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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먹을거

회기동 경발원 - 깐풍기

12/01/21 06:56(년/월/일 시:분)

최근 2년간 여자친구와 매주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맛있는 음식이란 실상 단순하다는 것이다. 좋은 재료에 적절히 간만 해도 맛있다. 정성도 상관없고, 화학조미료도 상관없다. 심지어는 청결함이나 친절함도 상관없다. 이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맛집이 바로 회기동 경발원이다.

경발원은 조경규 - 차이니즈 봉봉클럽에 나와서 찾아갔다. 일단 가게 밖에서부터 맛있는 중국집의 포스가 느껴졌다. 오래됐고, 외진 곳에 있었고, 헐었고, 꼬질꼬질했다. 도대체 언제 협찬받았는지 모를 빙그레 냉장고를, 빙그레 로고가 햇빛에 다 바래도록 쓰고 있었다. 식탁은 걸레질을 해도 왠지 끈적끈적했고, 물컵은 설거지를 한 것 같긴 한데 왠지 모르게 약간 뿌연 감이 있었다.

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중국집은 이렇게 중국집 특유의 꼬질꼬질한 맛이 있어야, 음식에서도 중화요리 특유의 지릿한 맛이 난다는 것을 알았기에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맛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마침 갓 나온 깐풍기의 향이 예사롭지 않았다. 고소하고 짭짤하게 닭 볶은 향이 가게 가득히 퍼졌다. 냄새만 맡아도 군침이 돌았다. 도저히 다른 메뉴를 시킬 수가 없었다. 거부할 수 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깐풍기를 시키고 말았다.

자,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도대체 주문을 받은 건지 아닌지 도통 모를 정도로 퉁명스럽고 무관심하게 주문을 받고 나서, 주방에서는 꽤 나이가 드신 할아버지 주방장이 아주 느리게 닭고기를 다듬기 시작했다. 탁, 탁, 탁... 그 느린 칼질 소리가 주방을 넘어 식탁까지 들렸다. 세월아 네월아 아주 천천히 꼼꼼하게, 우리는 주문을 하고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경발원을 여러 번 가봤지만 단 한번도 깐풍기가 40분 이내에 나온 적이 없었다. 가끔은 1시간 이상을 기다린 적도 있다. 한산한 시간을 일부러 골라 가도 이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문을 받고 나서 닭을 손질하기 시작하니까. 게다가 할아버지 주방장의 손이 정말로 느리니까.

주문 후 닭을 손질하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이다. 미리 다듬어놓지 않으니 그만큼 닭이 신선하니까. 하지만 언제나 붐비는 소문난 중국집에, 주방장도 할아버지 혼자서, 정말 고집스럽게 천천히 꼼꼼하게 닭을 다듬는 모습을 40분 이상 보고 있자면 때론 답답한 마음이 든다. 나도 배가 고프고, 빨리 먹고 싶고, 게다가 식당에는 다른 사람들이 먹는 깐풍기 냄새가 아주 고소하고 짭짤해서 군침이 도는데, 여기서 냄새만 맡으면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 고문이 따로 없다.

게다가 서비스도 정말 불친절하다. 원래 맛있는 중국집이 불친절하긴 하지만, 여긴 정말 그 중에서도 정말 불친절하다. 난로가 카운터 가까이에 있어서, 가게 주인은 따뜻할지 몰라도 손님은 다소 춥다. 메뉴를 고를 때도 늦게 나오는 메뉴를 고르면 얼마나 눈치를 주는지 모른다. 게다가 중간에 음식을 추가라도 할려 치면 진심으로 짜증을 낸다. 아니 우리는 빨리 문 닫고 집에 가고 싶은데, 왜 자꾸 추가 주문을 해? 물론 말을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마음의 소리가 그렇게 들린다. 장사할 생각도 없고, 돈 벌 생각도 없다.

지난 번에는 단체 손님이 온 적이 있었다. 근처 교회 예배라도 끝났는지, 무척 친절해보이고 독실해보이는 일행이 8명 쯤 들어왔다. 그러자 주인 할머니가 문 닫을 시간 다 됐다고 내쫒으려는 것이었다. 일행의 대표로 보이는 아저씨가 정말 굽신굽신 사정을 해서 겨우 주문을 받아 주었다. 그것도 원래는 안에 큰 방이 있는데, 여기도 안 내주다가 아저씨가 웃는 얼굴로 사정사정 하니까 겨우 방을 내줬다. 와...

그러더니 주인 할머니가 주방에 가서 주방장 할아버지랑 큰 소리로 싸우는 것이었다. 중국말이라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왜 이렇게 많은 손님을 마지막에 받았냐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 집은 장사를 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그러더니 주방장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투덜대면서 느릿느릿 닭고기를 다듬기 시작했다. 감정이 실린 칼질 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왠지, 홀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 모두다 속닥거리며 기가 죽어서 조용히 식사를 했다.

아니 손님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구박을 받아가면서 먹어야 하나?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겠지만, 막상 깐풍기가 나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정말 맛있고, 단 한 입만 먹어도 맛있다. 취향도 타는 맛도 아니고, 그 누가 먹어도 확실히 맛있다고 느낄 만큼 간도 강하다. 그 닭 조각을 한 입 먹으면, 지금까지 기다리며 받았던 온갖 구박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일단 재료가 신선하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다. 닭고기를 미리 손질해놓아서 수분이 마르지도 않고, 탱탱하고 신선하다. 이것을 소금과 미원을 잔뜩 넣어서 아주 짭조름하게 간을 하고, 쌉쌀한 고추씨와 매운 태국고추와 아삭아삭한 부추를 강한 불에 볶아낸다. 닭고기에는 튀김옷도 입히지 않고, 매콤한 소스나 고추기름도 넣지 않는다. 아주 순백의, 불맛과 미원맛이 가득한,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찰진, 그리고 아삭아삭한 부추를 곁들인 깐풍기가 나왔다.

