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를 1개월 구독했다. 완다비전의 마지막 회가 화제가 되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구독한 김에 디즈니의 클래식 작품들과 픽사 단편들을 봤다.
완다비전 (2021)
소극적인 조연급 캐릭터였던 완다가 적극적인 주연급 캐릭터로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주연급 캐릭터들이 하도 많이 죽어서, 주연급 캐릭터를 충당하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미국 시트콤의 계보를 1950년대부터 현대까지 쭉 훑어가며 마지막에 다시 평범한 마블 영화로 돌아오는게 재미있었다. 너무 실험적인 형식이어서 흥행하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디즈니 플러스 초창기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컨텐츠가 부족하니 뭐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스트리밍 서비스의 황금기라서 가능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완다가 과거의 충격에 사로잡혀 과거를 되풀이하는 증상이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서, 정신병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작품 같았다. 최근 미국은 마음 건강을 강조한다. 정부 코로나 락다운 가이드에도 몸 건강은 물론 마음 건강도 포함됐다. 마음의 병은 사망률이 생각보다 상당히 높고, 사망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기능을 크게 떨어트린다. 새로 입사한 회사에도 “마음 건강의 날”이 있어서 일을 쉬고 여러 워크샵을 가졌다.
과거의 비극으로 움츠려들기보다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해방하고 빌런에 가깝게 “쎈 캐릭터”로 변신하는게 프로즌의 엘사 같았다. 그리고 자기 근처의 세계를 자신의 마음대로 뒤틀어 비극을 자초하고, 그 비극을 끝내는 것 또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같았다. 그래서인지 트위터에서 미국 게이 분들이 변신한 완다를 보고 환장하게 좋아했다.
인투 디 언노운: 메이킹 프로즌2 (2020)
프로즌2를 만드는 과정을 무려 6편짜리 한 시즌으로 만든 다큐멘터리였다. 프로즌을 이젠 좀 그만 봐야 할텐데, 나야말로 프로즌이라는 과거에 사로잡힌게 아닐까, 이젠 놓아줄 때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또 프로즌을 보고 말았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프로즌2보다 디즈니의 제작 시스템이었다. 프로즌2의 제작 과정이야 당연히 고통스러웠지만, 디즈니는 적어도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스크럼을 조직 단위로 매일, 매주, 매월 되풀이하고, 그렇게 완성된 초안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리뷰한다. 이것을 4번 되풀이해서 프로즌2가 개봉했다.
프로즌2의 프로듀서 “피터 델 베코(Peter Del Vecho)”는 “디즈니는 단 한 번도 개봉일을 못 맞춘 적이 없다”고 했다. D23 Expo에서 프로즌2를 개봉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프로즌2는 초안 단계였다. 그걸 불과 9개월만에 완성해서 개봉했다. 그 과정에서 제작진들이 마감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타협을 했다. 9개월이 아니라 1년이 있었으면, 2년이 있었으면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품질보다 중요한 건 빠른 출시였다. 그런 점에서 디즈니가 프로페셔널하다고 느꼈다.
소울 (2020)
소울은 원래 2020년 여름에 극장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코비드 사태로 2020년 크리스마스에 디즈니 플러스로 공개했다. 미국에서 광고도 많이 했고, 그만큼 많은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나는 작품의 흥행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흥행을 잘 한 작품은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디즈니 플러스로 공개해서 정확한 흥행 성적은 알 수 없지만, 극장 개봉한 한국에서 200만명 정도 봤으니 어느 정도 흥행했을 것 같다.
예고편을 보고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게 음악 영화인척 하면서 다른쪽으로 나아간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는 두 측면을 대비해서 사용하는데, 한 쪽은 존 배티스트에게 음악을 맡긴 흑인 소울 음악이고, 반대쪽은 트렌트 레즈너에게 음악을 맡긴 사후 세계다. 나는 트렌트 레즈너가 어두운 음악을 하지 않아서 실망했지만, 그래도 장영규, 달파란처럼 소신적에 인디 음악을 하시던 분이 영화 음악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 좋아보였다.
소울의 메시지는 음악으로 성공하는 등의 거창한 것에 인생의 목적이 있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나무에 가득 피어난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풍경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나는 이런 메시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같이 본 아내는 그건 당연한 것 아니냐며 만족하지 못했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미술가의 길을 포기한 아내에게 그런 것은 당연했다. 오히려 그런 당연한 걸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는게 너무 미국 백인 중산층 이상의 지적 사치처럼 느꼈다. 그러니까 요가나 히피 등에 빠지는 것 아니냐. 귀네스 펠트로 같이 말이다. 물론 본인들은 만족하고 잘 사니까 그렇게 뭐라고 할 건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렇게 아내와 같이 작품을 보면, 아내의 감상이 작품보다 더 재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버로우 (2020)
“버로우 탄다”고 할 때 그 버로우다. 땅을 파고 들어간다는 뜻이다. 원래 소울 앞에 단편으로 공개될 예정이었다. 다들 토끼가 너무 귀엽다고 하고, 마침 소울도 봤고 해서 같이 봤다.
