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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들 - 스토리

은혜 갚은 닭둘기

06/06/08 15:31(년/월/일 시:분)

옛날 옛날에 한강시민공원에 한 노숙자가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노숙자에게는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구걸한 돈으로 머리가 깨지도록 술을 마시고 차가운 바닥에 머리를 기댔더니, 노숙자의 앞에 자기보다 100배는 더 꼬질꼬질한 닭둘기가 날지도 않고 어적어적 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노숙자는 더러운 건 자신을 따라갈 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기보다 훨씬 더러운 닭둘기의 모습을 보자 괜시리 질투가 나버렸습니다. 그래서 홧김에 화장실로 싸들고 가서 있는 힘을 다해 박박 씻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껏 씻겨 놓으니까 제법 묵직하고 살도 디룩디룩 찐 것이, 구워먹으면 맛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불을 피우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골고루 구워보려고 했는데 닭둘기가 그만 평소에 안 하던 날개짓을 하며 저 하늘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닭둘기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아아, 저 사람은 나의 생명의 은인! 더러운 내 몸을 깨끗이 씻기이고, 불가에서 따뜻하게 말려주기까지 하셨다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으리요?"

그날부터 닭둘기는 노숙자의 머리맡에 자기가 좋아하는 토사물, 음식 쓰레기 등을 매일같이 물어다 주었습니다. 때론 진드기가 가득한 깃털로 노숙자의 뺨을 가만히 부비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노숙자와 결혼할 생각도 하며, 그러면 아이는 어떻게 낳지? 라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놈의 멍청한 닭둘기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강변북로에서 뒤뚱뒤뚱 걷다가 그만 한쪽 다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차 바퀴에 다리가 뜯겨 나가는 끔찍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닭둘기는 오로지 한 생각 뿐이었습니다. "저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를 노숙자님께 물어다 드려야 할 텐데… 흑."

닭둘기는 아픈 몸을 이끌고 기어코 지렁이를 물어다 노숙자의 머리맡에 가만히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뒤뚱뒤뚱 걸어가 노숙자의 뺨에 가만히 지저분한 깃털을 부비댔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노숙자가 닭둘기를 두 손으로 꽈악 안아주었습니다.

"노숙자님…"

노숙자는 두 손으로 닭둘기를 단단히 잡고, 항문에 나무젓가락을 꽂아 불에 구워먹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진작에 안 먹었을까 감탄하며 노숙자는 배부른 한 끼 식사를 마치고 행복했습니다.

2006년 7월 15일 결말 수정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311

  • 제목: 은혜 갚은 닭둘기 결말 수정
    Tracked from 작도닷넷 06/07/15 13:12 삭제
    # 원래 결말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진작에 안 먹었을까 감탄하며 배부른 한 끼 식사를 마친 노숙자는, 그날 이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일주일 만에 죽었습..
  • oseb 06/06/08 15:39  덧글 수정/삭제
    노숙자씨가 지병이 있었나 보군요.
    닭둘기 고기가 그 병을 악화시켜서 결국 저렇게 되어 버렸나 봅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
    • xacdo 06/07/15 12:52  수정/삭제
      생각해보니 노숙자가 안 죽는 편이 나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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