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애플, 3월 테슬라에 이어 4월 15일에는 비트코인을 샀다. 그것도 상당히 비싸게 샀다. 하필이면 코인베이스(Coinbase)가 상장해서 더 비싸졌는데도 샀다. 볼린저 밴드(Bollinger Bands)가 천정을 뚫는데도 샀다. 볼린저 밴드가 아니라 지난 1년간의 흐름을 봐도, 가격이 너무 올라서 한 번 떨어질 때가 가까웠다. 그런데도 샀다. 내가 좀 미쳤던 것 같다.
무엇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을까? 왜 나는 비트코인이라는 신기루에 홀렸던 걸까? 비트코인 가격을 1분봉으로 지켜보는게 너무 재미있었다. 모닥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아무런 재료도 근거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흐름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반성한다. 다음부터 1분봉은 보지 않겠다.
비트코인 수수료가 비쌌다
비트코인은 이토로(eToro)에서 샀다. 코인베이스는 수수료가 가장 비쌌고, 바이낸스(Binance)는 수수료가 쌌지만 입금 오류로 이용할 수 없었다. 바이낸스에 문의했지만, 한달이 다 되가는 지금까지 답이 없었다. 이토로가 그 다음으로 거래 수수료가 싸서 이용했지만, eToro 전용 지갑으로 전송하는 수수료, eToro 지갑에서 내 개인 지갑으로 전송하는 수수료를 제하니까 0.015 BTC가 0.013 BTC로 줄어들었다. 전체 금액의 13%가 수수료로 나갔다. 너무 비쌌다.
내가 굳이 개인 지갑으로 전송한 이유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믿을 수 없어서였다. 2014년 마운트곡스(Mt. Gox)가 고객의 비트코인을 도난당해 파산했었고, 그 외에 다른 거래소들도 자잘하게 도난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수수료를 감수하고 내 개인 지갑에 보관했다. 로빈후드, 페이팔 등 개인 지갑으로 전송을 할 수 없는 거래소는 제외했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화폐가 아니라 디지털 금이라는게 실감이 됐다. 나는 지금까지 비트코인을 채굴하기만 했는데, 막상 돈을 주고 비트코인을 사고 전송하려니 쉽지 않았다. 수수료도 비쌌고 오래 걸렸다. 정부의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서 신분 확인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은행에서 거래소로 입금하기까지 며칠이 더 걸렸고, 비트코인을 사고 바로 전송할 수 없었다. 거래소가 고객의 비트코인을 몇 시간 임의로 가지고 있는 건데, 그걸로 거래소가 임의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비트코인을 전송하는데도 하루 정도 걸렸다. 거래 컨펌까지 2시간 정도면 되는데, 마찬가지로 거래소가 임의로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객에게 불리한 조건이 많았다.
그리고 비트코인 전송 수수료가 너무 비싸졌다. 비트코인은 전송 수수료조차도 시장가(Market price)다. 보내는 사람이 임의로 수수료를 제시하면, 비트코인 채굴자들이 그 중에 선택해서 트랜잭션을 처리한다. 대체로 수수료가 비싼걸 먼저 처리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너무 낮게 쓰면 선택받지 못한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면 타임아웃된다. 참고로 수수료는 제한이 없어서 0부터 무한대까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비트코인을 채굴했던 2013년만 해도 수수료를 0으로 전송했었다. 격세지감이다.
비트코인의 미래
2013년에 0.01 BTC을 채굴했으니, 이제 총 0.023 BTC 다. 8년 전에도 그랬지만 비트코인은 여전히 재미있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뉴스가 계속 생겼다. 이런 신기루에 불과한 것에,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쌓아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 비트코인의 미래와 팅커벨 비유 』
『 [완료][무료나눔] 비트코인 USB 채굴기 330MH/s 』
게다가 비트코인의 짝퉁, 알트코인도 많이 생겼다. 비트코인의 하드포크(hard fork)도 여러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망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 흔한 보안 취약점으로 와해되지도 않았다. 과반수 이상의 신뢰와 합의로 비트코인의 프로토콜을 보완해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했다. 놀라웠다.
비트코인을 보면, 그림책 “꽃들에게 희망을”(1972)이 생각난다. 애벌레들이 쌓아올린 기둥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기둥이 어디까지 높아질지는 애벌레들의 합의와 우연에 달렸다. 설령 그 기둥이 무너져도, 다른 기둥이 또 생길 수 있다.
이 그림책은 애벌레들의 기둥이 무너지면서 끝난다. 비트코인의 최후도 마찬가지일까? 허상은 결국 허상으로 돌아가는 걸까? 이 모든게 꿈인 걸까?
하지만 어차피 꿈이라면,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모른척 휩쓸려보는 건 어떨까? 100% 잃어도 상관없는 정도라면 말이다.
파월 의장은 암호화폐를 금에 비유하며 “수천년 동안 사람들은 금이 실제로 갖지 않은 특별한 가치를 부여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상화폐는 정말로 투기를 위한 수단”이라고 거듭 강조
비트코인 다시 깎아내린 파월 “투기 대상일 뿐”
이더리움 2.0, 모네로
마지막으로 다른 얘기지만, 이더리움이 2.0으로 버전을 올리려고 한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채굴의 시대를 끝내겠다는 것이다. 신규 화폐를 채굴이 아니라 전송으로 생성하겠다고 한다. 또한 GPU나 ASIC으로는 채굴이 너무 느리게 만든 모네로(Monero)도 있다. 안그래도 암호화폐가 반도체 시장을 교란시키고 전력을 너무 많이 소모한다는 우려가 많은데, 이렇게 직업적인 채굴자들을 좌절시키는 시도가 나오고 있어서 고무적이다.