그런데 3D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픽사가 왜 2D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을까? 그것도 깔끔한 외곽선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펜의 질감을 살려서 말이다. 게다가 안 하던 2D 작업인데도 훌륭하게 만들었다. 픽사도 언젠가 한 번은 이런 걸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판타지아 2000 (1999)
디즈니의 전설적 작품인 판타지아를 보려다가, 너무 옛날 작품이라 감상하는데 큰 부담이 될 것 같아서 최근 작품을 먼저 봤다. 나는 옛날 영화를 보는게 재밌긴 하지만 지치고 힘들다. 개봉 당시에 맞춰서 많은 것들을 잘 생각하며 봐야 재미있기 때문이다.
판타지아 2000은 판타지아의 형식으로 새로운 단편들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였다. 얼마전 만났던 게임 아티스트, VFX 아티스트 분들이 추천을 한 단편도 있었다.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측면에서 흥미로운 면이 많았다. 이렇게 업계 종사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부분이 많지만, 일반적인 시청자에게는 지루할 작품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술적인 부분도 재미있게 보는 편이었다. 2000년대에는 대학 만화동아리에서 한 선배가 ACM 시그래프의 수상작 비디오를 빌려줘서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매년 시그래프 열리면 찾아본다.
판타지아 (1940)
마침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1940년에 개봉했던 디즈니의 전설적 작품, 판타지아를 봤다. 디즈니가 이 영화에 제작비를 많이 들였는데 흥행을 잘 하지 못해서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이 애들이나 보는 유치한 것이 아니라, 예술의 전당에서 클래식을 즐기는 어른들도 즐길만한 고급 예술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시도는 대체로 실패하는 것 같다. 당연히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놀라웠다. 1940년이 아니라 지금 기준으로 봐도 훌륭한 기술이었다. 많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지금까지도 영감을 줄 만 했다. 대학교 학부생 때 과제로 한 번씩 볼만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판타지아2000 같은 헌정 작품이 나왔나보다.
심지어는 “아기공룡 둘리”에도 판타지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부분들이 보였다. 3화 “내 친구들”에서 아프리카 정글에서 동물들이 춤을 추는 뮤지컬 장면은 심지어는 타조의 포즈까지 베껴서 만들었고, 4화 “형아! 가지마”에 “비누방울” 뮤지컬 장면은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환상을 경험하는 부분을 베낀 것 같았다. 이렇게 국경을 초월해서 영향을 미쳤다.
증기선 윌리 (1928)
디즈니의 첫 작품으로, 아예 디즈니 영화 시작의 인서트로 사용하는 전설적인 작품이다. 디즈니랜드 입구의 극장에서도 틀어준다. 그럴만도 한게, 디즈니 작품의 시그니처인 뮤지컬 구성이 첫 작품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디즈니 작품의 원형(archetype)이라고 할만 하다.
밤비 (1942)
밤비는 테즈카 오사무가 매우 감명을 받아서, 영화 티켓을 연달아 끊어서 하루 종일 극장에서 보며 따라 그렸던 작품이다. 그만큼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이다. 테즈카 오사무가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덤보 (1941)
덤보는 “핑크 코끼리” 환각 시퀀스가 충격적이라고 해서 봤다. 너무 징그러워서 애들이 울기도 한다고 한다. 이게 심지어는 내용 전개상 없어도 되는 부분이다. 애니메이터들이 일부러 틈을 만들어 집어넣은 느낌이다. 과장된 데포르메와 비비드 컬러가 아주 사이키델릭하다.
덤보는 팀 버튼이 영화화하기도 했는데, 팀 버튼의 스토리텔링이 워낙 지루해서 덤보 특유의 과격함을 잘 살리지 못했다. 팀 버튼이야 미술만 기괴하고 아름답지, 옛날부터 지루하긴 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너무 디테일을 많이 살려서 더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장점을 찾자면, 팀 버튼의 작품은 최신 디즈니 작품답게 동물 인권을 더 존중한다.
결론
디즈니 플러스는 최신 작품들도 재밌지만, 디즈니 클래식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디즈니의 단편이나 메이킹 필름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나와 같은 성향이라면 매우 추천한다. 한국에도 출시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