문제는 군대 자체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애인 문제라던가, 집안 문제라던가, 진로 문제 같은 것. 아무리 군대에서 잘 해준다고 해도 헤어진 애인이 돌아오는 건 아니고, 집안을 빚 보증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들어가기로 확정되었던 회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 내 후임 중 한명은 집에서 빚 보증을 잘못 서서 갑자기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만약 그가 군인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아르바이트라던가 막노동이라도 잔뜩 해서 한 1년 정도만 죽어라 일하면 메꿀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군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걱정하고 근심해도 조금도 도와줄 수 없었다. 이런 무력한 자신을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제까지만 해도 열심히 노력하고 부지런히 살면 어떻게든 해결되던 문제가, 군대에 오면 갑자기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한계상황이 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때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물론 군대의 자살률이나 범죄율은 일반 사회보다 극히 낮지만, 이런 심리적 요인 때문에 그 얼마 없는 사고들조차 쉽게 심각한 사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고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용납할 순 없지만, 이해할 순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심정적 동조가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자 최대한의 것이었다. 전역한 지금도 그리 다를 바는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