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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음악

이적 대 바그너 - 그들은 기독교인이 되었다

06/05/13 15:50(년/월/일 시:분)

패닉 1집 2집은 명반이다. 이 말은 전혀 비약이 아니다. 패닉이 보여줬던 파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대중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는, 삐삐밴드 1집과 더불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하지만 그 후로 나온 패닉 3집 4집에서 그들은 크게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완성도 높은 음악이었고 상업적 대중적으로 크게 나쁘지 않을 만큼 성공했지만, 예전의 파격은 완전히 사라졌다. 패닉은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들의 솔로 앨범을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때론 나는 CCM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심지어는 과거를 후회하고 회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이적 2집의 '하늘을 달리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다.

하늘을 달리다
작사 작곡 노래 이적

두근거렸지 누군가 나의 뒤를 쫓고 있었고
검은 절벽 끝 더 이상 발 디딜 곳 하나 없었지
자꾸 목이 메어 간절히 네 이름을 되뇌었을 때
귓가에 울리는 그대의 뜨거운 목소리 그게 나의 구원이었어

내가 미웠지 난 결국 이것밖에 안 돼 보였고
오랜 꿈들이 공허한 어린 날의 착각 같았지
울먹임을 참고 남몰래 네 이름을 속삭였을 때
귓가에 울리는그대의 뜨거운 목소리 그게 나의 구원이었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 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여기서 명시적으로 '하나님'이라고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그 대상이 종교적인 절대자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패닉 1,2집에서 보여줬던 파격과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후회하고 구원을 찾는다.

사운드 없이 가사만 보면 CCM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작사 작곡 노래 이적

그땐 아주 오랜 옛날이었지 / 난 작고 어리석은 아이였고
열병처럼 사랑에 취해 버리곤 / 심술궂게 그 맘을 내팽개쳤지

오랜 뒤에 나는 알게 되었지 / 난 작고 어리석었다는 것을
술에 취해 집을 향하던 봄날에 / 물결처럼 가슴이 일렁거렸지

내가 버린 건 어떠한 사랑인지 / 생에 한번 뜨거운 설렘인지
두 번 다시 또 오지 않는 건지 /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이적 2집의 타이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에서는 패닉 1,2집 시절을 '아주 오랜 옛날'이었고, '작고 어리석은 아이'로 폄하하고 있다. 그 시절을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사랑도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종교적 사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난 그래서인지 이 제목이 그땐 '미처'가 아니라 그땐 '미쳐' 알지 못했지 라고 자꾸만 생각이 된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와 반대로 패닉 1,2집은 노골적으로 반기독교적이었다. 무슨 소리야? 싶다면, 함께 가사를 보자. 정말이다.

UFO
작사 작곡 이적, 노래 패닉

왜 모두 죽고나면 사라지는 걸까
난 그게 너무 화가 났었어
남 몰래 그 누구를 몹시 미워했었지

왜 오직 힘들게만 살아온 사람들
아무것도 없는 끝에서
어딘가 끌려가듯 떠나는 걸까

살찐 돼지들과 거짓놀음 밑에 단지 무릎 꿇어야 했던
피흘리며 떠난 잊혀져간 모두 다시 돌아와 이제 이 하늘을 가르리

(이하 생략)

여기서 남 몰래 미워한 그 누구는 종교적 절대자, 기독교의 하나님이다. 사실 2집의 타이틀은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였는데 방송금지가 되는 바람에 'UFO'로 바꿨던 것인데, 이렇게 보면 오히려 'UFO'를 금지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다.

거짓말 같겠지만 'UFO'는 가요 차트에서 1위를 하기도 했다. 이런 노래가 어떻게? 싶겠지만 정말로 그랬다.



날 찾지마 그 혀를 치워 / 너의 비린내 나는 상한 혀가 역겨워
넌 그렇게 날 핥다가 / 그 혓바닥 곧추세워 나를 찌르지

널 믿었어 맨 처음엔 / 너의 혀 미칠 듯한 느낌에 난 녹았어
이젠 알아 난 깨났어 / 낼름대는 너의 혀의 독을 느꼈어

미끄럽게 내게 부끄럽게 내게 부드럽게 다가와
내 깊은 곳 핥아주기라도 할 듯 내 몸을 휘감다가
소리없이 나를 때도없이 나를 끝도 없이 쭉 빨아
껍질만 남을 때 혀끝으로 굴려 변기통에 뱉겠지

너의 꾸민 눈동자가 두려워
(그게 혀라는 거야 나도 어쩔 수 없어 결국 너를 위한거야)
그렇다면 내가 먼저 단칼에 잘라버릴 거야

여기서도 '널 믿었어 맨 처음엔' '이젠 알아 난 깨났어' 에서 이것이 종교에 대한 노래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달콤한 말로 구슬려서 믿게 만들지만, 결과적으로는 교인들을 이용해먹을 뿐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껍데기라는 것이다.

