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땐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을 때도 있다. 완전히 망할수도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나, 예상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최악으로 치닿지는 않을 거라고 자만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확률이 낮은 일도 일어날 수는 있다. 내가 정말 재수가 없을 수 있다. 그래서 미리 생각해놔야 한다. 방법이 없을 때의 방법론을 말이다.
회사 프로젝트의 예를 들자. 새 기능을 개발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뭔가 큰 일이 터져서 도저히 예정일에 런칭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 상황실(war room)을 만들고 양해를 구해서 함께 크런치 모드로 들어간다.
- 침착하게 체계적으로 빨리 끝낸다.
이 질문은 취업 인터뷰의 단골 질문인데, 정답은 없지만 어떻게든 침착하게 체계적으로 빨리 대답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체계가 없을때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방법이 없을때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단 이 프로젝트의 런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묻고, 런칭 시간이 연장이 가능한지 묻고, 일부 기능을 나중으로 미뤄도 될지 묻고, 다른 부서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지 묻고, 우리 부서에서 최대로 동원 가능한 자원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고, 현재 상황을 공유할 상황실이나 워룸을 구성하고, 사무실에 화이트보드를 갖다놓고 적어가면서 진행하고, 현재 바로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분리하고, 긴급성과 중요도를 따져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확히 담당자를 지정해서 위임하고, 어디까지 윗선에 보고해야 하는지 묻고, 진행상황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그런 와중에도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밥은 먹고 잠은 잘 수 있는지를 따져서 삶의 균형도 맞춰야 한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무엇이 잘못됬는지 분석하기 위해, 너무 현재 일에 영향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로그를 남긴다.
체계 다음으로 회사에서 좋아하는 키워드는 헌신이다. 이미 망한 것이라도 그냥 망하게 두지 말고, 어느 정도는 만회하기 위해 나를 오롯이 바치는 것이다. 잠시 나의 자아를 잊고 무아의 경지로 들어가서,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몸을 완전히 공양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생명 에너지를 너무 소모하기 때문에 자주 하면 안된다.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잠깐 들어갔다가 빨리 나와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싫어하는 답이지만,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최후의 답은 포기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깨끗이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도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거기서부터 다시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