나는 모름지기 외식은 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트륨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나쁘긴 하지만, 아니 일부러 맛있는 걸 먹으러 밖에 나왔는데, 확실히 입에 맛있다는 느낌이 드려면 소금을 팍팍 치는 수밖에 없다. 평소에 덜 짜게 먹고, 이번에 물 좀 많이 먹으면 되지, 굳이 외식하러 나왔는데 저염식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미료도 마찬가지다. 나는 조미료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다소 몸에 나쁘긴 하겠지만, 그건 아마 소금을 많이 먹으면 몸에 나쁜 것과 비슷할 것이다. 조미료 중에서도 특히 미원, MSG라고도 불리는 L-글루타민산나트륨은, 특히 중국집 특유의 지릿한 맛을 내는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조미료다. 짜장면에도 한 웅큼, 짬뽕에도 한 웅큼, 깐풍기에도 한 웅큼. 절대로 아껴서는 안된다.

물론 오래된 고기나 질이 나쁜 고기의 썩어가는 향을 감추기 위해 조미료를 쓰는 것은 싫다. 그건 확실히 맛이 없다. 조미료를 써서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재료 자체가 맛이 없어서 조미료를 써도 맛이 없는 것이다. 반면, 이 경발원 깐풍기처럼 아주 좋은 식재료에 미원을 아낌없이 팍팍 쓰면, 그냥 먹어도 맛있을 닭고기의 맛이 몇 배는 더 맛있어진다. 이런 조미료는 좋다.

얼마나 미원을 많이 넣었는지, 혀가 얼얼할 지경이다. 하지만 한 입만 먹어도 맛있고, 반 쯤 먹어서 식어도 맛있고, 마지막까지 계속 맛있다. 대충 먹어도 확실히 맛있고, 꼼꼼히 따져가며 먹어도 역시 맛있다. 정말 강력하게 맛있다. 특히 보통은 쌉쌀하고 맛이 복잡해서 발라내 버리는 고추씨를 이 단순한 맛에 얹어 놓으니, 감칠맛 또한 풍부하다.

물론 조미료를 안 쓰고 맛있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하동관 곰탕이다. 그냥 쇠고기를 슴슴하게 끓여냈지만, 충분히 맛있고 몸에도 좋다. 나는 심지어는 이것을 먹으면 항상 피부가 뽀얗게 윤기있어진다. 물론 몇 시간 가지는 않지만, 눈으로 보일 정도로 몸에 받는다.

반면 경발원 깐풍기는 몸에 별로 좋지는 않지만 확실히 한 순간에 맛있다고 느낀다. 아무리 불친절하고, 오래 기다리고, 춥고, 꼬질꼬질하고 끈적끈적해도, 너무 강력하게 맛있기 때문에 그 모두를 상쇄할만 하다. 심지어는 너무 간이 쎄서, 다음날이면 항상 설사를 하곤 하지만, 그래도 왠지 1년에 한번 쯤은 고생을 하더라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 맛이다. 모름지기 외식이란, 일부러 나가서 사먹는 음식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 경발원 주문 팁: 메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꼭 깐풍기와 짬뽕만 시키세요. 예를 들어 삼선짬뽕은 제가 2년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한 번도 주문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혹시 주인 할머니와 친해지면 모를까요.

http://hsong.egloos.com/1749029
[회기역] 깐풍기의 맛! '경발원'
내공있는 중국집들의 몇 가지 특징이 있죠. 배달은 안 하고, 친절하지 않고, 영업시간은 마음대로이고, 오래 되고, 인테리어에 신경 안 쓰고...등등

http://hsong.egloos.com/2215390
[회기역] 경발원 - 깐풍기의 지존
문한 메뉴가 나오는데, 최소 40분 이상 걸립니다. 한 시간 걸릴 때도... 빨리 빨리 먹고 일어서는 것에 익숙한 분들은 당황하실 수도... 주문하고 음식이 바로 나오면 시간을 아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미리 만들어 둔 음식을 데워 나온다고 생각하면 맛있기가 힘들겠죠. (패밀리 레스토랑) 깐풍기를 주문하면 그 때서야 닭 손질이 시작됩니다. ㅋ 요리 다 먹고 식사 주문하면 또 다시 40분을 기다려야 하니, 한 번에 주문하세요.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2368

  • ㅇㅅㅇ 12/01/25 23:04  덧글 수정/삭제
    가끔 생각나는 맛이지만 어느정도 재력이 된다면 이곳 말고도 신라호텔 팔선이라는 좋은곳이 있다는걸 기억해야 하는곳 같이요. 오랜만에 밥사고 욕먹는 상쾌한 경험을-_-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이라던가 어디 사모님 이라던가 이런분과 함께 가면 거의 백퍼센트 실패할듯.
    • xacdo 12/04/02 04:40  수정/삭제
      말씀 듣고 팔선 다녀왔습니다. 접대용으로 정말 좋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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