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레드벨벳 아이린 슬기의 몬스터와 놀이는 대단히 자극적이었다. 너무 자극적이어서 한창 때 마릴린 맨슨이나 슬립낫을 듣는 것 같았다. 비록 레드벨벳 완전체가 아니라 아이린과 슬기의 스핀오프 프로젝트지만, 이런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라도 새로운 컨셉을 용감하게 도전하는 모습이 매우 좋았다. 역시 SM 엔터테인먼트는 패스트 팔로워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이런 과감함을 레드벨벳 같은 여돌만이 아니라 NCT 등의 남돌에서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남돌이 너무 부진하다.
몬스터의 코드 전개는 Em – Am – C – B 이고 놀이의 코드 전개는 Em7 – C – B 로 거의 같다. 처음부터 두 노래가 한 쌍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몬스터는 중간 중간에 브레이크를 걸거나 SM 엔터테인먼트 특유의 댄스 타임을 넣는 용도로 덥스텝(Dubstep)을 넣었는데, 놀이는 데미캣 리믹스에서 글리치 합(Glitch Hop) 장르로 갔다. 이 덥스텝과 글리치 합 또한 대칭으로 보인다.
덥스텝은 워블 베이스(wobble bass) 등의 악기를 이용해서 단편적이고 휘발적인 음들을 짧게 잘라 붙이고, 이를 다양한 박자로 변화시키면서 쪼개고 붙이며 날까로운 엣지를 주는 장르다. 예를 들어 악기의 ADSR(Attack – Decay – Sustain – Release)을 아주 짧게 주고, 특히 어택을 빠르게 높였다가 릴리즈를 바로 떨어트리면 워블 워블 워블… 하는 괴상한 소리가 난다. 이것을 1/4음표, 1/8음표 등의 4박자에서 갑자기 1/6 음표, 1/12 음표 등의 3박자로 급하게 바꾸면 날카로운 엣지가 생긴다. 이렇게 ADSR, 박자, 음표, 조금 더 나아가 옥타브를 급하게 넘나든다거나, 소리의 이펙터를 급하게 바꾼다거나 하면 아주 정신이 없다. 이것은 하나의 악기를 소스로 해서 여러 이펙터에 연결해놓고, 이것을 예를 들어 1번 소리, 2번 소리, 3번 소리 이렇게 번호를 매겨 놓는다. 이것들을 멀티 믹서로 묶어서 급하게 소리를 전환할수도 있고, 부드럽게 전환할수도 있고, 두 개 이상의 소리가 동시에 나는 듯 하다가 합쳐질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나눠질수도 있고 하는 다양한 기술을 쓸 수 있다. 이런 것이 덥스텝이다.
사실 이런 테크닉은 덥스텝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있긴 했다. 예를 들어서 Prodigy – Breathe (1996) 의 드럼을 들어보면, 중간에 verse를 전환할 때 drum fill 부분에서 이런 테크닉을 쓴다. 1/4음표 2개, 1/8음표 4개, 1/6음표 3개 이렇게 연달아서 붙였다. 보통 이런걸 어쿠스틱 드럼으로 치면 어색하지 않게 들리도록 강약을 조절해서 넣는데, 프로디지는 드럼머신으로 하면서 같은 velocity로 다른 박자의 음표들을 일정하게 붙여넣어서 강렬한 어색함을 만들어냈다.
그러면 90년대의 이런 테크닉과 2000년대 이후의 덥스텝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기술의 발달이라고 생각한다. 작곡 프로그램이 좋아지고, 가상 악기의 품질이 높아지면서 예전보다 엣지를 훨씬 쨍하게 살릴 수 있어졌다. 프로디지는 단순히 음표들의 박자를 다르게 붙이는 방법을 썼지만, 요즘은 ADSR이라던가, 멀티 믹서라던가 하는 것들의 설정 값들을 automation할 수 있다. 악기의 소리를 바꿀 때 흔히 DJ가 디제잉할때 하는 것처럼 노브(nob)를 돌리거나 슬라이더(slider)를 움직이는데, 이것을 급하게 움직이면 워블 워블 워블…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이것을 오토메이션으로 프로그램하면 사람이 손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값을 움직일 수 있으니, 훨씬 괴상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여튼간에 이런 것이 덥스텝인데, 사실 덥스텝 노래들이 대체로 지루하다. 왜냐하면 너무 소리를 이상하게 내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니 전체적인 서사라던가 구성에 별로 신경을 안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멜로디조차도 거의 없이 건조하게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기에 약간 멜로디를 가미하면 글리치 합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둘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고, 덥스텝에서 글리치를 부분적으로 쓰기도 하고, 글리치에서도 덥스텝을 쓰기도 한다. 다만 글리치가 덥스텝과 구분되는 점을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글리치는 지직 하면서 짧게 튀는 잘못된 음인데, 이런 잡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름의 감흥이 있다. 아니 꼭 댄스음악이 아니더라도, 라디오헤드가 3집을 만들때도 노래 전체적으로, 아니면 앨범 전체적으로 딱 한번 나오고 마는 잡다한 음들을 곳곳에 넣었는데,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이런 글리치들은 서로 연관성이 없이 튀는 음들일수록 섞었을때 더 자극적인데, 이게 무슨 악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작곡하는 유튜브 영상을 봐도 일단 글리치부터 잔뜩 수집해놓고 시작한다. 그래서 그 글리치들의 결을 생각해서 요리조리 배치해간다. 어떻게 수집하느냐? 그거야 랜덤이다. 얼마나 기발한 소스를 생각해서 따오느냐도 이런 글리치 장르의 묘미다.
