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즌을 너무 좋아했기에 2편 또한 매우 기다렸다. 기대하는 한편 걱정도 많이 했다. 1편이 이미 잘 끝났기 때문에, 더 할 얘기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중간에 “프로즌 피버”가 나왔다. 미국 방송에서 크리스마스 즈음에 30분짜리 애니메이션 단편을 틀어주곤 하는데 이것도 2015년 연말에 ABC에서 틀어줬다. (물론 그 전에 코코 앞에 붙여서 상영했지만 너무 길긴 했다)
프로즌 피버는 내겐 프로즌 2편의 스토리가 잘 안 뽑혀서, 그 후보들 중에 적당한 것을 단편으로 만든 느낌이었다. 1편이 클로짓 게이가 벽장을 열고 나오는 얘기라면, 피버는 안나와 엘사가 올라프를 입양하여 유사 가족을 만드는 얘기가 아닐까 싶었다. 이것도 길게 만들면 2편이 될 수도 있었겠고 나름의 의미도 있었겠지만,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들이 다들 행복해진 모습을 보는 것은 좋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단편으로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2편의 예고편이 나왔다. 엘사 혼자서 맨발로 용감하게 거친 파도를 맞서는 장면이었다. 마치 아디다스의 “Impossible is nothing” 광고를 보는 것 같았다.
엘사가 갑자기 왜 아디다스 협찬을 받은 운동 선수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권 신장의 측면에서 이해가 되기는 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얼음 마법을 쓰는 모습만 보다가, 바지를 입고 맨발로 용감하게 물리적으로 자연과 맞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선해 보였다.
그런데 이것으로 적어도 1시간 30분은 끌어가야 할 텐데, 그렇게 할 얘기가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1편이 그렇게 대단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1편의 엘사는 겁이 많고 취약했기 때문에 마음을 조마조마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엘사는 성장했고 유사 가족도 이루었기 때문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힘든 일도 잘 해내리라 예상할 수 있었다. 좀 김이 새는 면이 있었다.
사실 그렇게 보면 엘사를 가지고 더 할 얘기가 없었다. 프로즌은 여기서 그만 끝내야 했다. 하지만 프로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나를 포함해서 다들 그 다음 얘기가 무엇일지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디즈니도 먹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의무감으로, 억지로 2편이 나온 셈이다. 어쩌면 2편이 나오기 싫었는데 등을 떠밀려서 꾸역꾸역 나온 것일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2편은 “이왕 그렇다면”의 느낌이 있다. 어차피 만들어야 할 속편이고, 이를 타파할 대단한 아이디어도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 대한 프로즌 제작진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스케일을 키워서 꽉꽉 채우자. 마치 매트릭스 속편 같았다. 매트릭스는 1편에서 어차피 할 이야기를 다 했기 때문에 더 할 얘기가 없었다. 그래서 2편, 3편에서는 1편에서 했던 이야기를 스케일을 키워서 되풀이했다. 같은 캐릭터와 같은 배경으로 같은 이야기를, 더 화려한 볼거리와 더 다양한 고전 인용으로 채워넣었다. 그래서 매트릭스 속편은 적당한 평가를 받았고, 괜찮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프로즌 2편도 1편을 큰 틀에서 따라간다. 엘사는 모든 문제의 원흉이자 해결사이고, 1편에서 성장했듯이 2편에서도 “2차 성장”을 한다. (초사이어인도 아니고 도대체 몇 번을 더 성장할지?) 그리고 안나는 또 엘사에게 버림을 받고 또 용감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엘사는 또 아름다운 드레스와 헤어 스타일을 보여주고, 이왕 보여주는 김에 4대 원소 시리즈로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캡틴 플래닛의 컨셉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엘사 솔로곡도 두 곡으로 늘었다.
이건 마치 이승환 4집이 너무 좋아서 5집을 샀더니 CD가 2장인 더블 앨범인데, 그렇게 꽉꽉 채워넣은 5집이 4집만큼 대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별로라고 하기도 애매한 그런 느낌이었다. 음질도 엄청 좋고 특히 사운드 엔지니어링이 예술이었다. 여러 가지로 다양한 음악들을 들려주고 완성도도 좋았다. 하지만 4집같이 꽂히는 노래가 없었다. 일단 돈을 들여 샀는데 돈을 버린 느낌은 아니고 나름 돈 값을 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내 마음속의 10대 명반에 들어가고 그 정도까지는 아닌 느낌이었다.
프로즌 2편은 아름답다. 대박은 아니지만 충분히 볼만하다. 내가 매트릭스 2편을 좋아하는 만큼 프로즌 2편도 좋아한다. 매트릭스 1편을 세 번 보고 싶을 때 매트릭스 2편은 한 번 보고 싶은데, 프로즌도 비슷할 것 같다. 1편을 열 번 보고 싶을 때(이미 열 번 봤다), 2편은 세 번 보고 싶을 것 같다.
그래서 프로즌 2편에 대한 내 감상은 그닥 별로라서 극장에 한 번 더 가고 싶고, 사운드트랙은 영어, 한국어, 일본어 버전은 전체를 다 들었고 대만어, 광둥어, 러시아어, 덴마크어 등 가능한 모든 언어를 찾아 듣고 있다. 개인적으로 러시아 안나가 파워풀해서 좋았다.
