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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들 - 스토리

프리 키스

09/08/01 01:41(년/월/일 시:분)



더운 오후 놀이터 벤치에 한 남자가 묶여 있었다.

여자는 이상한 기분으로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남자는 "프리 키스 - 마음대로 키스해주세요" 라고 적힌 패널을 목에 걸고 있었고, 팔과 다리는 벤치 뒤로 단단하게 묶여 있었고, 얼굴에는 까만 매직을 칠한 물안경을 끼고 있었다.

여자는 주위를 살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어느 저질 케이블TV의 몰래 카메라일지도? 하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여자는 벤치 앞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남자의 머리카락, 턱, 목젖, 가슴, 팔, 골반, 허벅지, 종아리를 샅샅히 핥듯이 천천히 조용하게 훑어내렸다. 여자는 긴장된 한숨을 쉬었다. 마치 범죄를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또각. 한 발을 내딛었다. 또각. 아직도 약간 먼 듯 했다. 또각. 눈 앞에 남자가 보였다. 여자는 허리를 굽혀서 조심스럽게 남자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남자는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입술의 떨림이 기분 좋게 여자를 간지럽혔다. 남자의 더운 입김이 불쾌하게 얼굴을 데웠다.

여자는 따끈하고 끈적끈적한 혀를 쪽 빨았다. 도톰한 아랫입술을 빨고 넙적한 윗입술을 빨았다. 여자는 남자의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켜 목구멍으로 넘겼다. 남자의 침은 이상할 정도로 단 맛이 났다. 남자의 냄새를 맡고 여자는 가벼운 현기증이 났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주저앉을 것 같았다.

그 때 갑자기 여자는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으르 느꼈다. 여자는 무서운 생각에 놀이터 밖으로 도망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참을 달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빠르게 뛰었다. 부끄럽고 눈물이 나서 죽을 것 같았다.

몇 시간을 방황하다가 노을이 질 무렵, 여자는 놀이터에 돌아왔다. 여전히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고, 아무도 없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여자는 꿈을 꾼 것 같았다.

벤치에는 조그만 종이 박스가 있었다. 겉에는 매직으로 "마음대로 키스해주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아까 봤던 물안경에 칠한 매직과 같은 것 같았다. 박스를 열어보니 비닐 포장된 실리콘 입술이 들어 있었다. 빨판이 있어서 유리에 붙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여자는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지만, 몰래 카메라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핸드백에 실리콘 입술을 넣고 황급히 놀이터를 빠져 나왔다.

여자는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실리콘 입술을 화장대 거울에 붙였다. 아까 남자가 벤치에 앉아있던 그 높이를 기억하며 몇 번이나 붙였다 떼었다 했다.

여자는 눈을 감았다. 온 세상이 까맸다. 아까 남자가 이런 기분이었겠지. 여자는 그때 기분이 생각나서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여자는 아까와 같이 천천히 허리를 굽혀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혀를 빨고, 아랫입술을 빨고, 윗입술을 빨았다. 무척이나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기분이었다.

한참을 빨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떠보니 거울 속의 여자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실리콘 입술을 빨고 있었다. 여자는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무서웠다. 비명을 지르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여자는 그 채로 주저앉아서 침과 눈물 범벅이 되어 무척이나 서럽게 한참을 울었다.


다음 날 아침, 여자는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났다.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화장대 거울에는 어제의 실리콘 입술이 태연하게 붙어 있었다. 여자는 그 입술에 매달려 추잡스러울 정도로 더러운 모닝 키스를 했다.

그런데 그 입술에서는 어제는 맡지 못했던 실리콘 냄새가 심하게 났다. 여자는 화장실에서 실리콘 입술을 깨끗히 씼고, 아끼던 불가리 쁘띠 마망 향수를 한 방울 발랐다. 그리고 천천히 정성스럽게 입술을 핥으니 좋은 향기가 났다. 여자는 키스가 끝난 실리콘 입술을 물티슈로 꼼꼼히 닦았다. 그리고 화장대 거울에 안 떨어지게 잘 붙이고 출근을 했다.

여자는 출근길이 즐거웠다. 퇴근하면 집에서 실리콘 입술이 자기를 맞아 줄 생각을 하니 무척이나 가슴이 설렜다. 그 생각에 그만, 어쩌면 오늘도 벤치에 남자가 묶여있을지도 모르는 놀이터를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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