사실 그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하나님이 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즉 하나님은 존재의 대상이 아니라 요청의 대상이라는 것을 증명했고,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신학의 비밀은 인간학이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즉 종교는 그것이 설령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더라도 인간이 필요로 하는 도구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적은 패닉 1,2집에서 종교의 허구성을 깨닫고, 3,4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종교적인 구원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마도 그는 정말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패닉은 1,2집 같은 괴작을 다시는 만들지 않을 것이다. 패닉 1,2집을 광적으로 좋아했던 팬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래서 최근의 패닉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사실 뭐 새삼스러울 건 없다. 예전에도 이런 일은 많이 있었으니까. 대표적인 예가 바그너다. 바그너는 초기에만 해도 파격적인 음악가였다.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쓸때만 해도 그는 낭만주의와 퇴폐주의를 배격하고 개혁을 추구하는 혁명가였고, 1848년에는 맑스, 포이어바흐와 혁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 아직 젊었던 니체는 바그너의 개혁적인 도전정신 비판정신을 보고 반해버려서, 열성 팬이 된다. 니체는 바그너를 아버지처럼 존경했으며, '비극의 탄생'에서 '오직 예술만이 두려움이나 현존재의 불합리에 대한 구역질나는 생각을, 사는 보람을 주는 표상으로 바꿀 수 있다'며 바그너를 극찬한다. 니체는 신이 아니라 예술에서 구원을 찾았던 것이었다. 나중엔 아예 이걸로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을 세운다.

하지만 문제는 바그너가 등 따습고 배부르고 먹고 살만 해지면서, 기존의 파격을 버리고 기독교적인 음악가가 되어 버렸다는 데 있다. 이 배경에는 역시 바그너의 광팬이자 평생 스폰서가 되 주었던 루드비히 2세가 있었다.

루드비히 2세는 바이에른 지방의 영주로, 워낙 돈이 많아서 평생 성만 4개를 지었고, 그 중 미완성으로 남은 마지막 성은 워낙 아름다워서 디즈니랜드에서 벤치마킹 해갔을 정도로 예술에 집착을 했고, 42세의 젊은 나이에 자살했다. 그는 애초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루드비히 2세는 바그너의 음악을 접한 후로 평생 바그너의 음악만 듣고 살았다. 그는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혼자 쓰는 침실이 있었는데, 밥을 들고 오는 하인들조차 접하기가 싫어서 침실 바닥에 구멍을 뚫어 천장으로 밥을 끌어올려 받았을 정도였다.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그너에게 투자했고, 덕분에 바그너는 평소 꿈꾸던, 시+음악+연극 등 모든 예술적 요소를 한데 모은 종합예술을 한껏 과시적인 규모로 선보이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바그너의 야망은 예술 정도가 아니라 정치까지 넘볼 정도로 컸던 것이었다.

그래서 바그너의 음악은 가면 갈수록 파격이나 개혁이나 혁명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정교해지고 종교적인 색채를 띄어 갔다. 그래서 니체는 크게 실망했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책에서도 바그너라는 이름조차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니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책이 '니체 대 바그너'라는 것은, 니체가 그만큼 바그너에게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만큼 바그너를 가슴 깊이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애초에 니체와 바그너의 관계는 일방적이었다. 니체가 바그너를 아버지처럼 따르고 존경한 것은 바그너의 나이가 니체의 아버지 뻘 되기도 했고, 그만큼 높은 지위에 있기도 해서였다. 반면 바그너에게 니체는 아직 젊기도 했고 대단한 사상가로 보이지도 않았다. 팬이니까 받아주기는 했지만 그다지 눈에 차지는 않았던 것이다. 짝사랑이었던 셈이다.



자, 여기까지.

