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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 실은.. 무정자증이야."


겨우 이 말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건 신혼여행 첫날밤이었다. 이제서야 이런 말을 하는건 너무 잔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사실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반은 객기로 내뱉은 말이다. 하지만 막상 말을 내뱉고 나니 너무 두려웠다. 나는 또 그녀에게 버림받는 것일까.

나는 찬찬히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결혼 하루만에 이혼? 솔직히 그런건 그다지 두렵지 않다. 사실 그보다 두려운 건 따로 있었다. 나는 내가 무정자증이라는 걸 알게된 그때부터 지금까지 심각할 수준의 플레이보이로 지내왔다. 그 누구와 섹스를 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들의 귓가에 아기를 가지고 싶다고 속삭이며 거짓 청혼을 하고 따먹기를... 몇명이더라. 결혼을 한 지금까지도 정리하지 않고 있는 섹스 파트너들. 아니 섹스 파트너라는건 내 생각일뿐. 콘돔도 끼지 않고 수없이 섹스한 탓에 그쪽에선 당연히 결혼하는 걸로 알고들 있겠지. 그게 밝혀지기라도 하는 날엔 난 끝장이다. 물론 임신하지는 않을테니 내가 요령껏 막으면 절대 밝혀질리 없겠지만. 문제는 나의 아내도 그런 면에서는 다를바가 없다는 거겠지.

"그래. 그랬구나."

그녀는 웃었다. 나는 처음에 그 웃음을 체념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찬찬히 그녀의 표정을 뜯어보자 그녀의 얼굴에는 조금의 체념도 묻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느껴진 것은 다행, 안도, 행운. 아니 애써 포복절도할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고 일부러 조그맣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웠다.

"실은 나... 트랜스젠더야."

그녀는 생각했다. 남자의 성기가 있던 자리에 그걸 다 들어내고 만든 여자 모양의 성기를, 물론 전혀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쾌감또한 상당부분 깎아내버린 나의 커다란 상처. 월경도 하지 않고 임신도 하지 않는 어찌 보면 편리한 인조 성기를 가진 자신의 사타구니를. 수많은 남자들을 따먹어 오면서도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은 그 깊고 깊은 구멍을. 그리고 그와 결혼을 약속한 지금까지도 정리하지 않은 섹스 파트너들을 생각했다.

"똑같네. 잘됐네!"

호탕하게도 말을 내뱉은 그의 표정은 실은 굳어져있었다.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현실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표정은 기적처럼 밝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방금 전 자신이 내뱉은 말과 똑같은 감정이 되었다. 정말 잘 된 일이었다.

"그럼 우리 협의아래, 몰래 입양하는거야. 가족들 몰래."
"성이나 혈액형이나 외모나 감쪽같은 애로."

두명의 부부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웃음을 마구 웃어제꼈다. 그리고 그 감정상태 그대로 섹스를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머리 속에는 서로 다른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완전범죄였다. 아무도 알 수 없고 아무도 알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의 부부생활은 한동안 평화로웠다. 그리고 이 부부는 오랫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지내게 된다.

2005년 1월 23일

MBC 베스트극장 - 사랑, 비탈길에 서다 를 보고 씀
|hit:2811|200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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