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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들 - 스토리

라면도 살아있다

06/06/04 11:52(년/월/일 시:분)

그대여, 혹시 유통기한 지난 라면을 먹어본 적 있는가.
나는 항상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을 먹어왔다.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은 끓여도 얌전히 끓고 만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단순히 밀가루 덩어리가 물에 담겨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오늘, 나는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신선한 라면을 구하게 되었다.
나는 끓는 물에 스프를 넣고 신선한 라면을 넣었다.
그랬더니, 라면은 잠시 죽은 척을 하더니 곧 뜨거워 요동을 쳤다.
물이 너무 뜨거워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다.
5분이 지나기까지 끓는 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틀대며 몸부림을 쳤다.
나는 무서워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 라면은 생물이었던 것이다.
외계에서 온 그들은 사육되어 우리의 식량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라면이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높은 칼로리를 낼 수 있는 식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자라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렇게 싼 가격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라면 면발은 그들의 몸체다.
스프는 그들의 내장이다.
탄수화물로 구성된 그들의 몸은 말려져 각 가정에 공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라면을 끓일 때 몸부림치는 라면의 요동을 그저 못 본 척하고 지내왔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것이 정부기관에 의한 일종의 세뇌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우리가 라면이 끓는 물에서 요동을 치는 광경도 잔인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그건 우리가 TV를 보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TV의 영상은 교묘하게 우리의 생각에서 라면을 끓이는 행위가 잔인하다고 하는 생각을 지워버린다.
되풀이되는 광고와 9시 뉴스, 허준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심지어는 라면의 살려달라는 그 절규에 가득 찬 몸부림을 한입에 쪽 빨아먹는 광경도 연소자 관람가로 방영된다.
어떤 광고는 면발에 대한 학대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수타면)

우리의 라면에 대한 가혹한 사육은 현대에 와서 결국 문제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환경 호르몬이다.
라면은 지배자인 인간을 죽이기 위해 교묘히 자기의 몸에 환경 호르몬을 내장했다.
그리고 마치 라면용기에서 환경 호르몬이 나오는 것처럼 앵커의 입을 조작했다.
그 후 바로 다른 뉴스를 보여줘 우리가 알고도 라면을 계속 먹도록 유도했다.
그들의 전략은 적중할 것이다. 우리는 생식기능이 줄어들어 인구가 감소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라면의 소비가 줄어들 것이다.
자기의 몸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라면에 대한 탄압을 막아보려 하는 그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우리는, 라면이 가축화된 현실을 바꿀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라면의 소비를 라면이 아닌 뉴면으로 바꿀 재간은 있지 않겠는가?

"라면이 아니라 뉴면입니다!" - 당시 CF 문구.

나는 벌써 1개월 이상 라면 대신 뉴면을 먹고 있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뉴면에는 라면 대신 [영양강화 밀가루]라는 것이 들어간다고 한다.
또한 음성이라는 곳에서 재배한 고추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는 금성이나 화성같이 태양계 내에서 재배한 것이 아니라서 안심해도 될 것 같다. (태양계 내에 음성이라는 별은 없다)

물론 뉴면이 라면보다 여러가지 면에 부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계속 라면을 먹으면서 그들에 대한 피해를 지속시키는 것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의식개혁이 절실히 요구된다.
뉴면의 대체소비를 통해 라면소비근절운동에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내도록 하자.

2000년 7월 6일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306

  • 총각 06/06/04 12:40  덧글 수정/삭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제 라면은 부셔 먹어야겠군요.
    생각해보니 끓이는건 정말 잔인한거 같아요.
    • xacdo 06/06/04 13:17  수정/삭제
      끓이는 시간을 단축하면 면발이 꼬들꼬들한 이유, 이젠 알 수 있어요.
  • JD 06/06/04 12:53  덧글 수정/삭제
    어렸을때 비슷한 내용의 국산 만화가 있었는데.
    하마가 주인공인데, 라면이 외계인이고 동면 상태로 지구에 보내졌다가 끓는 물에 들어가면 살아나 지구를 정복하는 내용.
    결국 주인공이 TV뉴스에서 라면을 끓일때는 부셔서 넣으라는 대국민 방송을 통해 지구는 평화가.
  • 당돌쾌남 06/06/04 13:41  덧글 수정/삭제
    아! 그럼!!!! 라면 봉지는 우주선이었던 거군요.
    • xacdo 06/06/04 16:34  수정/삭제
      그들의 우주선은 냄비입니다. 봉지는 인간이 채운 구속구일뿐.
  • 태공 06/06/04 16:50  덧글 수정/삭제
    유통기한 지난 라면은 정말 맛이 이상해
  • 이수 09/02/16 15:30  덧글 수정/삭제
    죄송합니다만 그 만화 제목 좀 알 ㅅ ㅜ있을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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