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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소수자의 외로움과 자기긍정

14/04/18 15:37(년/월/일 시:분)

1.

나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물론 내가 게이나 장애인도 아니고, 겉은 의외로 멀쩡하게 생겨서 그냥 "괴짜", "사차원", "천재 아니면 바보"라 불리며 적당히 젊은 시절을 지나쳐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냉정하게 나를 평가하면 나는 게이나 장애인 만만치 않게 근본부터 이상한 사람이다.

이상한 사람이라 가장 큰 나쁜 점은 외롭다는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활짝 드러내면 남들에게 이해받기 어렵다. 공감이 안 된다. 생각이 너무 다르다. 도대체가 접점이 없다. 동글동글하지 않고 엄청 울퉁불퉁 일그러졌다. 빈 자리에 끼워맞추기가 참 어렵다.

나는 소수자다.

다수결로 투표하면 반드시 진다. 내 의견은 어디까지나 소수 의견이다. 쫄리면 뒤지시던가! 그럼 난 뒤져야 한다.


2.

나같은 사람들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예전에 일본의 오타쿠 시장을 전 인구의 3%로 추산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에반게리온이 열풍이었다고 해도, 그걸 사는 사람들은 3%의 오타쿠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 글에서는 오타쿠 시장의 협소함을 지적하며, 제아무리 오덕들을 공략해봤자 3%밖에 안되니, 미야자키 하야오나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해야 3%의 벽을 넘을 수 있다... 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나에게 인상깊었던 것은 3%라는 숫자였다. 그 글에서는 고작 3%밖에 안된다고 했지만, 나에게 3%는 결코 작지 않았다. 이 3%는 나의 동지들의 숫자였다. 나같은 이상한 사람들의 비중이었다.

일본 인구 1.2억의 3%는 무려 360만명이다. 한국 인구 5천만의 3%는 150만명이다. 전국의 150만명이여, 너희들이 오타쿠냐? 한명당 에반게리온 용품을 10만원씩만 구매해도 무려 1500억원의 시장이 생긴다! 이것이 과연 작더냐?


3.

어찌됬건 나는 이상한 사람이고, 전체의 3%에 불과한 소수자다. 이게 과연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이런 채로 평생을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것을 저주라고 하기에는 내가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진 않다. 나름 이런 사람이라 인생이 쉽게 즐거워지는 점도 좋다. 사람들과 얘기는 잘 안 통해도, 딱 찍은 건 엄청나게 자폐적으로 몰두하는지라 적어도 직장에서는 인기가 아주 없지도 않다.

나는 나를 세탁볼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 있잖아, 세탁기에 넣는 울퉁불퉁한 거. 물에 녹지도 않고, 세탁물과 섞이지도 않지만, 빨래통 안을 이리저리 돌면서 빨래가 서로 엉키는 것을 막아준다. 내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방식은 이런게 아닐까.


4.

나의 능력치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아마도 일부 몇개는 엄청나게 높고, 나머지는 엄청나게 낮을 것이다. 사람이 전인격으로 두루두루 잘하는게 아니라, 잘하는 것만 잘하고 나머지는 정말로 못한다.

내가 딱 찍은 것, 정말로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욕망이 드는 것은 정말로 완전히 끝까지 파고들어서 천재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나머지는 별로 의욕도 없고 정말 의무감으로 겨우겨우 최소한만 채울 뿐이다.

이런 좁은 장점과 넓은 단점으로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럴 경우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는데,

1. 장점을 최대한 키운다
2. 단점을 최소한 보완한다

이 두가지 길이다. 근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를 잘 써야 한다. 장점을 키우는 것과, 단점을 보완하는 것 중에 어느 쪽에 집중을 해야 할까?

정답은 1번이다. 어차피 우리 같은 자폐적인 사람들은 단점을 아무리 보완해도 한계가 있다. 반면 장점을 키우는 것은 끝을 모른다. 그러므로 1번과 2번을 다 하되, 1번 위주로 하면서 2번도 최소한만 곁들여준다.

이렇게 전략적으로 접근해서 장점 위주로 자신을 내보이면, 우리에게도 살아날 구멍이 보일 것이다. 그렇게 실패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작은 성공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가면, 우리의 인생도 꽤 살만한 인생이 될 것이다.


5.

막연한 느낌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거. 어떤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나는 어쩌면 그런 느낌으로 지금껏 버텨왔는지 모른다.

나는 내가 좋다. 딱히 잘생기거나, 엄청 천재인 건 아니지만, 그냥 느낌에, 왠지 모르게 난 어찌어찌 잘 될 것 같다. 물론 실제로 해보면 잘 안되고, 엄청 헤메고 고생하지만, 그래도 왠지 그러다가 결국에는 잘 될 것 같다.

노력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다. 나와 달리 평소에 그냥 기본적으로 우울한 기분이 드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도 우울하려고 노력한 건 아닐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쩌다보니 나는 이렇게 낙천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참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여러분에게 전혀 도움이 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을 할 뿐이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나의 머리 한 쪽이 기우뚱하고 기울어졌는지 나는 모른다. 왜 이렇게 항상 좋은 날이 올 것만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이해가 안된다. 그냥 축복이다.


6.

나에게는 저주도 있고 축복도 있다. 이 두개의 무거운 공은 왼쪽과 오른쪽에서 나의 몸을 크게 흔든다.아주 조금만 조종을 잘못해도 나의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듯이 출렁거린다. 조종간을 꽉 잡고 쓰러지지 않으려고 바득바득 버틴다. 이것이 나의 인생이다.

잘만 하면 잘 될 것 같고, 까딱하면 완전 망할 것 같다. 모 아니면 도다. 너무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그러다가 결국에는 잘 될 것 같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조금씩 앞으로 발을 내민다. 그 팽팽한 위태로움이 나를 지탱한다.

저기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3% 여러분, 내가 결국에 어떻게 되던 끝까지 여기서 보여드릴테니, 흥미를 잃지 마시고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나는 어떤 형태로던 나를 표현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과 나의 약속입니다. 뭐 결국에는 잘 되겠지만요, 스포일러를 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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