젊은 음악가가 나이를 먹고 중견 음악가가 되면서 종교적인 쪽으로 빠지는 것은 극히 일반적이다. 바그너도 그랬고 이적도 그러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처음 모습을 좋아했던 팬이 나가 떨어지는 것도 역시 극히 일반적이다.

물론 나쁜 일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좋은 음악을 오랬동안 할 것이며, 음악가 자신 또한 올바른 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는 실존주의적 인간의 모습을 기대했던 팬에게는 많은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http://xacdo.net/tt/rserver.php?mode=tb&sl=273

  • 제목: 오늘의 링크 104 - 이다 특집
    Tracked from 작도닷넷 08/03/29 21:29 삭제
    이다의 허접질을 이틀에 걸쳐 완독했다. 복학생에 대해 언급한 일기를 찾으려고 했는데, 이게 검색이 안 되는지라... 무식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했다. 인간의 힘으로 풀테이..
  • 가루 06/05/15 15:17  덧글 수정/삭제
    몇번이나 다시 들어와서 읽었어요. 재밌어서ㅎㅎ 근데 전 패닉을 좋아하진 않지만 위에 적힌 노래들은 그냥 흘러나와서 많이 들은 것 같은데 그런 의미를 느낀 적이 한번도 없네요. JP는 jphole에 크리스찬이라는 느낌을 드러내놓지만요. 그들이 어느 시점을 계기로 그렇게 변했느냐를 따지기도 쉽지 않고, 기독교인이 되었기때문에 파격을 버렸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네요. 그들의 음악성이나 종교를 떠나서 나이를 먹으면서 그들도 어쩔수 없구나라는 생각, 좀 옛날보다는 유~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걸요.
    가사 해석에 너무 확신이 들어가있어서 글에서 다른 여지가 남아있지 않아 좀 아쉽습니다.
    • xacdo 06/05/15 15:34  수정/삭제
      저는 변화의 시점이 패닉 1,2집과 그 이후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패닉 3집에서 약간 방황하는 기색이 보이고 갈피를 못 잡는 구석은 있지만, 이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급격한 방향성의 전환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 글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패닉 1,2집은 반기독교적인 상징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리 노골적이진 않지만, 종교를 떠나서는 해석이 불가능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패닉 4집때 인터뷰처럼 단순히 나이를 먹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가루 06/05/15 17:29  덧글 수정/삭제
    글의 요점을 잘 모르겠는데... 반기독교적인 내용을 담고있는지 자신이 크리스찬임을 고백하는 내용을 담고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적으신 내용을 읽어보면 이미 그들은 1, 2집부터 신에 대해 말해왔지만 예전엔 비판 지금은 긍정한다는 점이 다른건데요. 예나 지금이나 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놀고 있었다는거죠.
    단순히 예전에 반기독교적이어서 좋아했고 지금은 실존주의(솔직히 이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가 없어져서 싫어하셔서 쓰신 내용이라면 이해하겠고, 부잣집도련님이 신에 푹 빠져서 사람사는 세상에는 관심이 없어졌다라는 스토리로 이해하시고 마음껏 실망하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덕분에 검색해서 http://www.weiv.co.kr/review_view.html?code=album&num=2077 요런 글도 읽어보고, 고맙습니다.(제 결론은 못내렸네요;)
    • xacdo 06/05/15 22:52  수정/삭제
      이 글의 요점은 과거 니체가 바그너에게 아쉬워했던 부분이 패닉의 이적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바그너에 대한 니체의 예술적 관점에 대해서는 책세상에서 발간한 니체 전집 중 15번째 - "바그너의 경우 .... 니체 대 바그너"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책세상의 니체 전집은 국내에 나온 니체 번역 중 가장 뛰어납니다)
  • ^ㅡ^ 06/06/04 11:06  덧글 수정/삭제
    후훗... 재미있는 해석이네요.
    너무 그럴듯해서 빠져버릴뻔했습니다.
  • Lain 06/08/28 10:29  덧글 수정/삭제
    흥미로운 주제네요! 바그너에 대한 발표에서 참조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패니 07/05/13 06:30  덧글 수정/삭제
    혀는 언론비판, UFO는 사회 기득권 비판
    패닉이 말했었습니다.

    그럴싸한 주장 재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패니 07/05/13 06:32  덧글 수정/삭제
    그리고 이적은
    원래 크리스챤이었어요.
  • xacdo 08/03/29 01:49  덧글 수정/삭제
    흠.. 요즘 생각에는 종교에 의지하는 모습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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