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13/04/19 12:22(년/월/일 시:분)
클리앙, OKJSP 등의 IT업계 커뮤니티를 다녀보면 다들 일하는 것에 불만이 많다. 가장 큰 투정은 역시 뭐니뭐니해도 야근이다. 지금 이 순간 나도 야근을 하고 있다. 굳이 IT만의 문제일까? 오늘도 서울의 밤하늘을 수많은 회사의 형광등들이 환하게 밝게 채우고 있다.
너무나 혹사당해 폐를 잘라낸 개발자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3개월씩 주말에도 집에 못 가서 아내와 대판 싸운 이야기, 완전 일중독이 된 나머지 암을 얻는 등의 이야기는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서 숱하게 찾을 수 있다. 나도 퇴근길에 우리 회사에 여전히 짱짱하게 켜진 사무실 불빛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든다. 누군가는 저기서 나처럼 고생하고 있겠지? 경부고속도로를 탈때 서울IC 부근의 NHN 그린팩토리도 거의 항상 환하다. 지난번 네이버미 오픈때는 정말 명절때까지 환한 모습이 참 안타깝고 그랬다. 그래도 국내 최고의 IT회사인데도 이렇게 힘들게 일하다니.
그래서 야근이 나쁜 것인가? 건강에 해롭고, 단란한 가정 생활을 깨트리고, 일과 삶의 균형을 깨트리는 야근이 과연 직장생활의 가장 큰 문제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오래 일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불필요한 야근은 물론 사절이지만, 정말 일이 많아서 늦게까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일을 잘 끝내느냐다. 일의 질, 결과물의 질이 중요하다. 정말 일을 잘 하려면, 시간이 많이 드는 경우가 많다. 좀 더 꼼꼼히, 하나하나 따져보고, 이것도 체크하고 저것도 체크하고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일을 하다보면 중간에 피치못하게 늦어지는 경우도 생기고, 깜빡하고 빠트린 것도 생기는데 이런걸 만회하려면 야근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그리고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봐도 얼마나 걸릴지 예상이 안되는 일의 경우에도 일단 밤을 새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다보면 언젠가는 실마리가 풀리기 마련이다.
일은 대충 해서는 안된다. 정말로 아주 잘 해야 된다. 그래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기도 하고, 결과물을 보는 내 마음이 보람찬 것도 있다. 이왕 고생할거면 보람차게 고생해야지, 고생하고 실망스러운 것도 싫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면, 한 3시간만 더 일해도 훨씬 잘될 것 같으면,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기울어지기 마련이지 않을까.
대학교 과제할때도 안 풀리는 문제가 있으면 새벽까지 붙들고 늘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뭔가 잘 안 풀리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홀로 사무실에 남아있기도 한다. 그래서 밤 늦은 시간 그 망할 놈의 문제를 풀고 나면 상쾌한 피로감에 중독이 되버릴 것만 같다. 이런 내가 나쁜 건가? 확실히 건강에는 안 좋은 것 같다. 가정도 망가진다. 박노자 교수님이 보기에도 정말 나쁜 노동자일 것이다.
영주 닐슨이 "일과 삶의 조화는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가장 최선은 일과 삶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정교한 천칭에 달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과 삶이 느슨하게 합쳐져서 어디까지 일이고 어디까지 삶인지가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이던 삶이던 전력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고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http://seoultowallstreet.com/blog/2013/03/05/why-there-are-not-many-women-in-finance-industry/
영주 닐슨;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의 밸런스를 찾는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가정생활을 많이 하려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밸런스는 없다.
http://xacdo.net/tt/index.php?pl=2001
『 일과 삶의 합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