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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비윤리적인 작가와 작품을 어떡할 것인가

17/06/07 09:27(년/월/일 시:분)

이자혜의 미지의 세계가 연재되었던 레진코믹스에서 삭제되었다. 작품의 특정 캐릭터가 실제 인물을 연상케 하고, 맥락상 그 캐릭터가 실제 인물을 비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였다. 이를 피해자 본인이 직접 온라인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작가 이자혜는 물론 이를 발행한 레진코믹스까지 책임을 물었다. 결국 레진코믹스는 해당 작품 전체를 내렸고, 작가와의 계약 또한 파기하고 향후 계약도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작품은 어디까지나 허구였고, 실명과 실제 지명, 사건 등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피해자의 글을 읽어보니 (맥락을 알고 작품을 본다면) 실제 인물과 사건을 떠올릴만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대체로 그런 톤이긴 했지만) 그 캐릭터 또한 악의적으로 그려졌다.

나는 이 작품이 어디까지나 허구이긴 해도, 실제 피해자가 자신의 사생활이 공개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문제 제기를 했기 때문에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를 중심으로 생각하고자 했다.

하지만 해당 화만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완전히 내리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를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해당 회차만 삭제하거나, 혹은 해당 회차를 수정하여 다시 그리거나, 아니면 작품의 앞 뒤로 정중한 사과문과 면책사항을 붙일 수도 있었다. 작가가 피해자에게 사과와 적절한 보상을 할 수도 있었다. 이것이 나는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때 지나치다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당시 이자혜가 과격한 페미니즘 발언에 자기중심적이고 구질구질한 사과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던 터라, 이런 내 생각이 잘 전달될지 확신이 없었다. 레진코믹스도 이런 논란에서 빨리 발을 빼고 싶어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 같았다. 나 또한 이렇게 이자혜의 변호를 하는 것이 온당한가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올린다. 너무 빨리 올리면 피해자에게 더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피해자는 반드시 보호받아야 하고, 모든 사람은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작 작품 때문에 실제 사람이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 책임은 적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 비슷한 것만 봐도,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또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래서 관련된 모든 것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아무리 비윤리적인 작가와 작품이라도 최소한의 존엄은 있다고 생각한다.

http://crispyring.com/
이자혜 홈페이지

나라는 인간이 쓸 만하다거나 쓸 만하지 않다거나 하는 것처럼 이 소설도 역시 좋거나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작품이 나라고 하는 인간의 됨됨이를 넘어서 존속하기를 바랄 뿐이다.

- 1987년 6월,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후기 중에서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2564

  • ㅇㅇ 17/06/07 17:14  덧글 수정/삭제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머릿속에서 의견이 계속 엎치락 뒷치락 합니다만... 연재처에서 단시간 내에, 꼬리 자르듯이 만화 전체를 삭제해버린 건 분명 과한 처사 같아요.

    경우가 다르긴 한데 홍상수-김민희도 함께 생각해봅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 김을 떠올리게 하고 홍 처자식들 입장에선 가슴에 대못 박을 만한 영화라던데(저는 안봤어요). 대중들의 비난은 많이 받았지만 폐기 처리 되지는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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