내가 좋아하는 글리치 합 노래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글리치 합은 그래도 보컬 등 멜로디가 있는 소스를 잘라다 붙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코드 진행이 들어가야 한다. 무성음에 가까운 건조한 음들은 코드 진행이 없어도 대충 붙지만, 유성음에 가까운 풍성한 음들은 코드 진행이 안 맞으면 잘 안 붙는다. 너무 어색하게 들린다. 그래서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한다. 나는 그래서 글리치 합 노래들이 덥스텝 노래들보다는 들을만 하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뭐냐하면 그만큼 작곡 난이도가 올라가서 글리치 합을 만드는 사람들이 훨씬 적다는 게 문제다. 물론 글리치 합 이전에 글리치 음악들이 전체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아주 적다.
물론 이런 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서 돈이 된다면, 아무리 만들기가 어려워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사실 그 이전의 근본적인 문제는 덥스텝이건 글리치던 너무 자극적이기 때문에, 이것만 들으면 금방 귀가 피곤해져서 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노래 전체적으로 쓰기보다는, 이번 레드벨벳 아이린 슬기처럼, 노래의 일부분에 양념처럼 살짝 써서 전체적으로 풍성하게 만드는 정도로 쓰는게 딱 맞다고 본다.
하여튼 말이 길었고, 아이린 슬기 놀이의 데미캣 리믹스는 이런 전형적인 글리치 합 장르의 리믹스다. 원곡의 여러 부분들을 날카롭게 잘라 붙이고, 여기에 추가로 원곡의 음과 대비가 강한 휘발성 음들을 풍성하게 붙였다. 사용한 악기나 음들이 아주 선명해서 이런 쨍한 대비가 더욱 강렬한 것이 특징이다. 뮤직비디오 또한 이런 비비드 네온 컬러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이 리믹스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을 뽑자면, 코러스 부분에서 원곡을 무시하고 데미캣 본인의 스타일대로 밝게 가버린 걸 들고 싶다. 리믹스가 원곡과 비슷하게 간다면 리믹스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뭔가 새로운 걸 듣고 싶어서 리믹스를 듣는 건데, 그런 면에서 이렇게 코러스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빵 터트리는게 통쾌하고 신선했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이 부분에서 장미가 빵 터지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었다.
다만 그 외의 부분들이 잘 붙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잘 안 붙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곡 구성을 아래와 같이 10단계로 구분하겠다.
- 인트로: 새로운 멜로디로 이것이 리믹스임을 환기함
- 1절 앞부분: 인트로의 멜로디를 유지하며 원곡의 멜로디를 진행함
- 1절 뒷부분: 불협화음에 가까울 정도로 코드 진행을 바쁘게 움직이며 원곡을 무너트릴 준비를 함
- 코러스: 원곡이 무너지고 리믹스의 메인 코러스를 터트림
- 2절 앞부분: 1절 앞부분과 같음
- 2절 뒷부분: 1절 뒷부분과 같음
- 코러스: 이번에는 앞과 달리 리믹스의 메인 코러스의 전개를 억제하고, 원곡의 멜로디를 부분적으로 부각시킴. 이것이 다음 브릿지로 연결되는 준비가 됨
- 브릿지: 다시 인트로의 멜로디가 나오면서 원곡의 멜로디와 중첩되어 텐션을 높임
- 코러스: 마지막 코러스 반복
- 아웃트로: 다시 인트로의 멜로디를 반복
여기서 내가 좋았다고 한 부분은 4번, 7번, 9번 코러스 부분이었다. 특히 4번과 7번의 대비가 좋았다. 4번에서 내 마음대로 갔다가, 7번에서는 원곡을 살리는 쪽으로 갔다가, 다시 9번에서는 내 마음대로 돌아온다.
그런데 내가 어색하게 느끼는 부분이 1번, 2번, 5번, 10번이었다. 이것들은 공통적으로 인트로의 멜로디를 부각하고 있는데, 원곡의 코드 진행과 살짝 걸쳐있으나 불협화음에 가까워서 원곡을 무너트릴랑 말랑 하는 기능을 한다. 이 기능은 3번, 6번, 특히 8번에서는 효율적으로 기능하여 코러스로 진행하거나 코러스에서 빠져나오는 통쾌한 맛을 주는데, 그런 급격한 변화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인트로, 아웃트로, 그리고 이런 인트로와 나머지 부분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단순히 애매한 느낌만 줄 뿐이었다. 나라면 이 인트로 멜로디를 1,2,5,10번에서 빼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것이다. 좀 더 원곡의 진행에 텐션을 거는 대신 원곡에 좀 더 가깝게 만들거나, 혹은 원곡을 좀 더 살리고 뒷반침하는 정도로 힘을 빼겠다.
하여튼 그거야 내 생각이고, 이 리믹스는 전체적으로 매우 세련됐고, 음질 등의 품질이 높았다. 큰 흐름이 아니라 세부적인 디테일로 들어가면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리고 조금 덧붙이자면 이번 놀이의 안무는 일본의 레즈비언 듀오 아야밤비(AyaBambi)의 안무와 비슷했다. 가늘고 긴 팔로,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손 안무를 두 명이 서로 대칭으로 하는 점 등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