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의 이해
07/05/18 14:45(년/월/일 시:분)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xacdo.net/tt/index.php?pl=632
요즘 배우는 영어회화 교재에서 내가 제일 어려운 부분이, 사실(Fact)과 의견(Opinion)을 구분하는 거다. 이건 영어라서 어려운 게 아니라, 한국어로 해도 어려운 문제다.
요걸 좀 더 공부하다 보니까,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문제는 사실명제, 가치명제, 정책명제를 구분하는 문제와 같았다. 즉 이것은 고대 희랍 철학의 이데아(Idea)와 독사(Doxa)를 구분하는 문제와 같다. 이렇게 설명하면 어려우니까, 실제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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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다. (사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간이 흘러도, 공간이 바뀌어도 내가 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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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코를 좋아한다. (의견)
이것은 변할 수 있는 의견이다. 이것은 멕시코 음식인 타코에 대한 나의 감정의 표현일 뿐이라서, 언제고 기분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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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한다.
신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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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또한 증명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러므로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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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한다.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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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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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사실)
물론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을 믿는다면 적어도 그 사람에게 이 문장은 참일 것이다. 하지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도 존재하고, 신이 없다고 간주하는 무신론 또한 신앙과 같은 방식으로 동작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른다"가 정답이다.
그렇다면 이건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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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다.
우리는 현재 과학적인 탐구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2천년 전이라면 어떨까. 아직 지구가 둥근지 평평한지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던 시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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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다.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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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평평하다.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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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둥근지 평평한지 알 수 없다. (사실)
이었을 것이다.
즉 사실과 의견은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속한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계속 변한다. 언어는 문맥 안에서만 동작한다. 세상과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말은 없다. 모든 사실과 의견은 사회적이다.
자, 다시한번 맨 처음 문장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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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다.
과거에는 이 문장이 100% 무조건 사실이고, 앞으로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같이 성전환 수술이 가능한 시대라면, 특히 하리수의 경우라면, 이 명제는 10년 전과 지금이 다른,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유동적인 의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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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수는 여자다.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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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수는 남자다. (의견?)
굳이 내가 의견 옆에 물음표를 붙인 이유는, 사람에 따라서 하리수가 남자라고 철썩같이 믿는 사람도 있고, 여자라고 믿는 사람도 있어서다. 즉 이 문제는 사람에 따라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의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 따라 사실과 의견이 달라지는 것이다.
즉 신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하는 종교적인 문제 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하리수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하는 너무나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문제 까지도 개인적인 믿음이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 여자 말고 다른 말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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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수는 트랜스젠더다. (사실)
하리수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여전히 사람에 따라 생각하는 게 다르지만, 하리수가 트랜스젠더라는 건 누구나 100% 동의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실이다. 즉 우리는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만들어서 사실명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사실이나 의견이냐 하는 문제는,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사회적으로 계속 변하므로, 단어를 사용할때는 그 단어가 사회적으로 가지는 의미에 관심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