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06/08/21 23:52(년/월/일 시:분)
개고기는 소화가 아주 잘 된다. 연하지는 않지만 부드럽고, 먹으면 속이 편하다. 그래서 더운 여름날, 지치고 힘들어서 소화도 잘 안 될것 같은 날씨에 개고기를 한번씩 먹어주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먹는 삼계탕도 소화가 잘 된다. 왜 감기 걸렸을때 닭고기 수프를 먹지 않는가.
그래서, RPG 게임에서 체력이 바닥났을때 부활 아이템으로 엘릭서를 간직하고 다니는 것처럼, 혹은 병드신 노모가 만약을 대비해서 찬장에 우황청심원을 고이 두는 것처럼, 집집마다 개를 한마리씩 키우다가 여름이 되면 뱃속으로 사라지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한가지 의문. 과연 그들은 (먹기위해 키우는) 개를 귀여워하지 않았을까? 약간은 애완의 목적도 있지 않았을까? 자, 일단 성남 모란 개시장의 야만적인 분위기는 잠시 제껴놓고, 아파트에서 키우는 미니어처 애완견의 분위기도 잠시 제껴놓고, 딱 1800년대 한국 농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집집마다 개를 키우고 있다. 지저분한 개집에,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쓰레기를 물에 말아주는 것이 고작이지만, 자꾸 보다보니 정도 들고, 모르는 사람이 오면 짖기도 하고, 눈이 오면 발이 시려워 동동 구르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도 어째 소나 말을 키우는 것과는 다른 각별한 정이 들 것이다. 비록 복날이면 몸 보신으로 먹기는 하지만, 그녀석이 없어지고 나면 어쩐지 집이 적적해진 것 같아서 또 한마리를 키우는 거지. 여기까지가 나의 추측.
아니 그래도 복날에 개 패듯 학대하는 건 그렇지 않나, 한다면 그것도 일단 제껴놓자. 물론 개를 패서 먹는 건, 죽기 직전에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켜서 정력에 도움이 되려는 것도 있겠고, 육질을 연하게 만드는 것도 있겠고, 정말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용일수도 있겠다. 아니 그런데 개고기를 중국이나 미국에서도 수입해 먹는 판에, 모든 개고기를 패서 먹는 건 아니지 않는가.
내가 궁금한건 과연 애완과 식용이 동시에 가능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이렇게 키울땐 귀엽게 키우다가 먹을땐 또 먹는,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문화가 궁금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개를 먹는 것이 애완의 연장선 상에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즉 복날이 올때마다 귀엽게 키우던 개를 먹음으로서, 애완의 한 사이클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만은.
물론 현대에 와서는 애완견과 식용견이 엄격하게 분리되는 추세다. 나 같은 경우도 아파트에서 개를 그것도 다섯마리나 길러봤지만, 아파트용으로 개조한 미니어처를, 그 조막만한 먹을 것도 없는 것을 잡아먹은 적은 없다. 나는 개를 귀여워하는 한편, 개고기도 좋아해서 굳이 복날이 아니더라도 즐겨 먹었다. 물론 개고기 특유의 노린내는 요리를 잘 해야 없어지고, 진짜로 미국산이 아닐까 의심되는 형편없는 육질의 고기도 있었지만, 어쨌든 개고기는 쇠고기나 돼지고기에서는 맛 볼수 없는 특유의 부드러움이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키우던 개라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개와 나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복날이면 언제든지 끝나버릴 수 있는 일종의 계약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 것에는 일종의 축제의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슬퍼할 이유는 없다. 이것은 일종의 의식이다.
그리고 복날이 지나면, 남은 가을, 겨울, 봄, 여름동안 남은 개들과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지낼 것이다. 마치 RPG게임에서 바닥난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엘릭서를 주머니속에 고이 간직하고 다니는 것처럼 예뻐하며.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 두번째 이유다. 애완의 완성으로서 먹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