다음은 각 노래에 대한 감상이다.
All is found
이 노래를 제일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 자장가에 민요같은 느낌이 Simon & Garfunkel – Scarborough Fair 같은 느낌도 난다.
노래가 너무 어둡고 의미심장하지 않나 싶은데, 2편에서의 차별점을 두고자 하는 의도로 읽힌다.
Some things never change
1편에서는 안나 솔로곡이었던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가 이번 2편에서는 모두가 같이 부르는 단체곡이 되었다. Outtake를 들어보면 Home이 원래 여기 들어갔을 것 같은데, 거기에 뭔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안나의 바램이 더 들어간 노래로 바뀐 것 같다. 영화 초반에 안나가 모두 함께 하기를 바라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일종의 복선으로 동작한다.
이번 2편에서는 1편보다 복선을 많이 까는 등 이야기에 개연성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더 많이 보이는데, 프로즌 같이 현대적인 서사에 굳이 개연성을 붙여야 할까 의문스럽다. 특히 프로즌 1편을 개연성을 뛰어 넘는 서사의 급격한 절벽이 아주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절벽이 부드럽게 다듬어진 점이 2편에서 실망스러웠다.
나는 개연성보다는 약간의 핍진성(현실적으로 그럴듯함)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즉 이야기가 이야기 내부만이 아니라 이야기 외부의 현실세계까지 서사의 한 부분으로 사용하는 것인데(82년생 김지영처럼), 물론 너무 동시대에 의존하는 면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 동시대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런 면이 좀 더 현대적인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Into the unknown
엘사의 솔로곡이자 2편의 “Let it go”인 곡이다. 이디나 멘젤 특유의 불안정하고, 약간씩 땡겨 부르는 급한 마음, 그러면서 망설임 없이 곧바로 올라가는 고음 파트가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디나 멘젤의 고음보다 더 높은 고음이 나온다. “아아-아아-” 하는 부분이다. 이것이 북유럽 특유의 신비로운 느낌을 내면서, 이디나 멘젤의 쏘는 듯한 매운 보컬을 살짝 덮으면서 순하게 만든다. 나는 이 점이 새로운 느낌은 있지만 매력을 조금 깎아먹었다고 생각한다.
When I am older
올라프의 솔로곡인데, 개인적으로는 “It gets better” 캠페인 송 같았다. 지금 어릴 때는 세상에 이해가 안 가고 무서운 일들이 많지만, 조금만 참고 어른이 되면 나아질 거라고 격려하는 가사다.
Lost in the woods
크리스토프 솔로곡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뜬금없고 놀리는 톤의 노래다. (지난 1편에서는 크리스토프 솔로곡도 없었다) 프로즌의 퀴어함을 좋아하는 분들은 이 노래가 너무 헤테로섹슈얼 해서 싫어할 만 하다. 하지만 나는 빵 터졌고 극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도 많이들 빵 터지셨다.
그런데 두번째 극장에서 봤을 때는 주로 젊은 커플 위주였는데, 웃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래도 요즘 젊은 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옛날 감성인가 싶었다. 이렇게 보니 나도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노래는 Weezer가 커버하기도 했는데, 뮤직비디오를 영화화 똑같이 만들어서 재미있었다. 심지어는 안나 역으로 크리스틴 벨을 캐스팅하기도 했다.
The next right thing
안나의 솔로곡이다. 개인적으로 2편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안나의 성장을 아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앞의 “Some things never change”에서 안나가 모두와 같이 부르는 것과 대비해서, 이 노래에서는 안나가 철저하게 어둠 속에서 홀로 부른다.
이 노래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과할 정도로 드라마틱하다는 점일 것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수준으로 곡 구성도 복잡하고 코드 전개도 복잡하다. 심지어는 되풀이되는 부분도 없고 멜로디도 조금씩 계속 발전한다. 쉽게 익숙해질 수 없는 노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안나에 매우 집중하는 곡이라 좋아한다. 크리스틴 벨이 좀 더 잘 소화해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러시아어 버전의 성우가 좀 더 파워풀해서 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링크했지만 다시 한 번 더 러시아어 버전의 유튜브를 링크한다.
그리고 이런 우울한 상황을 이겨낸다는 의미에서 Logic의 1-800-273-8255 노래도 생각난다. 디즈니 영화에서 자살까지 다루기는 너무 무겁고, 우울증까지도 아니지만,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안나가 그나마의 소명 의식으로 다음 할 일을 하기 위해 힘을 내어 일어난다는 가사는 자살 예방 캠페인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아니라면 아니겠지만) 죽겠더라도 힘을 내어 1-800-273-8255 전화라도 거는 것이 어떨까.
Show yourself
엘사 솔로곡이 또 나온다. 1편에서는 영화 후반부에는 아예 노래가 나오지 않는데, 2편에서는 후반부에 마치 “One more thing”처럼 이 노래로 한 번 더 터트린다. 기능적으로는 불필요한 노래이지만, 엘사의 매력을 더 보여주고 싶은 제작진들의 기합이 느껴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