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2/10/09 00:38(년/월/일 시:분)
어제는 늦게까지 일을 했다. 내가 뭔가 사소한 실수를 저질러서, 관련된 몇 분이 계속 남아있어야 했다. 이미 지난 주 토요일에 끝났어야 하는 일을 질질 끌어서 월요일 밤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선배님들이 다들 성격이 좋으셔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 분들도 이번 주말을 꼬박 회사에 붙들려있었다. 그것도 나 때문에. 그 압박감이 다양한 형태로 내게 전해졌다. 심한 죄책감과 모멸감을 느꼈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일이 힘들고 고되기도 했고, 솔직히 4년차가 하기에는 과중한 업무이기도 했다. 그만큼 회사에서 나를 믿고 어려운 업무를 시킨 것도 있지만, 인정받는다는 성취감과 동시에 그 업무의 과중함은 동일한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매일 매일 완전히 지쳐서,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여 퇴근하고 출근하곤 했다.
이렇게 일이 힘든 것은 회사 다닌 이래로 처음이어었다. 이제 4년차에 불과하지만, 3년차까지는 솔직히 일이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나는 컴퓨터공학을 좋아했고, 국민학교때부터 대학교때까지 정말로 엄청나게 몰입해서 컴퓨터를 했다. 회사 일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생각해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IT 기술적인 측면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업무가 바꼈다. SCM이라고 해서, 컴퓨터 공학과 산업 공학이 접목되는 분야였다. IT 기술이 생각만큼 중요하게 쓰이지 않고, 그보다는 생산부터 판매까지 물류 흐름이 더 중요했다. 나에게는 생소한 분야였고, 그만큼 잘하지 못했다. 배우는게 빠른 편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충분히 빠른 것은 아니었다.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올해 3월 새 업무를 시작한 후로, 매달 말 마감을 할 때마다 점점 난이도가 높아졌다. 내가 있는 사업부가 마침 이런 업무를 처음 시작한지라, IT를 지원하는 내 입장이나, 실제로 이 업무를 담당하는 현업이나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매달 하면서 조금씩 새로 알아가는 형편이었다. 그렇게 알면 알수록 지금의 부족한 점이 낱낱이 드러났고, 매달 그런 구멍을 메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긴급한 문제부터 근본적인 문제까지,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었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게다가 나는 배우는 게 남들보다 느린 편이라, 실력이 느는 것도 느렸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겨우 매달려서 간신히 버텼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싶은 생각도 자주 들었다. 가끔은 영혼까지 완전히 소진되는 것 같았다. 의욕이 바닥나고, 열정이 식었다. 빈 회의실에 혼자 들어가 울기도 했고, 화를 내기도 했고, 상담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회사는 이런 마음 관리를 잘 하는 편이라, 많은 선배님들이 본인들도 힘든 와중에도 많이 신경을 써 주셨다. 그러면 잠깐은 버틸 수 있었다. 일이 힘들어도 사람이 좋으면 버틸 수 있다는 얘기가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내가 잘 못하는게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컴퓨터 공학이 아니라, 산업 공학을 파는 것이 과연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계속 나에게 질문했다.
1차적인 나의 답은 이렇다. 일단은 해보자. 그리고 그 다음은 잘 하게 된 다음에 생각하자.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기회, 하나의 업무를 순전히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기회를 얻은 것이 무척이나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버리기 아까운 기회다. 그래서 일단은 해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힘든 건 힘든거다. 아오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다. 내가 이걸 정말 언제까지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