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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인물

마리텔 백종원

15/07/27 20:03(년/월/일 시:분)

1.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젼(마리텔)을 봤다. 김구라가 몇달 전 썰전에서 요즘 인터넷 방송과 접목한 방송을 준비중이라고 얘기했는데, 이런 형식일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당연히 김이브 같은 아프리카 유명 BJ들을 지상파로 데뷔시키는 등용문으로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오히려 이미 메이저인 유명 연예인들이 지상파의 훌륭한 스튜디오 환경에서 인터넷 방송 형식으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아이디어만 봐선 이게 과연 재미있을까 싶었는데, 어라 의외로 상당히 재미있었다.

일단 다들 연예인이다보니 방송에도 익숙했고, 스튜디오 환경이나 방송 장비들도 훨씬 훌륭했다. 방송 구성이나 흐름도 수준급이었다. 이렇게 완벽한 환경에서 형식만 인터넷 방송을 빌려온 것이다보니, 지금까지 보던 인터넷 방송보다 비교도 안되게 훨씬 훌륭할 수 밖에 없었다.


2.

그 중의 백미는 역시 백종원이었다. 요리를 혼자서 직접 하면서 진행하는 건 굳이 인터넷 방송이 아니라 제이미 올리버 등 메이저 방송에서도 많은 선례가 있지만, 백종원은 레시피를 넘어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다. 나이 많은 아저씨임에도 불구하고 꼰대질이 없었고, 인터넷 문화에 익숙해서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에도 익숙했고, 무엇보다 말을 재미있게 할 줄 알았다.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한다고 금방 흔들리면 안된다. 멘탈이 강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준비한 재미를 쏴아악 풀어낼 수 있다. 일일이 설득하지 않고, 단번에 유혹한다.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방법으로 다시 계속 유혹한다. 결국 넘어가지 않을수가 없다.


3.

백종원이 설탕을 너무 많이 쓴다고 경악했는데, 원래 외식 간은 쎄야 한다. 매일 먹는 밥도 아니고, 가끔 기분 내려고 나가서 먹는 건데, 그런 외식 간이 약해서야 되겠는가. 설탕이건 조미료건 팍팍 넣어야지. 게다가 백종원은 외식 간을 잘 맞추는 분이라, 집에서만 요리하시던 분들은 깜짝 놀랐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한식이 원래 단맛을 강조한다. 김치도 달고, 불고기도 달고, 갈비찜도 달다. 김치에도 설탕을 넣고, 불고기에는 더 많이 넣는다. 물론 달기야 일식도 달고 중식도 달지만, 쇠고기를 이렇게 달게 양념해서 굽는 요리는 세계적으로 한식 말고는 없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불고기에 꽂히는 거다.

물론 너무 단맛에만 의존하면 건강하지도 않을뿐더러, 재료의 섬세한 맛을 다 덮어버리고, 무엇보다 쉽게 질린다. 하지만 단맛을 잘 살리면 우리의 원초적인 동물적 본능을 깨우는 강렬한 맛을 낼 수 있다. 설탕은 자제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비장의 무기다.


4.

나는 요즘 백종원에 푹 빠졌다. 홍마반점, 빽까페, 원조쌈밥집, 새마을식당에 갔고, 마리텔, 집밥 백선생, 한식대첩3를 봤고, 백종원의 책을 여러 권 봤다. (무조건 성공하는 작은 식당, 초짜도 대박나는 전문 식당,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

거기에 더해서, 꽁치 통조림을 사서 꽁치튀김과 꽁치 꽈리고추 간장 조림을 만들어 먹었고, 고등어 통조림으로 고등어 감자 고추장 조림을 해 먹었고, 냉장 오징어를 두마리 사서 다듬어서 고추장 볶음을 만들어 먹었다. 오징어를 다듬는데 눈이 너무 무서워서 손이 덜덜 떨렸고, 내장에서 기생충이 나와서 기겁을 하며 버렸다. 더운 여름날 2시간 반이 넘게 요리를 하기도 했다.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던 나를, 요리를 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도 특별할 것 없이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여자가 아닌 남자의 관점에서 요리를 접근했다. 외국 레시피 또는 종가집 전통 요리가 아니라, 지금 바로 마트에서 사다가 간단히 만들어먹을 수 있는 현실적인 레시피를 보여줬다.

또한 닭, 오징어를 다듬는 과정도 마치 건프라를 조립하듯이 분석적으로 접근했다. 돼지고기의 부위별 설명도 프라모델의 부위별 기능을 설명하듯이 남성적 관점으로 접근했다. 지금까지 여성 대상 요리프로그램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이런 단순함, 남자 관점, 인간적 매력이 나를 요리하도록 움직였다. 요리는 생각보다 꽤 힘들었지만 그만큼 아주 재미있었다.


5.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백종원을 "음식 일루져니스트(환상가)"라고 했다. 노력해서 좋고 비싼 재료로 낼 수 있는 맛 A를, 노력 덜 하고 그냥 그럭저럭 괜찮은 값싼 재료로 낼 수 있는 맛 A'로 퉁쳐버리는 능력.

그것이 백종원의 불황형 외식, 싼 값으로 적당한 수준의 요리를 만족할 만큼 즐기는 것의 핵심이고, 마찬가지로 마리텔에서 한정된 식재료로 비싼 요리를 그럴듯하게 흉내내는 "고급진" 레시피의 핵심이다.

일루져니즘은 당연히 한계가 있다. 콩을 갓 갈아 만든 신선한 콩국수와, 수퍼에서 파는 두부를 땅콩버터와 갈아 만든 유사 콩국수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베트남 느억맘을 멸치액젓으로 대체하면 당연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콩을 가는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고, 일반 마트에서 잘 팔지 않는 느억맘을 생략하면 지금 당장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간편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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