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비디오 여행이었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하여튼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TV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트루스 오어 데어라는 영화 소개를 봤다. 트루스 오어 데어는 술자리에서 하는 진실 게임 + 왕 게임 같은 건데, 돌아가면서 자신의 재미있는 진실을 고백하던가, 그러기 싫으면 짖궂은 벌칙을 하는 게임이다.
이 영화에서는 젊은 친구들이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을 하는데, 이게 아무리 해도 끝나지가 않는 거다. 그리고 벌칙을 너무 위험한 걸 시켜서 죽기도 한다. 공포영화니까…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죽기 싫어서 이 게임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영화 소개는 여기까지. (TV 영화 소개도 여기까지였다)
(이 다음부터는 스포일러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꽤 흥미로워서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결말은 좀 시시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저주를 받아서, 죽지 않는 한 빠져나가는 방법이 없었다. (있긴 했는데 잘 안되게 되었다) 결국 죽을 때까지 게임을 계속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결국 다 죽어야 하나? 그래서 주인공들은 마치 한국의 3년 고개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3년 고개가 뭐냐 하면, 한 번 넘어지면 3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저주받은 고개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 고개에서 넘어져서, 나는 이제 3년밖에 못 살겠구나 슬퍼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3년마다 한번씩 넘어지면 계속 살겠구나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3년마다 일부러 넘어지며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얘기다.
이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도 마찬가지인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참여하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많이 늘리면 자기 차례가 띄엄띄엄 돌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참여자가 많을수록 오래 살 수 있다. 그래서 얘네들은 유튜브로 이 게임을 생중계해서 전 세계 사람들을 게임으로 끌어들인다. 오올~ 머리 좋네. 그렇긴 한데 좀 김이 빠지긴 한다. (왜냐하면 이러면 더 이상 공포영화가 아니니까)
물론 3년 고개에도 “최초 넘어진 시점부터 3년 후에 죽는다” 같은 악성 조항을 넣으면 이런 트릭이 안 먹힐 수 있다. 트루스 오어 데어 게임도 “이 게임은 최대 12명까지만 참여가 가능하다” 또는 “참여자가 늘어나도, 다음 차례는 12일/(전체 참여자 수) 시간 후 자동으로 넘어간다 (예) 참여자가 120명인 경우, 한 사람이 12일/120명=2시간을 초과하면 그 사람은 현재 도전(트루스 오어 데어)을 계속 하면서 다음 사람에게 차례가 넘어간다” 같은 악성 조항을 빡빡하게 추가하면 이런 트릭이 안 먹힐 것이다. (물론 이래도 더 이상 공포영화가 아닐 것이다) (조항을 따지다 보면 변호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좀 더 나아가서, 만약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떡할 것인가? 나라면 공포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일단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마음으로, 내 생애 마지막에 뭘 하고 죽으면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이제 공포영화는 물 건너 갔다) (이쯤 되니 영화 멜랑콜리아(2011)에 가까워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여러분, 나는 이제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고백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감춰온 진실은, 사실 저는 이상성애자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 최애는 비욘세가 아니라 제이지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했습니다… 아니 제이지 말고 당신을요.
다음 차례에 저는 더 이상 고백할 진실이 없습니다. 제 인생을 아무리 돌이켜봐도 더 이상 감출 비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는 이제 죽음의 도전을 맞이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아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제가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선물을 남기고자 합니다. 제가 음원 서비스에 올린 노래들의 수익금, 모두 가지십시오. 작도닷넷의 광고 수익금도 마찬가지로 모두 가지십시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좋은 곳에 써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남깁니다. 부디 안녕히…
(다음 장면) 그의 장례식, 그의 음원 수익금 정산서, 그의 애드센스 수익금… 슬퍼하는 사람들. 그리고 참가자들이 모두 죽어서 마침내 끝난 이 죽음의 게임. 갑자기 닥쳐온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한 주인공들의 마지막 모습들. 이것을 우리는 삶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죽음이라 부르기 보다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