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06/01/15 14:33(년/월/일 시:분)
이청준 - 벌레 이야기 (1985)
설마 친절한 금자씨가 표절? 이라고 생각해서 보기 시작했다.
표절은 아니고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비슷하다면 복수는 나의 것이 더 비슷하겠다.
어쨌든 인간은 참 약한 동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아무리 정신을 굳게 먹어도 하드웨어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놈이다. 그래서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신이 되는 문제에 있어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못 따라 준다고 하더라도, 소프트웨어적으로 에뮬레이션을 하면, 비록 진짜 신은 못 되더라도, 마치 신처럼 살아갈 수 있지는 않을까?
예를 들어 인간은 복수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복수심을 누를 수 없다.
하지만 열심히 도를 닦아서 복수를 하지 않는,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을지 몰라도 겉으로는 어쨌든 평온한 상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겉으로 보기에 신과 다름없다면 속이야 어쨌든 겉으로는 신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신은 신화적인 면을 걷어낸 순수하게 개념적인 신을 말한다. 전지전능할 필요까지도 없고, 그저 인간을 초월한 초인적 존재면 나는 충분히 신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신이란, 인간이 되고 싶어가는 가장 최고의 경지, 그러나 인간으로서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신비의 경지를 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어떤 인간도 신이 될 수 없지만 또 어떻게 보면 어떤 인간이나 신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신은 인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인간이 없이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 또한 신을 상상할 수 있는 범위는 인간의 잠재능력 내로 제한되며 그것은 즉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신이 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코 신이 될 수 없는걸까.
허허, 어리석은 인간들.
아 어렵다.
오늘은 이만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