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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의 역사

06/01/12 14:32(년/월/일 시:분)

고문의 역사 - 브라이언 이니스 (도서출판 들녘)

"가장 잔인한 고문은 무엇일까?"

언뜻 들으면 꽤 호기심이 생기는 질문이다. 네이버 지식검색에도 많이 있겠지. 하지만 생각해보자. 가장 잔인한 고문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예를 들어 발에 못질을 하는 고문과, 발을 불에 태우는 고문을 비교해 본다면 어느 쪽이 더 잔인할까? 하지만 당신이 고문을 당하는 입장이라면 어느 쪽이던 비교할 수 없이 괴로울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도 고문은 나쁘고, 어떤 것도 고문을 정당화 할 수 없다. 하지만 고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나라를 가리지 않고 행해져 왔고,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사라질 줄 모르고 있다. 도대체 왜 고문은 계속해서 하게 되는 걸까?

생각해보자. 한 가스공장에 수상한 사람이 들어와 폭탄을 설치하다가 붙잡혔다. 그는 자백하기를, 실은 두번째 폭탄이 있는데, 조금 있으면 자폭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심문을 해도 범인은 두번째 폭탄을 설치한 위치를 자백하지 않는다. 범인의 세 치 혀에 수백명의 목숨이 달려있다. 우리는 범인을 고문해서라도 두번째 폭탄의 위치를 알아내야 할까?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로, 이 책 맨 앞에 나온다. 고문의 딜레마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예시인데, 정말 고민되는 문제지만 답은 간단하다. 아무리 그래도 고문을 하면 안된다는 거지 뭐. 한 명의 목숨과 수백명의 목숨을 비교할 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며 단순히 양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실제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조사관은 상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범인을 고문하지 않았고, 결국 두번째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범인은 그저 거짓말을 했을 뿐이었다. 하마터면 무고한 (완전히 무고하진 않지만 어쨌든 두번째 폭탄은 없었다) 범인을 고문할 뻔 했다. 아무리 고문해봤자 있지도 않은 두번째 폭탄의 위치를 자백할리가 없고, 그 과정에서 고문의 수위를 높이다보면 그 잔인성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여기서 고문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보게 된 이유도 이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의 기술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실제로 고문은 정말 재미있었고, 인터넷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들로 가득했다. 서점에 간 건 리처드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을 사기 위해서였지만, 그래서 결국 이 책을 샀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조금 실망스러운 점은, 전 세계적으로 최고라는 중국의 고문을 내가 많이 기대한 것과 달리 이 책에서는 그다지 할애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고문은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졌고, 대부분은 그저 소설 안에서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긴 중국 소설의 허풍을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그리고 중국이라고 해서 다른 나라보다 더 잔인한 고문을 할 이유도 딱히 없다. 요즘 파룬궁 고문이 유명하지만, 중국만 그러겠어? 지금까지의 고문의 역사에 비추어볼때 딱히 특별할 건 없다. 고문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결코 옳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자제해야 할 인간의 사악한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고문의 역사 | 원제 The History of Torture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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